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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올 김욕옥 선생은 열정적으로 살았다. 죽고 싶지 않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0-09-29 00: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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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도올 김욕옥 선생은 열정적으로 살았다. 죽고 싶지 않다.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프롤로그1>



한 세대를 걸쳐서 이 시대의 우리 사회를 휘젓고 있는 한 인물이 나를 무섭게 짓누른다.

그 인물은 도올 김용옥이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김용옥이란 인물에게서 나는 그의 인생 파탄을 본다.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김용옥의 인생은"완전무결한 파탄"을 맞고 있다.

"김용옥의 화려한 날들은 갔다..." (Kim's heydays are gone...)



그는 [천안함] 침몰 사태에 대한 정부의, 아니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를 .

..0.0001 퍼센트도 가능성이 없는 완전한 날조 허구 " 라며 비난함으로써,

이제 그의 "파란 많은 일생" (Kim's tortuous life)도 목검을 맞게됐다.

" 종지부를 찍게됐다"는 표현을해도 좋을 듯하다... "

도올 김용옥의 인생은 종쳤다...그것도 아주 더럽게 종쳤다..."



<원인을 돌아본다>

도올 김용옥의 인생이 종친 원인을 살펴본다.

아주 "철학적으로는" 너무 재주가 많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많은 예외들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한가지 일만"

뭐 "한 두 가지 일만 하다가 가기로" 되어있다.

더러는 너무 재주가 많아 이 일 저 일 걸치지 않은 일이 거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인생의 많은 경우에서 보듯이 이런 인간군은 수지결산을 해보면

"뭐 별로 이룬 것도 없는" 그런 경우를 아주 흔히 보는 바이다.

두번째로," 김용옥 인생 파탄의 원인 "은 너무 "갔다가 왔다가" 또는 "왔다가 갔다가"

왕복운동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정치가로 치면 이른바 " 철새 정치인 "에 해당한다.그는 기자도 하고, 한의학도 전공했고, 많은 베스트셀러 저술도 세상에 내놓았지만,

그는 시종 사상가 철학자로 불려지기를 바랄테지만 철학자치고는 자신의 인생을 너무 번거롭게 혹사한 일면"이 있다.

세번째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는 "도올 김용옥 인생 파탄의 원인"이 "권력 지향적" (power-oriented)이라는 데 있다. 그는 그야말로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권력을 지향했다. 그는 너무 "요란방정을 떨었다... 그러다가 결국 도올은 그가 추구하던 권력의 부침과 함께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때 김우중의 팬이었다. "팬"이라기 보다는 김우중의 부, 권력을 이용하여 뭔가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이루려고했었다.

우중과 세계를 여행하기도 하고, 재계의 거물과 사상가의 대화록이 저술로 출판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도올의 뜻대로 김우중은 선뜻 도올에게 " 돈을 주지 않았다..."

그때 도올에게 "이 돈으로 꿈을 펴보라" 며 그때 돈으로 수백 억 원 재산을 선뜻 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모르긴해도 도올의 인생은 더 일찍 종쳤을지도 몰랐다.



도올이 다음으로 지향한 것은 권력, 그것도 좌파의 정치 권력이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찰싹 달라붙었었다."

도올이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장관이나 문화부장관 한 자리 쯤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참으로 "불행하게도" 그는 "권력의 빵부스러기를 얻어먹지" 못했었다.

김정일에게 달라 붙은 담쟁이 넝쿨 도올 김용옥의 "권력 갈증" (the thirst for power)은 마침내 저 북쪽 세습 왕조의 기이한 반민족 폭압의 두목 "김정일에게 마지막 의지처" 를 찾았었다.

김용옥의 좌편향 돌변 행동은 뭐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의 변신을 위한 "화려한 언어가 준비되어있었다. 그 어휘들이란 "민족" "자주 독립"이라는 어휘들이었다.

도올은 2007년 노무현 일행을 따라 평양을 향하면서 도라산 역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는 제스처"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김정일과 북측 대표들 앞에서 허리를 90 도로 꺾어 예를 갖추기도 했었다. 그는 자주 자신이 사상가인거처럼 김정일을 "대사상가로 치켜세우기도 서슴지 않았었다." 그 역시 "권력 지향의 해바라기의 몸짓"이었다.

그가 김우중 앞에서 김우중을 위하여 해바라기가 됐던 것처럼, 노무현 앞에서 노무현을 위하여 해바라기가 됐던 것처럼, "김정일을 위하여, 그리고 김정일을 향해서 해바라기가 되는" 것 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엘리트 좌파들처럼 화려한 가족 이력들-

김용옥도 이제 어쩔수없이 "김정일의 종말과 함께 인생 결산을 해야하는 마당"인데,

김용옥의 하는 양을 보노라면 어찌 그리도, 이 땅의 많고 많은 " 엘리트 좌파들처럼 화려한지..." 도올은 임수경이 화려했던것만큼이나 화려하고, 좌파 정연주만큼이나 화려하고,

또한 좌파 정치꾼 정동영이나 좌파 재상 한명숙만큼이나 화려하고, 자살한 노무현 만큼이나 화려하다.

여기서 내가 "화려하다"라고 하는 것은 그 인생 행보가 주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의상으로 치면 "공작새의 의상" 이다.

언어학적으로는 "이중적이고 자가당착적"이다.

그는 다른 많은 좌파 떨거지들처럼 평양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지만





도올도 다른 많은 "화려한 엘리트 좌파들처럼"

그의 자식들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미국이 주 생활무대이다.

도올의 장녀는 미국 프린스턴에서 공부하다가 눈이 맞아

동문수학의 프랑스인 남성과 결혼했다.

도올은 그러니까 "프랑스인 사위"도 두고 있고,

미국에 영주권자인지 시민권자인지 둘째딸도 미국에 살고있다.

그러면서, 그는 물론, 다른 많은 좌파들처럼, 평양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이 나라 보수 우파 정권에 침뱉고, 발길질을 해댄다.



이제 김용옥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때다

도올 김용옥이란 인물은 이제 그의 발언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한다.

이 발언에 대한 책임과 함께 그의 인생이 결정될 터이다.

우리 국민은, 친북, 좌파 김 정일을 맹목적으로 추종 찬양하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은 조사단의 발표를 믿는다. 또 세계 각국의 정부와 민간 단체들 역시 합동 조사단 발표를 인정하고 북한의 침략, 살인 만행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대부분의 국민이, 세계 각국 정부 및 민간 단체들이 우리 정부를 믿고, 민군 합동 조사단을 믿고, 이 방면의 국제 전문가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그들의 노고에 대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터이다.

그런데, 김용옥은 민군 합동조사단과 미국과 유럽 전문가들이

무려 50 여 일이 넘게 정밀 조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이른바 쌍끌이 어선이 바다밑을 훑어 그렇게 눈물겹게 하나 하나 취합한,

하늘과 땅이 모두 감동한, 그 부인할 수 없는 증거물들 앞에서...

감히 "...0.000001퍼센트도 나를 설득할 수 없는 " 날조 취지의 망언을 하다니...

자유 민주공화국에서 헌법의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고 그런 엄청난 망언으로

이 나라 국민 대중을 선동해도 되나...

- [출처] 도올 김용옥의 인생|작성자 ‘고로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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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2>

검찰이 27일 '천안함 의혹'을 제기한 도올 김용옥을 라이트코리아 등 보수단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무혐의로 각하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신유철 부장검사)은 도올 발언을 분석한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할 만한 범죄 구성요건을 찾지 못했다며 각하 이유를 밝혔다.



도올은 지난 5월23일 서울 봉은사 특별강연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합동조사단 발표와 관련, "얼마 전 천안함 발표가 있어 TV로 조사 결과를 보게 됐다. 하지만 그 결과는 도저히 설득이 되지 않았다"며 "이런 말을 하면 잡혀가겠지만 나는 0.0001퍼센트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성들이 앉아서 발표하면서 '이것은 전부 빨갱이들이 한 짓이다. 프로펠러를 돌려서 이렇게 와서 빵 터지면', 세상에 그런 이상한, 북한이 그 정도 기술이 있다고?"라고 반문한 뒤, "미국 해군 군사력이 총집결해 있고, 가장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이지스함이 두 대나 있었고, 서해 근해에 13척의 함대가 있었다는데, 거기를 뚫고 들어와서 뻥? 이것은 진짜 웃기는 개그올시다"라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천안함 관련 정보는 모두 통제가 되는 상황"이라며 "생존자에 대한 접근 금지 등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자신들이 조사한 결과를 믿으라고 하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정보를 그 사람들이 다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반증을 할 수가 없다"며 "왜 하필 선거 때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선거 앞두고 (결과 발표) 닷새 전에 쌍끌이 어선을 끌었다는 민간인이 (어뢰를 건진 것은) '천운이올시다'라고 했는데, 그 천운이 생기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개판이었던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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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제가 직접 씁니다.

※이 글은 너무 길어질 수 있어 경어체를 생략합니다.



<도욜 김용옥 선생님> 왈 “82년도 하버드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래 번역의 중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하였고, 한문해석학이라는 새로운 치학 방법을 제창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제도적 실현을 역설하였다. 예를 들면, 서구학계와 미국학계에서 고전학이 발달하는 이유는 곧 치열한 고전번역이 작업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국학고전자료의 초역작업을 박사학위논문의 주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주장은 전혀 인정되지를 않았다. 학계가 이러한 나의 주장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계의 주도권을 이끌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번역“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없기 때문에, 표절에 가까운 천박한 논문쓰기를 한평생을 보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논문이란 해석 안되는 부분은 슬쩍 넘어가면 되고, 여기 저기 관계 서적들을 참고하면 어떻게는 외장을 갖출 수 있지만, 번역이란 한 줄 한 줄, 한 글자 한 글자에 소략함이 있을 수 없고, 더 중요한 것은 고전의 창출자에 대한 생평이나 시대배경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고서는 적당한 논설이 불가능하다. 번역이야말로 가장 오리지날하고 가장 창조적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이란 ”왜놈들이나 하는 천박한 짓“이라는 식으로 폄하하여 온 것이 우리나라 학계의 현실이었다. 기실 그들이야말로 왜놈을 베껴먹으면서 살아온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왜놈이야말로 자신의 수치를 은폐하기 위한 역설적인 단어였다. 일본학계야말로 번역을 중시하는,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학문의 장인 것이다.”



여기서 ‘학계의 주도권을 이끌어가는 사람’의 중심에 <도올 김용옥>씨가 위치하지 않을까? 아니면 <도올 김용옥>씨에게, 대다수 학계의 거두들이, 예컨데 유명교수들이 반기를 들었는가? <도올 김용옥>씨가 고려대 꼴찌로 들어갔다는 걸 얼핏 들어서 안다. 혹시 고려대에서, 그가 꼴찌+막장 학생신분으로 천착해 있을 떄, 교수들과 술도 한잔 하면서 그들의 논문을 대필한 건 아닐까. 그러니까 <도올 김용옥>을 이용/대필시켜 쓴 글들의 많은 양의 논문들이, 고려대를 불문하고 서울대 연세대 등의 모든 교수들이 내어놓은 그런 겉멋만 든 막장교수들을 대필해주는 게 요즘 유행이며, 추세, 심지어 대세라는 데 이견이 없다는 걸 필자는 앎으로, 젊은 날의 도올 김용옥 학생은 아마도 엄청난 양의 대필 건들을 해결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가 다른 교수들한테 한 독설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정치적인 면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가 저질러온 과오와, 편린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많다. 김용옥의 욕망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제 사상입니다.



“언어에 대한 사고에 선재(先在)”, "언어는 사유에 선행한다“, 라는 [도올 김용옥]의 언어관념의 체계의 도구연관적 문제의식은, 전적으로 모든 학자들이 자신의 학적 권력을 장중웅려하게 주창하기 위한, 피상적인 측면을 도구로 하여 인민기만의, 공교로운 일종의 사변적 소치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 문화에서 암암리에 파생한 의식개념의 구조적 패러다임의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더없이 강력하게 주장한다. 왜 이 동양철학자는 순차적인 의미에서 사고(思考)가 언어보다도 열등/하등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본질직관’이라는 후설 철학의 관념의 일부와, 아인슈타인이 주창한 ‘상대성 이론’이 직관의 발로에서부터 창조되어 그것이, 언어로서 해명되기까지의 과정을 전적으로 부정 시 하는 테제가 성립된다. 더군다나 러셀·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부단히 긍정하는 시도가 될 수도 있다. 하기야 이는, 근세이후의 대부분의 전통 있는 주류(Major)의 사상가·이론가·철학자·논리학자들이 걸어온 원형, 이른바 실례를 자기 관조의 절대적인 중심기조의 저변으로 설정한 채, 다국적 언어를 도구로 하여 자신의 논리를 확장시키고 연장(延長)해 가면서, 극도의 연역적 접근 혹은 삼단논법의 무리한 남용 사례들을 관류함과 동시에, 이를 지나친 소급행위의 연속에 구속하여 하나의 일의적 도식에 실천에 접목한 채, 자기 관념의 설정과 정립에 있어, 일련의 언어체계의 반복법의 시행을 진행한 정신의 도정으로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매우 로컬리티하고 일곡적인 관점만을 부당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상에 착안하여 실재적 관념을 해명하고자하는 방향의식은 모든 자연과학자들이 실천하는 방식이다. 이런 귀납적 기술적 접근에 침윤한 지식은, ‘개별성→보편성’으로, 제한성→ 메타성‘으로 치환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반면, 철학자들이 자주 써먹는 연역적 기술적 접근은 ’보편성→개별성‘, 메타성→제한(구속)성’에 천착하는 전혀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이 이(二)분법에는 일장일단이 있으며, 이 두 가지 기술적 접근에서 일희일비하는 결론이 나오는 건 실로 지당하다. 그리하여, 여기서 실증하고자 하는 예는 바로 후자의 방법이 로컬리티적인 결과에 당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연역적 삼단논법의 도식을 펼쳐보자.



모든 ‘사람(A)’은 ‘자본주의자이자 똥 싸는 기계(B)'이다. A→B (대전제)



‘이명박(C)’은 ‘사람(A)'이다. C→A (소전제)



‘이명박(C)’은 ‘자본주의자이자 똥 싸는 기계(B)’이다. C→B(결론)







코다(Coda)는 정립되었다. 이명박은 악랄한 자본주의자이자, 한국의 하수구를 채우는 역할을 담당하는 똥 싸는 기계이다. 이 삼단논법의 결론은 매우 로컬리티하다. 실제적으로 이명박은 한국의 제정·안보·세금·치안·중대한 최종 결정·정계·문화의 방향성을 종횡무진하지만 연역적 추리의 장벽은 이를 가로막는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의 한계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언어철학의 기저가 선사하는 비인간성에 대해 알아보자.



언어의 몰도덕적·반휴머니즘적인 이론과 대치하여, 행위자의 행위가 모순되는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삶을 보자.



기술과 과학적 진보를 모욕하면서도 나치즘에 경도되어 자기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인, [에드문트 후설]을 탄압하고 그의 원고를 전부 불살라 지어, 자기철학을 독일 철학사에 독보적이고, 마치 태양의 직사의 작열함과 같이 강렬한 새로움을 우리에게 제기했던(하이데거의 철학의 씨앗은 모두 후설의 현상학에 입각한다)20세기 철학의 최고봉 하이데거.



그는 삶의 아름다운 방면을 부지불식간에 종식시키고, 일그러진 인텔리의 인간군상을 대표했다. 그러한 행위를 실행한 하이데거를 용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의거하여 어찌 보면, 우리는 온갖 궤변과 거짓이며 비인간적인 즉 논리학의 논지들을, 보다 엄밀하게 말해서 헤겔식의 사변적 논리들을, 서구 일변도의 역사에 개입시키기에 지나치게 몰두한 것 같다. ‘도처에서 생성되는 자본주의의 원리=바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의 대표자 [칼 마르크스]가 그토록 혐오하고, 자기중심적 사상을 개진시키기 위해, 강밀하면서도 섬세하게 고군분투한 노력의 산출물이 배척하고자 한 패러다임’은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현실 사태 그자체>가 교조적으로 계시하는 ‘유기적인 장’이다. 이것을 조망하면서, 우리는 그러므로 모든 학자가 자신의 지성을 구조적인 뿌리에 의거하여 개설된 마치 그들의 불멸적 권력의 지반을 보증하는 ‘서구역사’가 곧 대세임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대문명의 말류에 들어서 본원적인 진실적 역사가 돼 버린 그리스 문명 중심의 ‘텍스트로써의 과거’는, 우리네 삶이 따르고자 하는 우리 생활의 모든 지향성의 가장 위에 위치하여 우리의 ‘지금부터 시작하는’ 인간역사의 전형을 쓰게 강요한다. 즉 우리 남한의 미국기초적인 역사는 ‘한미 FTA’를 건너 이제는 서구보다 강력한 유교주의적인 자본주의를 이룩하게 했다. 우리는 아마도 10년 안에 일본을 넘어서게 되고, 현재 국가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출산업은 폭발적이고 산발적으로 진보하여, 현재 종교의 근저를 담당하는 여러 가지 ‘케리그마’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지성 일반의 일률적인/획일적인, 연역적 접근으로서의, 곧 우리 모두가 당연시하는 자본의 심볼리즘을 지향하게 할 것이다. 기실 무신론이 득세하고, 거짓된 유신론자들은 ‘기독교적 교회’ 즉 신교의 철두철미한 보편사상을 위시하여, 돈을 생성하는 자본이라는 밑바탕에서 더더욱 사람들을 홀리고 미혹시킬 것이다. 좀 더 종교의 모순성을 폭로하자면, 이들은 신(God)이라는 추상개념을, 마치 인간 앞에 흔드는 회중시계의 현상처럼, 다만 두 개의 이중적 선택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종말의 배후에 영생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무기로 하여 우리를 기만하고 엿 먹이는 중이다.







필자의 친할머니는 전형적인 조증 환자였는데, 그녀는 손의 열 손가락 모두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장착한 채 성남거리를 배회하는 게 취미였다. 그것이 현재 월세방을 살면서 벤츠를 타고 다니는 젊은이와 꼭 같이, 그녀에게는 자기 아이덴티티 자기를 후천적으로 증명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솔직히 말해 필자의 할머니는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녀의 직원들, 즉 동네양아치 몇 명은, 업자인 할머니의 교조성에 따라서 손님의 돈을 강제적인 무력행위로 뜯어왔다. 그로인해 그녀는 비교적 넉넉하게 살 수 있었고, 또한 말년에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관조하여 일련의 자기도덕을 완성했는지는 몰라도, 수많은 자기 고객들의 각서를 찢어버렸다. 일견 그녀의 전체적인 방법론은 현재 [노암 촘스키]가 논박할 때 빈번하게 사용되는 개념인 <초자본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겠지만, 인생의 끝부분에 있어서 자기동일성의 파괴에 봉착했는지, 아니면 자기가 앓아왔던 ‘조증의 발로’ 이전의 선천적으로 소녀시절의 그녀가 가지고 있던 문학적인 직관의 사유가 재등장했는지, 그녀의 ‘목적론적 체계’가 내파(Implosion)됨으로써, 마지막에 이르러… 성남의 그녀의 빌라에서 가스자살로 생을 마쳤다. 아니, 자살이 아니고 타율적으로 실수를 해서, 즉 가스 밸브를 켜두고, 가스관이 파열되어 가스들이 세어나온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 덧붙여, 나의 친할머니가 이러한 더러운 직업으로 더러운 돈을 만지면서 명백히 자기 정체성의 엄존성을 부여한, 그러니까 그녀를 움직인 잔인한 이념이 흔들리지 않게 된 계기가 하나있다. 그녀는 자기를 위해 쏟아 부은 돈이 많지 않았다. 이건 내가 들은 내용에 완전히 기인한 것인데(따라서 자살이 아니라 자연사일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나의 친 고모에 대해 언급하겠다.



나는 2003년에 미국에 3개월 거주하는 특권을 누렸다. 시공을 중심기준으로 잡고 ‘이것, 저것’을 즉물적으로 논하는 걸 차치하면서 이 새로운 논지를 완성시키겠다. 나의 친고모는 시카고에서 부호까지는 아니라도 중산층 계급으로선 꽤 잘 사는 편이었다. 나의 친고모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셨는데, 그녀는 “밤만 되면 심장이 멈춘 것 같다, 혹은 내 심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라는 말로 자기 남편을 채찍질했는데, 이 히스테리에 질린 남편(고모부!)은 고모를 정신병원에 몇 차례 가두고 나서 이 일조차 질렸는지 그냥 방치해놓곤 했다. 가정싸움이 쟁쟁하게 밤마다 우리의 저택에서 울렸는데, 나조차도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극복하고자, 집에 있는 조그만 T컵 개들 2명을 폭행했다. 다리도 분질렀고, 귀도 찢고 털도 강제로 밀어버렸다. 쓰레빠로 특히 폭행하기를 좋아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이 개들에게 속죄하고 싶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이 준저택(완전 저택은 아니었음. 규모로 봐서는 준저택)에 산탄총이 있었던 것이다. 혜민이(나의 사촌형, 고모부의 벤츠를 키 훔쳐 몰래타고 다니다가 걸림)와 혜리(사촌누나, 미친돼지임, 늑대의 유혹 같은 쓰레기 저서를 읽음)는 가끔씩 이 산탄총을 가지고 놀았다가 고모부에게 걸려서 엄청나게 혼나곤 했다. 이 산탄총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모가 감기가 걸렸다며 목에 천을 두루고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모가 식탁에서 포도주스를 마시다가 일종의 히스테리를 일으켰는데, 거의 발작 수준이었다. 그리고 나서 “심장이 뛰지 않아!”라고 소리친 후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무슨 일인가 했다. 화장실만 7개 딸린 거대한 집에서 개인들은 부딪칠 필요도 없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당시 목소리가 집 안을 쩌렁쩌렁 울리게 했다. 119가 집 앞에 도착했는데, 요원들이 현관 앞에 들어서는 순간 ‘쾅’ 소리가 났다. 태어나서 그렇게 크고 별나면서 무자비한 소리는 처음 들어봤다. 순간 귀가 먼 줄 알았다. 119요원들이 2층으로 올라갔고, 문은 잠겨 있었다. 요원들이 쇠젓가락으로 문을 따고, 바닥에는 고모의 시체가 있었다. 머리는 반으로 갈라졌고 혈흔은 바닥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 총을 맞아서 죽은 사람을 그때 처음 봤는데, 나는 너무나 놀라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FBI요원들이 노란색 테이프로 집 바깥을 둘러쌓았고, 고모의 시체는 시체안치실에 안치되어 해부되었다. 혜민이형과 혜리누나는 정신줄을 놓아버린 듯 얼굴이 시커멓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친할머니와 친고모를 16살 이전에 잃어버리고 나는 방황했다. 인간적 실재가, 인간존재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더군다나 부자였던 그들이, 넉넉하고 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인간들의 실존이 그렇게 무로 치환될 지는 죽어도 알 수 없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지만 더러 허무한 대로를 거니는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의 고급 레스토랑에 가봤는데, 거기 잔뜩 쌓여있는 랍스타와 티라미스 케익, 그리고 일본식 초밥을 보았다. 나의 친고모는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에 신경 써서 절대 계란노른자나 새우를 먹지 않았는데, 어찌보면 콜레스테롤의 저하가 자살을 부르는 건지도 모른다. 에스컬레이터 리무진이 시카고 시내를 활보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렉서스와 BMW, 벤츠를 타고 다닌다. 시카고는 미국 제 2의 상업도시이다. 최고층 빌딩들이 구름을 넘어 시카고의 슈퍼스트럭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글의 모두(冒頭)에서 도올 김욕옥 선생님을 폄하했는데 이에 대해 사과드린다. 사실 모든 운동가들은 이중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이신론자이고 이론가들이여서, 결코 자기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김욕옥 선생님은 분명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래, 나도 열심히 살았다. 진짜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내가 겪었던 과거는 실로 ‘엿’같다. 할머니와 고모의 자살로 인한 쇼크로 7년을 정신과약과 함께했다. 아니, 그들의 DNA가 나로부터 유전되어 사춘기 시절에 시작된 게 주 원인이며 나 또한 자살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나의 아버지도 자살을 시도했었는데 어머니가 붙잡아서 간신히 16층 창문에서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나의 동생은 강박증이다. 나는 조울증, 나의 동생은 강박증, 나의 아버지는 도박중독, 나의 할머니는 조증, 나의 큰고모는 우울증….



다행히 이경욱 교수님이 지어준 약으로 말미암아 자살을 면하게 되었다. 난 정말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문득문득 스치는 자살충동에 내 존재는 겁에 질린다. 살고 싶다. 한번 주어진 인생을, 한번 주어진 재현의 순간을, 한번 주어진 표상적 의미로서의 생을, 한번 주어진 이 긴 대로의 도정을, 나는 구가하고 싶다. 이상 글을 마치겠다. 지금까지 소천한 글을 읽어주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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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훈 2010-09-29 00:49:30
답글

천안함사고의 정부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 도올선생이 이상한 건가요? <br />
<br />
별 미친쉐리 다 보겠네요.....ㅎㅎㅎㅎ<br />
주어는 없습니다....ㅎㅎㅎ

장정훈 2010-09-29 01:00:23
답글

한마디 더....<br />
<br />
야 이 멍청한 쉐리야..... 나도 천안함 정부발표 안믿어.. 그런다고 내가 북쪽에 머릴두고 김정일을 무작정 두둔하는 꼴통이니 이 씨부랄 쉐리야~~~~~~~~~~~~~??? ^^

한현수 2010-09-29 09:36:26
답글

이 글을 우연히 보고나서 두호님의 이전 여러 게시글들을 쭉 읽어보았습니다. <br />
엊그제 약관을 넘기신 나이임에도 불혹 넘은 나이를 살아온 저보다도 생각이 깊으시고 글도 잘 쓰십니다. <br />
<br />
20대는 자아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는 시기입니다. 자신을 잘 제어하셔야 합니다. <br />
자아가 온 우주에 반짝거리게 쏟아 부을 만한 분들이 심히 고민하고 아파했습니다. <br />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헷세가 그랬고,

김원전 2010-09-29 12:51:28
답글

장정훈님<br />
<br />
대한민국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올이 옳다고 하는데 몇 명쯤은 도올이 틀렸다고 한다고 뭔 대수입니까?<br />
<br />
아무리 글이 마음에 안들지만 공개적인 게시판에서 별 미친 쉐리, 멍청한 쉐리, 꼴통이라는 단어는 조금 거시기 합니다.<br />
<br />
주어가 없다고 하시는 말씀이 더 거시기 합니다.<br />
<br />
벽보고 이야기 합니까? 떳떳하게 이름 부르면서 마주보고 말씀 하시

강윤흠 2010-09-29 14:37:38
답글

직접 도올 선생한테 가르침을 받아도 될 듯 하군요. 편지를 한번 써보세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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