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20여년 이상 홈씨어터와 오디오를 취미로 하고 있고 한때 비교적 고가의 기기들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청력을 잃어서 대부분 정리하고 오히려 자작에 재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오디오를 이루는 컴퍼넌트들은 앰프와 스피커, 소스 기기등 다양하지만 요즘 가장 발전의 속도가 빠른 것은 소스 기기 아닌가 싶습니다. 기존 메이커의 네트워크 플레이어부터 시작해서 포고, 알릭스 등의 리눅스 기반 플레이어들, 개인 자작품들, 그리고 가장 익숙한 PC 기반의 제품까지 춘추전국시대라고 볼 수 있지요. 물론 가격대도 천차만별이라 중국산 몇만원부터 수천만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더불어 DAC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났는데 예전 CD를 소스로 하던 시절에도 분리형 DAC은 꾸준히 나왔지만 최근 PC파이나 파일 플레이어들이 늘어나면서 DAC도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습니다. 이미 사장된 SACD 포맷인 DSD 파일까지 더해서 말이죠.
개인적으로 CD와 SACD를 5~6년전까지도 운영했지만 이제는모두 정리하고 PC 파이로 완전히 정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음감용 PC와 DAC이 상당히 중요해졌는데, 수백~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가 기기들도 접할 기회가 많이 있고 그 실력도 인정하지만, 과거 아날로그 시절만큼 실력차가 크지 않고 감가 상각이 큰 디지털 기기 특성상 가성비를 중시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음질 뿐만 아니라 기능성도 중요하고 디자인도 중요하고..
결국 자작의 길로 들어서게 됐는데, 불행히 저는 전자공학도가 아니기에 DAC 회로를 직접 설계해서 생산할 능력은 없습니다. PC도 부품사다 조립하는게 전부이고요. 결국 자작이라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건 아니고, 기존 부품들을 잘 선별해서 제 입맛에 맞게 꾸미는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암튼 음악감상 전용 PC와 DAC을 한셋트로 구성하기 위해 부품선정을 하고 케이싱 계획을 세웠습니다. 일단 구상한 것은 i3 정도의 적당한 CPU에 질좋은 전원부, 뽀대나는(^^)케이스로 PC를 조립하고 여기에 걸맞는 DAC을 수배하는 일이었습니다.
PC야 익숙하지만 과연 DAC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고민이었는데요. 기성품이야 많긴 하지만 가격적 욕심을 내자면 끝이 없고, 안을 따보면 회로나 전원부가 너무 부실해서 맘에 안들고 디자인도 원하는게 없고.. 하던 차에 마침 제가 잘 가는 모 카페에서 DAC을 공동제작하기에 참여 했습니다.
TI의 PCM1794를 듀얼로 사용한 트리플 헥사드 구성의 DAC인데, 제작자 분의 실력은 이미 충분히 믿을만했고 전원부도 튼실했기에 바로 참여했지요. 다만 요즘 DAC에서는 대세로 인정받는 DSD를 지원하지 않는 문제가 있는데, 대부분의 음원이 고해상도 포함해서 PCM 포맷이고, DSD에 큰 환상을 갖고 있지 않은 터라 아쉬움은 없습니다. 부품과 메인보드를 별도로 구매하는 경우부터 케이스 완제품까지 다양한 옵션으로 진행 되었는데 저는 메인보드에 부품만 실장한 형태로 했습니다. 제게 배달된 모습은 아래처럼 왔구요. 물론 이밖에도 토로이달 트랜스와 각종 단자류가 함께 배송되었습니다.
왼쪽이 전원부인데 극한의 물량투입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수준에서 상당한 물량투입이 되어 있습니다. 기판이나 사용된 부품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것들이 적용되었고요. 각종 배선재나 단자는 개인 취향에 맞춰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튜닝 포인트가 많습니다. 오피앰프는 I/V변환과 언밸런스 변환, 밸런스단까지 해서 모두 10개가 사용되는데 소켓타입으로 되어 있어 쉽게 교체가 가능합니다. 물론 너무 고가의 제품만 고집하다보면 이곳에만 수십만원이 소요되므로 개당 2만원 대인 TI의 627BP와 637BP, 이보다 훨씬 저렴한 49990MA 등의 모델, 그리고 Dexa의 디스크리트OP 등을 테스트해보고 결정했습니다.
일단 내부 부품은 문제가 없었지만 케이싱 작업이 큰 이슈였는데요. 소위 말하는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샤시(외형)에 들어가는 원가가 상당합니다. 진동 방지나 차폐 등 음향적인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시각적인 부분도 무시 못할 부분이죠. ^^
공구 당시 알루미늄 케이스도 함께 공제했지만 저는 풀사이즈(약 43cm 이상)의 DAC을 원했기에 중국산 케이스로 눈을 돌렸습니다. 알리에서 주문했는데, 배송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가격적, 품질적인 면에서 상당히 매력이 있었습니다.
전면의 구멍은 주문시 홀가공을 의뢰한 것인데 미리 도면을 그려서 전달했고, 추가 비용도 약간 더 들어갔습니다. 폭43cm에 높이 7cm 정도의 비교적 슬림한 모델입니다.
이 케이스를 선정하기 전에 먼저 어떤 모습으로 시스템을 구성할 것인지 여러장의 시안을 만들었는데, 최종 결정된 모습은 아래의 그림입니다. (스케치업 + 포토샵 작업)
전면 디스플레이를 어떻게 만들지는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암튼 DAC과 PC를 별도의 섀시로 갈 것이기에 케이스를 두개 주문하고, 후면 가공도 함께 의뢰했습니다. PC 같은 경우 팬위치나 방열판 위치등을 함께 고려해서 도면을 만들어줬구요. 다행히 잘못 가공한 것 없이 정확히 배달되어서 한시름 놨던 기억이 납니다.
먼저 DAC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딱히 메인보드나 전원부의 레이아웃이 정해진게 아니기에 배선이나 음질에 대한 영향등을 고려해서 케이싱을 시작했습니다.
부품 배치하고 정상 작동 확인 후 최초로 찍은 사진입니다. 아직 USB만 연결한 상태였고 광입력이나 동축 입력은 배선하지 않은 상태였죠. DDC는 이태리의 아마네로 솔루션(Combo 384)이 사용되었고 배선재는 AWG16~24 정도의 동선과 은도금 선이 일부 사용되었습니다. 특징이라면 파워스위치가 없다는 점인데, 릴레이를 사용해서 PC의 전원과 연동되게 작업했습니다.
DDC와 밸런스단 입력보드 쪽을 확대한 사진입니다. 참고로 USB 입력시 DDC 전원(5V)은 PC로부터 받지 않고 DAC에서 정전압부를 거친 깨끗한 리니어 전원을 입력받게 되어 있습니다.
후면은 밸런스 출력 1조, 언밸런스 출력 1조, 광입력 1, 동축입력1, USB입력 1로 이뤄져 있습니다. 좌측의 3.5파이 잭은 PC와 전원 연동을 위한 단자입니다.
DAC의 전면부는 사실 특별히 보여줄 정보가 많지 않습니다. 보통 샘플링 레이트와 현재 입력단을 표시하는데, 디자인적으로 너무 심심해서 로고 패널을 넣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꺼져 있다가 전원이 들어오면 켜지게 되어 있죠. 전면 패널에 구멍만 덜렁 뚫기엔 몇가지 문제가 있어서 약간의 장식(?)물을 부착하기로 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전면 패널을 절삭 가공하는 것이지만 그건 비용 문제와 소량 가공 문제가 있어서 포기하고 에폭시 퍼티를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침 제가 피규어를 자작하는 취미가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원형을 만들 당시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PC와 DAC 2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만들었지요.
도장과 레터링까지 마친 모습입니다. 도장 재료는 일반적인 라커 등은 피막이 약해서 자동차 휠에 사용하는 착색제를 사용했습니다. 피막이 두껍고 튼튼할 뿐만 아니라 적당히 오톨도톨한 느낌이 나서 고급 오디오 기기의 질감과 흡사합니다.
전면 패널을 작업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다음에 PC를 조립했는데.. PC야 다들 잘 아실테니 긴 설명은 필요 없겠습니다만 몇가지 부연하자면, 일단 전용 케이스가 아니기에 홀가공은 전부 커스텀으로 작업했습니다. 금SATA (-_-) 같은 것은 달지 않았지만, 고성능이나 확장성보다는 저소음, 음질을 고려해서 작업했고요. 발열 문제로 일부러 코어i3를 사용하고 팬도 저속으로 셋팅했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WAV나 FLAC만 재생한다면 셀러론으로도 충분한데, 블루레이급의 동영상이나 DSD 메모리 재생등 몇가지 이슈로 i3를 채택했습니다. 쿨러는 케이스 높이가 낮아 써모랩의 ITX30을 장착해 줬고요.
파워는 200W 급의 DC2DC 보드와 스위칭 파워를 조합했는데, 스위칭파워(SMPS)는 음질적인 면에서 불리하지만 리니어로 구성하기엔 너무 비용이 높고 효율이 낮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아답터를 쓰진 않고, 계측기 분야에서 리플 노이즈가 작고 안정성으로 유명한 TDK 람다 전원을 적용했습니다. 용량은 150W 급이구요. 출력단에는 전원의 안정성과 순도를 높이기 위해(교류성분 제거) 바이패스 컨덴서를 달아주었습니다.
음원은 어차피 NAS를 사용할 것이기에 OS와 플레이어만을 위한 SSD만 장착하고 하드디스크나 기타 샤시 팬등 모터가 달린 진동계는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OS는 윈도 7, 재생소프트와 라이브러리 관리는 J River 미디어센터 20을 사용합니다. 그밖에 몇가지 편의사항을 위해 제가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주로 원격 관리와 관련된 것인데, 주로 터미널 연결이나 모니터 없이도 PC를 콘트롤할 수 있도록 한 것들입니다)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면 디스플레이부인데, 요즘 네트워크 플레이어 중에는 재생정보를 보여주거나 직접 터치를 해서 재생 컨트롤을 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제품이 많습니다. 저도 비슷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머리를 쓰다가 약정이 끝나서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스마트폰에 PC와 통신하는 앱을 하나 짜서 현재 재생중인 곡의 정보를 나타내주면 되는거죠. 저는 여기에 더해 PC 전원을 연동해서 롱클릭을 하면 ON/OFF로 작동하도록 했습니다. 재생/멈춤/다음곡.. 등도 구현하는게 어렵지 않은데 어차피 리모콘 앱에 다 구현을 해 놔서 이건 생략했습니다. 사실 재생 정보도 리모콘 앱에 다 나오는지라 이 표시창은 그냥 뽀대용에 가깝습니다. ^^;;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최종 모습이 아래 사진입니다(배경이 지저분해서 포샵질을 했지만 기기는 실사입니다.) 상단이 DAC이고 하단이 PC입니다.
위 사진은 대기 화면(곡을 재생하지 않을 때)이고, 곡을 재생하면 아래처럼 재생 정보를 표시해 줍니다.
기술하기 복잡한 자잘한 기능과 음향적 부분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넘어갔는데도 글이 길어졌네요. 사실 중요한 것은 이런거보다 최종 음질에 관한 것이지만... 이 부분은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킬 요소가 있어서 그냥 생략할까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많은 고민 끝에 얻은 결과물이라 음질적으로는 만족합니다만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그런 거보다는 그냥 오디오 비슷하게 생긴 PC 조립기..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