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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목만 보고 또 무슨 소린가 했는데 읽어보니
요하문명이 황화문명보다 앞섰다는 것을 인정했군요.
한마디로 요하문명을 자기 시원으로 만들다보니 이른바 지들이 오랑캐로 불렀던
동이족이 통째로 황제 후예로 되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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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中 역사 수정 연구 우실하교수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중국이 전면적인 국사수정공정(國史修訂工程)에 나선 것과 관련 요하문명 연구가인 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이는 중국이 오랜 기간 준비해온 역사 관련 국가 공정의 완결판이라며 그 의도가 상고사의 전면 재편을 통해 중국 문명의 시원(始源)을 황화에서 요하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고 규정했다.
그는 2015년 국사수정공정이 완결되고 이를 바탕으로 국사교과서가 출간되면 그간 '오랑캐'의 역사로 분류됐던 중국 동북지역의 요하문명이 중국 문명의 기원이 되고 요하 문명에서 파생한 모든 고대 민족은 요하문명을 건설했다는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후손이라는 학계 차원의 그간의 주장이 국가 공인의 정사(正史)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동북의 요하문명에서 발원한 고조선과 고구려 등 우리 민족의 시조는 중국측 논리에 의하면 자연스럽게 황제의 후손이 되고 우리의 상고사가 송두리째 중국 역사에 편입되는 것이라며 우리 학계의 관심을 촉구했다.
다음은 우교수와의 일문일답.
--중국 국사 수정 공정은 언제부터 추진됐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중국은 1958년부터 1978년까지 20년에 걸친 작업 끝에 전설의 제왕인 '황제'부터 명(明)이 멸망한 1644년까지 중국 역대 왕조의 역사를 기술한 24사(史)와 청나라의 역사인 청사고(淸史稿)를 정리한 점교본(点校本)을 정사로 채택, 공인 역사서로 출간했다. 32년 만에 이뤄지는 정사 기록에 대한 수정은 이미 2005년부터 2년간 기본 자료 수집을 마쳤고, 2007년부터 본격적인 수정작업에 들어가 2015년에 출간될 예정이다.
--국사 수정 공정의 핵심은 무엇인가.
▲국내 학자들은 단순히 역사적 오류 등을 수정하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전면적인 고대사 재정비를 통해 중국 문명의 시원(始源)을 황화문명보다 앞서는 요하문명으로 삼는 것이 핵심이다. 요하문명은 1980년대 이후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요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명이다. 현재 진행중인 국사수정공정의 핵심은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실질적인 시발지로 삼고,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을 중화민족의 시조라는 '황제'의 후예들로 보며, 이들이 이룩한 모든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는 것이라고 본다.
--중국 역사 수정 작업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중국은 황화문명을 중화민족의 기원으로 삼았다. 동북 등 변방지역은 중화민족과는 다른 오랑캐로 여겼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요하 일대에서 황화문명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초기 국가형태를 띤 요하문명 유적들이 대량 발굴됐다. 중화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며 자부심에 찼던 중국 학계는 충격과 당혹감에 빠졌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 요하문명을 중화민족의 문명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즉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이 동이족이나 예.맥족이 아니라 '황제족'이라는 논리를 개발한 것이다. 이제 이 논리는 중국 학계의 정설로 굳어졌다. 중원 지역의 상(商) 왕조는 요하에서 갈라져 나온 황제의 후예가 하(夏)를 정벌하고 건립한 것으로 정리됐다.
--중국 역사를 수정하는 것인 만큼 우리와는 관계없지 않나.
▲요하문명의 핵심인 홍산문화 유적지에서는 각종 곰 형상물과 곰 형상의 옥기들이 발견된다. 홍산문화의 주 토템이 곰이고 이는 우리의 웅녀족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동이족, 부여족, 예맥족, 고조선, 부여 등은 바로 이 요하 일대에 건설되었다. 다시 말해 요하문명은 우리 민족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요하문명을 세운 세력이 황제의 후예라면 이 일대에서 활약했던 동이족과 예.맥족은 물론 고조선을 세운 단군 역시 황제의 후손이 되는 셈이다. 고조선 이후에 출현한 고구려는 말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황제의 자손이 세운 국가가 돼 논쟁의 여지조차 없어지게 된다. 우리의 상고사가 송두리째 사라지거나 중화민족 역사에 편입되는 것이다.
--우리 학계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주류 학계는 여전히 고조선의 기원을 평양으로 보고 있다. 당연히 요하문명이나 중국 상고사 수정은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요하문명은 황하문명과는 전혀 다른 북방계통의 문명으로 우리와도 밀접하다. 계단식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비파형동검, 치(雉)를 갖춘 석성 등의 유물들이 요하문명 지역에서 발굴된다. 황화문명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유물들이다. 다시 말해 요하문명의 적통은 몽골-만주-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 민족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에서는 요하문명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중간 역사 갈등을 넘어 올바르게 접근할 방법은 뭔가.
▲세계를 놀라게 한 요하문명이 새롭게 발견됐으니 중국이 상고사를 다시 쓰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요하문명이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의 영역이었고 요하 지역에서 파생한 모든 민족을 황제의 후예로 보는 시각이다. 이런 관점은 주변국 상고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대중화(大中華)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요하 문명은 명실상부한 동북아시아 시원(始源) 문명이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국경도 없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몽골 등 관련국이 국가적 이해관계를 떠나 공동으로 연구하고 토론한 뒤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