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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발굴현장의 꼬마고무신 아이도 못피한 ‘학살의 상흔’
불갑산 유해발굴 과정서
구슬 등 어린이물건 나와
손준현 기자
» 6·25 발굴현장의 꼬마고무신 아이도 못피한 ‘학살의 상흔’
검정 고무신. 40~50대에겐 어린 시절을 아스라이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소재다. 송사리를 잡는 그물이 되기도 하고, 모래밭에선 부릉부릉~ 트럭으로 변신하고, 구슬이나 딱지를 담는 그릇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고무신이 생산되기 시작한 1920년대 이래 1980년대 초반까지 검정 고무신은 늘 고향과 유년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었다.
하지만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검정 고무신도 있다. 25일로 60돌을 맞은 한국전쟁 때 희생된 민간인 유해 발굴 현장에서 나온 꼬마 고무신(사진)이 그렇다. 오랜 세월에 삭고 뒤틀린 고무신에는 코흘리개도 피해가지 못한 ‘학살의 상흔’이 깊게 패어 있다.
1951년 2월20일 국군 11사단 2대대는 전남 함평군 불갑산에서 ‘공비’를 토벌한다는 이유로 함평·장성·영광 지역 피란민들을 빨치산이나 동조자로 몰아 집단 사살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12월 ‘함평 불갑산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당시 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사살되었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지난해 함평군 해보면 일대에서 160여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발굴 과정에서 검정 고무신과 유리구슬, 연필 등이 나왔다. 고무신의 주인은 대여섯 살이나 됐을까. 동무들과 구슬치기를 하다 끌려 나왔을까, 아니면 침 바른 연필로 덧셈 뺄셈 문제를 풀다가 끌려 나왔을까. 어른 고무신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검정 고무신은 발굴자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1951년 전남 나주군에서는 11살이었던 양해중(71)씨가 세 살 위의 형을 잃었다. 양씨는 “경찰이 밭으로 주민들을 모아놓고 기관총을 쐈다. 총에 맞고 쓰러진 형에게 고무신으로 물을 떠다 먹였지만 죽었다”며 옛 기억에 몸서리쳤다.
군경뿐 아니라 좌익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도 많았다. 같은 해 전남 화순군 북면 원리에서 장정암씨 가족 9명이 빨치산에게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그날 첫돌을 맞은 손자는 생일이 곧 사망일이 됐고, 생후 4개월과 9살 손자 2명도 희생됐다
6.25가 이땅의 마지막 전쟁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