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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배호 드럼치며 노래하는 멋쟁이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0-09-29 19:31:33
추천수 2
조회수   662

제목

그때 그 사람 -배호 드럼치며 노래하는 멋쟁이

글쓴이

조우룡 [가입일자 : 2007-07-20]
내용






1971년 10월 초. 서울 장충체육관의 가수 대기실. 휠체어를 타고 창백한 미소를 짓던 그는 그치지 않는 기침을 손으로 막으며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 그가 동료 가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대에 올라 자신의 히트곡 ‘마지막 잎새’를 간신히 끝내자 객석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가 이어졌다. 그는 결국 ‘안개낀 장충단 공원’ 1절을 부른 뒤 각혈을 하며 쓰러지고 말았다. 스물아홉,꽃다운 나이에 그는 무대에 쓰러져 애석하게도 다음달 11월7일 세상과 손을 놓고 말았다.



배호.(1942년생) 검은 뿔테 안경과 정장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무대 위의 신사,치아를 지그시 누르며 꺾는 저음의 미학을 마음껏 유린한 시대의 기린아. 고통과 시련으로 점철된 영광의 인기를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 그 파란만장했던 역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빛을 발하고 있다.



1958년,16살의 배호는 외삼촌이자 MBC 경음악단장이었던 김광빈의 도움으로 드럼을 배우며 대중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그후 6년 동안 전문 드러머로 활약한 걸출한 뮤지션이었다. 그는 악보도 없이 청음만으로 리듬을 정확하게 탄 천재적인 음악 감각을 소유했다. 훗날 가수로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을 때 배호는 놀랍게도 악보를 읽지 못했다. 음악인들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악보도 볼 줄 모르면서 어떻게 드럼을 그렇게 잘 칠 수 있었을까’하고 의아해 했으니 배호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역설적으로 설명한 사례였다.



배호가 죽기 전 회고에서 8년 동안 음악을 하면서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고달픈 음악생활을 했다. 음악은 그에게 고통을 이기는 약이었던 셈이다. 배호가 ‘두메산골’로 가요계에 데뷔한 1964년은 TV가 대중화되지 않아 라디오와 클럽 공연,전국 순회 공연만이 대중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의 전부였다. 당시 을지로 5가 천지호텔 카바레. ‘왼손잡이 드러머’‘핸섬보이’로 통하던 배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운집했다.



22세의 밴드 마스터 배호는 드럼 치며 노래하는 멋쟁이 뮤지션으로 장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그는 드럼을 치면서 신명이 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추며 연주를 했고,드럼 스틱을 공중으로 던지는 묘기를 선보이는 무대 매너는 광란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무명의 배호는 그 당시 그렇게 여성팬들에게 흠모의 대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60년대 중반 서울의 클럽 다운타운가에서 마니아를 거느리며 인기 꽃을 피우려던 배호에게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는 다가오고 있었다.



66년 겨울 돼지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린 배호는 급성신장염으로 병세가 악화,투병을 시작하면서도 ‘황금의 눈’ ‘누가 울어’를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가요계 유행과 거리가 먼 묵직하면서도 감성적인 창법의 배호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노래를 할 때마다 사람들의 귀를 매혹시키며 주목받았다.



이듬해 2월 ‘돌아가는 삼각지’와 9월 ‘안개낀 장충단공원’은 전국을 강타하며 배호를 그해 최고 뮤지션으로 등극시켰다. 아직도 애창되는 국민가요 ‘돌아가는 삼각지’는 작곡가 배상태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남진 남일해 금호동에게 음반 취입을 의뢰했으나 모두 거절당한 일화로 유명하다.



당시 배호는 숨을 쉬기조차 힘든 병마와 싸우며 녹음을 감행했다. 마치 신촌블루스 출신의 ‘내 사랑 내 곁에’로 유명한 고 김현식을 보는 듯하다. 첫 소절부터 신음 섞인 숨과 격렬하게 끓는 천식을 달래며 간신히 녹음한 음악이 바로 오늘 우리가 듣고 있는 ‘돌아가는 삼각지’다. 트로트계 대부 현철은 당시 신인으로 녹음실을 찾았다가 배호가 힘들게 녹음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눈시울이 붉어졌다며 처연하게 회상했다.



배호는 그해 KBS 가요베스트에서 단일곡으로 20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이미자 최희준을 잇는 대중가수로서 가요계를 평정할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해를 비롯해 1970년까지 배호는 4년연속 MBC 10대가수에 선정되며 천부적인 재능을 펼쳐 나갔다.



드럼 스틱을 잡으며 허기진 배를 음악으로 달래던 때묻지 않은 미소년은 그렇게 최고의 스타 뮤지션이 됐지만 고통스러운 병마는 그를 끈질기게 괴롭혀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1971년 10월20일 당시 MBC ‘별이 빛나는 밤에’는 지금의 이종환이 MC를 맡고 있었다. 게스트로 출연한 배호는 비 오는 거리를 거닐며 2주 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그를 아끼던 팬들과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돌아가는 삼각지는 역사 속으로 묻혔지만 그의 노래는 오늘도 사람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 흐르고 있다. 지난 1993년부터 시작된 배호가요제(02-719-1077)가 그를 기리며 이어져오고 있다. 죽어도 노래하다 무대에서 죽고 싶다던 그 짧은 생애의 바람은 이루어졌으나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달빛 같은 매혹적인 소리와 혼신의 무대매너를 못내 그리워하고 있다



/연예 칼럼니스트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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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룡 2010-09-29 19:42:15
답글

아무리봐도 난 테그를 너무 잘하는거 같어.... ㅜ,.ㅠ^

류철운 2010-09-29 20:11:18
답글

배호, 나훈아 노래는 LP로 들어야 제맛입니다.

ktvisiter@paran.com 2010-09-29 22:19:42
답글

배호의 마지막 무대를 tv로 시청한 산 증인이 여기 있습니다....ㅡ,ㅜ.^

정원일 2010-09-30 02:14:54
답글

저의 중학교 선배님되죠~ 최고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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