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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 3이던 1968년 8월 이른 밤에 친구 집으로 공부하러(실은 같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그 친구의 누나인 첫사랑을 보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우주니 천문이니 별자리니 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았던 터여서 그 날도 어김없이 밤하늘을 보며 걷고 있는데 별똥별이 하나 떨어지더군요.
그런데 보통의 별똥별은 하늘을 옆으로 휙 긋고 지나가며 바로 사라지는데 비해 그 별똥별은 옆으로 긋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수직으로 떨어졌고 떨어지는 속도도 훨씬 더 느렸습니다. 그래서 참 이상한 별똥별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다음 순간 그 별똥별이 바람에 불리듯 완만하게 방향을 바꾸면서 노란색이었던 것이 둘로 갈라져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나뉘고 그 두 불빛이 서로 깜빡깜빡하다가 잠시 뒤에 사라지더군요.
그 별똥별을 보고 나서 저는 UFO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확신이 없어서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로부터 몇년 뒤인 1973년인가 74년 여름에 안동민 박사가 어느 잡지엔가 기고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1968년 8월 경 충청도 지방에 UFO가 집중적으로 출몰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고, 저는 제가 본 것이 정말로 UFO였음을 확인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세월이 한참 더 지나 1986년 유리 겔라가 우리나라에 와서 초능력 시연을 보였던 다음날, 고려원에서 당시 편집장이던 최승호 시인, 그리고 <야훼의 밤>을 쓴 소설가 조성기 선배와 만나 초능력 이야기를 하던 중 비행접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법대를 나온 뒤 다시 신학대학을 나와 성서에 정통한 조성기 선배가 성경(레위기 26장이던가?)에도 비행접시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을 해주더군요.
그리고 비행접시를 본 사람은 운명이 뒤바뀐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제가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그 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중 3 때까지 비교적 순탄했던 삶이 중학교 마지막 학기 수업료를 겁도 없이 전자기기 부품 사는 데 홀랑 다 써버린 탓으로 학교에서 수업료 미납을 이유 삼아 청주고 원서를 써주지 않는 통에 입시원서 마감을 5일 뒤에 한 청주공고 전기과로 갔다가 여름박학 바로 전날 자퇴하고 다음해에 청주고로 진학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집안이 빚쟁이들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성질이 점점 더 포악해져 학교에서 싸움질을 일삼다가 2학년 재학 중 12월 1일에 다시 자퇴, 그 뒤로 두 번에 걸친 자살기도...
그렇게 막가는 저를 달래고 끌어안아준 분이 저의 둘째 외숙모신데, 제가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 외삼촌 댁에서 학원을 다니는 동안 내내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더운밥 지어주신 분이시기도 하지요. 또 외삼촌의 큰딸로 다섯 살 터우리인 외사촌여동생과는 지금 말로만 동생이지 실제로는 거의 매일같이 통화하며 속내 이야기 다 털어놓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친구고요. 실은 이 아이(?)가 대학(이대) 다니던 시절 친구 둘 달고 계단 내려오는 사진이 몰래 찍혀 프랑스 잡지 표지에 실렸을 정도로 빼어난 미인인 데다 총명하기도 엄청 총명하고 감성도 대단히 풍부해서 저와 코드가 딱 맞는답니다.^^
애고, 이야기가 한참 옆길로 샜군요. 아무튼 유리 겔라가 왔던 다음 날, 조성기 선배와 최승호 시인, 그리고 저 그렇게 셋이 뭉친 기념(?)으로 저녁 먹으면서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최승호 시인이 회사에서 신용카드 받은 기념(그 당시엔 서민은 신용카드 구경하기 힘들었거든요^^)으로 한턱 쏘겠다는 통에 황지우 선배가 종로 2가에서 운영하던 찻집 겸 맥주집 거쳐 자정 넘어까지 이어졌지요.
그런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저는 그날 새로 산 가방을 처음 들고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에 두고 내린 바람에 거의 다 마무리되어가던 미셸 트루니에의 <동방박사> 원고를 잃어버려 다시 번역하느라 그 뒤로 두어 달 죽을 고생했었습니다. 이미 했던 번역 다시 하려면 속상하고 짜증스러워서 처음 할 때보다 몇 배 더 힘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