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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렇게 풍류를 몰라서야 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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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8 22:5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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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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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렇게 풍류를 몰라서야 원...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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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가입일자 : 2001-12-12]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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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집사람 생일과 저희 결혼 12주년이라서요.
변변찮게 여름휴가도 제대로 못 가서 이번에 재빨리 갔죠.
첫날은 우도에 머물렀는데 거기 펜션이 재미있는 곳이었습니다.
1층 휴게실엔 당구대도 두 대나 놓여져 있었고
그 앞 바비큐장은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야외였습니다.
특히, 저녁이 되니 사장님은 저희가 고기를 굽던 옆에서
멋진 모자를 쓰시고 노래방기기에 앰프를 연결하여
색소폰을 연주하시더군요.
곡은 80, 90년대 발라드와 팝송을요...
운치 있고 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호응도 낮고 사장님이 마이크를 권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더군요.
앞 테이블에 10명 정도의 경상도 대가족
옆 테이블의 30대 남녀 커플
뒤 테이블의 20대 외국남, 국산녀(?) 커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제가 맥주도 한잔했겠다
집사람의 제지하는 손을 뿌리치고
사장님이 설치한 야외 특설 무대(?)로 나갔습니다.
제가 선택한 곡은
최호섭 씨의 '세월이 가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살짝 보니
집사람이 술 한잔에 얼굴이 빨개졌는지
아니면 제가 그렇게 창피했는지
그냥 얼굴이 토마토색이더군요.
개의치 않고 2절까지 다 불렀습니다.
노래 끝나고 사장님께 마이크 건네니 흐뭇한 미소와
가창력 소유자란 얼굴 팔리는 드립이 함께 돌아오더군요.
덤으로 앉아계신 여러분의 마지 못해하는 듯한 박수와...ㅠ.ㅠ
아무튼, 제 공연이 끝나자 사장님이 바로 연주하신 곡은
'네버엔딩 스토리'
저희 테이블은 바로 놀랐죠.
생각해보니 펜션비 입금자와 아까 전화했을 때
제 이름을 불러주신 것을 보니 그것을 기억하시고
제 노래(?)를 연주하시는 센스까지...
더 이상의 공연은 없었습니다.
끝까지 무뚝뚝한 경상도 가족에겐 말도 못 붙이겠고
저를 보고 그렇게 웃던 30대 남녀는 제가 건네는 노래방 책을 정중히 거절하고
영어를 남발하던 20대 커플을 술독에 빠지고
에효...
그래서 나중에 다 정리하고
안의 휴게실에 들어와서
사장님과 저와 둘이서 물 한잔 하면서 서로 건넨 말은
"이것 참, 사람들이 이렇게 풍류를 몰라서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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