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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한 (韓), [한민족의 이름]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0-06-14 22: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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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79

제목

대한민국의 한 (韓), [한민족의 이름]

글쓴이

이명재 [가입일자 : 2002-07-08]
내용
1. 우리 민족의 이름



개인에게 성[姓]과 이름이 있어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가장 명확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 민족들도 스스로 부르거나 주변에서 불러주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과 관련된 어떤 특성이나 의미가 그 이름 속에 들어 있으므로, 그 이름에서 자긍심과 동유의식[同類意識]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의 경우 가문의 역사가 기록된 족보는 그 성[姓]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조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되며, 그 시조의 업적을 자랑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민족을 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민족의 이름에 대해 아는 것이 첩경이 될 수 있다. 그 이름 속에는 민족이 형성되기 이전부터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인데, 한자문화권인 우리나라의 경우 후대에 와서 한자로 기록된 중국 사기[史書]에 나오는 한자로 된 이름은 당시에 우리 스스로 불렀던 우리말 이름과는 다를 수도 있으므로 이를 감안해야 한다.



논자가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우리 민족의 이름을 물었을 때 나오는 답은 ‘한민족’ㆍ‘조선족’ㆍ‘배달민족’ㆍ‘백의민족’ 등이었다. 이 중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는 것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흰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는 의미의 일반명사로 볼 수 있으므로, 우리 민족의 이름을 ‘한민족’ㆍ‘배달겨레’ㆍ‘조선족’이라고 하는 게 우리나라 다수 국민들의 상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과거 일본과 외국 사람들은 우리를 ‘조센징[朝鮮人]ㆍ조선족ㆍ고려인ㆍKoreanㆍCoreeㆍ동이(東夷) 등으로 부른다. 우리가 스스로 부르는 이름을 듣고 자기들 문자로 표현했거나 멸시나 부러움을 담은 의도적인 이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우리 민족의 이름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먼저 학자들이 부르고 있거나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이름을 알아보고, 그렇게 부르는 연원을 추적해봄으로써 우리 민족이 형성될 당시에 스스로 불렀던 이름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우리가 부르는 ‘한’ㆍ‘조선’ㆍ‘배달’



우리는 평소 생활 속에서 한[韓]을 우리 자신을 나타내는 말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호가 대한민국이고, 우리글을 ‘한글’이라 하며, 우리 전통가옥을 ‘한옥’, 우리 전통 옷을 ‘한복’, 우리 전통 종이를 ‘한지’라고 하는 등등 그 사례는 수없이 많다. 다수의 학자들도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 간에 우리 민족의 뿌리, 우리 문화의 뿌리가 ‘한’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제2장의 제목이 ‘한민족의 기원’이고, 절과 항의 제목에서도 ‘한족’ㆍ‘한민족 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이름을 ‘한민족’이라고 명확하게 하고 있다.



일찍이 우리 민족의 형성에 관심을 가졌던 손보기 등은 1989년에 ‘한민족학회’를 창립하고, 『한민족』이라는 기관지 창간호의 특집을 ‘한민족의 기원’, 제2집의 특집을 ‘한민족의 형성’으로 하는 등 우리 민족의 이름이 ‘한민족’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여 학회를 만들어 연구를 하고 있다.



그 외에 손보기를 비롯하여 윤내현, 이기동, 신용하, 정형진, 이선복, 한영희, 이성규, 민영현 등을 포함한 수많은 학자들도 그들의 책과 논문의 제목이나 내용에서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부르면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그리고 대부분의 국민들도 우리가 한민족 또는 배달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한편, 김정학과 김정배, 신용하 등은 각각 그들이 발표한 책과 논문의 제목과 각 장의 이름에서 ‘한국민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한국사시민강좌』32호의 특집이름을 ‘한국인의 기원’이라고 하는 등 ‘한국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학자들도 더러는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의 ‘한국민족’ㆍ‘한국인’이라는 말은 고유명사로서의 우리 겨레 이름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민족’이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로 인식되거나 민족보다는 ‘국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들도 논문을 전개하는 내용 속에서는 ‘한민족’이라는 용어도 간간히 섞어서 사용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한국민족=한민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내현의 경우 민족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약간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한민족의 형성과정을 설명하면서 아래와 같이 주장하였다.





고조선이 건국됨에 따라 한민족의 형성을 보게 되었다. 고을나라가 형성되면서 종족이 형성되었고, 한반도와 만주에 있었던 많은 종족의 고을나라 가운데 가장 강한 종족의 고을나라가 다른 종족의 고을나라를 복속시켜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고대의 국명은 바로 그 나라를 세운 종족의 명칭이었으므로 고조선을 세운 중심 세력은 당연히 조선족 고을나라였을 것이며, 그 조선이 고조선을 세운 후에는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을 통치했던 국가인 고조선의 명칭이면서 동시에 민족의 명칭도 되었다. 그런데 朝鮮은 아사달이 한자화된 것이므로 조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전에는 아사달족으로 불렸을 것이다.



즉, 그의 주장은 조선의 건국에 따라 한민족이 형성된 후 민족 명칭이 조선이 되었는데, 조선이 한자화 되기 전에는 아사달’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 ‘조선족’이라는 이름이 언제, 왜 ‘한민족’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조선의 건국으로 한민족이 형성되었는데 민족이름은 조선’이라고 하는 모순된 주장이 되는 것이다.



우리 개인적인 성씨[姓氏]는 시조 할아버지의 성씨를 따라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한민족’이라고 하는 경우 민족의 시조와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즉, 고교 교과서에서 ‘단군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시조신화’,모든 교과서에서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는 조선 이라고 했으니 우리 민족 시조의 이름은 ‘단군’이나 ‘조선’이라고 봐야 하는데, 민족의 이름은 ‘한민족’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단군’과 ‘한민족’이라는 이름 사이의 관계나 한민족의 ‘한’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으므로 이름 자체에 대한 믿음이나 자긍심이 생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종서가 “한민족의 한[韓]자는 한반도 남쪽의 삼한의 후손이라는 의미만을 가진 것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될 종족 명칭”이라고 한 것이나, 이도상이 “한민족이라는 용어는 1896년 대한제국이라는 국호가 생긴 이후부터 사용된 용어”라고 하게 된 것도 지금까지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나 근거가 명확하지 못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겨레의 이름을 ‘조선’이라고 불렀거나 부르는 사람들도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그 목적과 취지는 다르지만 그렇게 불렀다.



먼저 북측에서는 학자들과 함께 모든 언론들이 자신들을 ‘조선인민’ㆍ‘조선민족’이라고 부른다.이는 현재 북측 정부가 자신들이 남측에 비해 고대 조선으로 부터 근세조선으로 이어져 온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정부의 이름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붙인 의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제 때 손진태 등이 조선민족[朝鮮民族]이라고 한 것이나 최남선이 조선인[朝鮮人]이라고 명명한 것은 국토를 강점하고 우리 겨레를 일본인화 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일본의 시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일본인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李조선왕조의 ‘조선’을 가져다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사람들은 요즘은 대부분 ‘한국인’이라고 부르지만 일제 때는 자신들의 식민지라는 멸시의 감정을 담아 ‘조센징(朝鮮人)’이라고 불렀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른 조선과 북측 사람들이 부르는 조선, 그리고 일본인들이 부른 조선 사이에는 이렇게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현재 우리 겨레와 혈통을 같이하는 만주지역 사람들을 조선족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은[殷]민족, 주[周]민족, 고구려족, 옥저족등 국명에 ‘민족’ 또는 ‘족’을 붙이는 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지만, 오랜 옛날의 조선이나 李조선왕조를 고려해서 붙인 이름이 아니라 1940년대부터 근래까지 만주로 넘어온 사람들에 대해 현재 북측을 부르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더라도 윤내현이 주장하듯이 ‘조선’이란 민족의 이름은 단군의 조선으로 부터 李조선까지 이어지는 나라이름이면서 동시에 민족의 이름이었고,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체적인 시각에서 많이 사용했던 이름이었다고 하는 상당한 근거와 설득력이 있는 우리 민족의 이름인 것은 틀림없다.



반면, ‘배달민족’이라는 말은 한글날 노래 첫 구절이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이고, 안호상이「배달겨레의 고대역사와 주체사상」이란 논문과 『배달의 종교와 철학과 역사』[어문각, 1964]라는 책을 쓰는 등 광복 직후에는 흔히 쓰였던 것 같으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대배달민족사』, 『배달민족혼』, 『21세기 배달민족사』, 『배달민족 대륙역사』등의 책이출판되는 등 소위 재야의 민족학자들이나 일부 국민들만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작은 국어사전에도 “배달민족은 ‘우리나라 겨레’, 배달나라는 ‘우리나라의 상고시대 칭호. 대종교에서 주장함’”등으로 기술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 민족의 이름이 ‘배달’이라는 데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주변에서 부르는 ‘東夷’ㆍ‘Korea’



한편 세계의 많은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Korea라고 부르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도 우리나라의 영문국호를 ‘Republic of Korea’라고 붙이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단어는 언어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영국 등 영어권에서는 Korea, 에스파니어어권에서는 Corea, 불어권에서는 Coree 등으로 부르며, 동남아지역에서는 ‘Core(꼬레)’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연해주 지역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옮겨갔던 우리 동포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같은 근거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 오랫동안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그들의 동쪽이나 동북지역 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불렀으며, 우리나라 현재 교과서에도 ‘동이족’이라는 족명[族名]이 등장한다. 79년판 고교 국사에서부터 서술되기 시작한 ‘동이’는 내용이 변하고 줄어들기는 했으나, 90년 판 19쪽에는 “동이족의 분포는 고대의 한민족이라 할 수 있는 예ㆍ맥ㆍ부여ㆍ고구려ㆍ북옥저ㆍ읍루 등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설명까지 달려 있었으며, 90년판부터 지도에 표시되기 시작한 ‘동이족의 분포지역’이라는 표시는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다.





3) 다양한 민족 이름의 연원[淵源]



우리 민족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어느 시기에 누군가가 그냥 정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그렇게 부르게 되는 배경이 있고, 독특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그 역사와 특성을 알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긍심이 생기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연구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위에서 거론 되었던 한, 배달, 조선, Korea와 동이에 대해서 나름대로 수집된 자료들을 통해 그 뿌리를 추적해봄으로써 우리 겨레의 이름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자 한다.



⑴ ‘한’



① 삼한(三韓)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현상이다. 역사 속에서 한[韓]이라는 이름의 나라 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나라는 조선 남쪽 지역에 있었다는 ‘삼한’과 ‘대한제국’일 것이다. 여기서 대한제국은 민족의 형성 시기에 비추어 고대 민족 이름의 연원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으므로 제외한다.



그렇다면 민족 형성 시기와 가까운 조선 시대의 ‘삼한’이 민족이름과 관련이 될 수 있는데, 현재의 초ㆍ중ㆍ고 교과서에는 삼한과 조선이 다른 나라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런 삼한이 한민족의 뿌리라고 하면 조선 주민은 한민족이 아니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므로 조선이 중국의 역사라고 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원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반면, 윤내현의 주장대로 삼한을 조선 거수국[渠帥國]으로 볼 경우, 삼한이 조선의 주도세력이 아니므로 그의 주장처럼 우리 민족의 이름은 한민족보다 조선민족이 되는 게 더 합리적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든 ‘한민족’이라는 이름이 삼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는 말은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한편, ‘삼한’은 꼭 한반도 남부에 있던 나라이름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ㆍ외에서 우리 민족 전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신채호가 조선 후기에 조선을 세 개의 韓으로 나누어 다스렸다는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의 ‘삼한’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 후에는 중국이 먼저 그런 용어를 사용했는바, 구당서[舊唐書]백제전[百濟傳]의 지여해동삼국[至如海東三國]…수령삼한지맹[遂令三韓之氓’]라는 내용과 한서[漢書]권1 주[註]의 맥재동북방삼한지속개맥유야[貊在東北方 三韓之屬 皆貊類也] 등 여러 곳에 나오는 삼한 관련 내용을 종합해보면 7세기 무렵 이후 수[隋]ㆍ당[唐]시대 중국인들은 삼국[三國]을 통칭하여 삼한[三韓]으로 표현하기도 했다는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통일 이후 당나라와 다투는 과정에서 삼국[三國]이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의 삼한[三韓]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三國史記』김유신전[金庾信傳]의 673년 기사에서 삼국통일을 삼한위일가[三韓爲一家]라고 표현했고, 691년에 당나라에서 무열왕의 시호를 바꾸라고 요구해온 데 대해 일통삼한[一統三韓] 한 공적이 있다’면서 일축한 내용등에서 7세기 후반 신라인들 사이에선 삼국을 삼한으로 여기는 인식이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삼한을 통일하여 왕위에 올랐다.”는내용에서는 후삼국과 발해까지를 통틀어 삼한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런 삼국동일체[三國同一體] 의식은 고려 후기까지 이어졌으며,제왕운기[帝王韻紀]의 조선이 삼한으로 나뉘어졌다가 삼국으로 연결되었다’고 하는 내용과 같은 의식이 형성된 李조선조에 들어오면서 민족의 동질성의 원천으로서 ‘삼한’ 대신 그 이전 하나였던 ‘조선’을 주로 사용했으나 삼한이란 용어도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



일본에서는 『日本書紀』신공황후섭정전기[神功皇后攝政前記]의 시소위지삼한야[是所謂之三韓也]기사로부터 18ㆍ19세기의 정한론[征韓論] 멸한론[滅韓論]을 거쳐 조선총복부시정연보[朝鮮總督府施政年報]에서는 1910년 이전의 우리나라를 ‘삼한’ㆍ‘한국’ㆍ‘구한국’이라 하고, 그 이후를 ‘조선’이라고 구별함으로써 ‘한’을 우리나라나 민족을 멸시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이처럼 ‘삼한’이란 용어는 그 목적과 의도는 다르더라도 삼국 간의 동질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합한 단일한 개념으로서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삼한은 조선 시대에 조선의 남쪽에 있었던 삼한도 있지만, 조선에서 삼국으로 이어지는 중간 단계의 ‘세 개의 한이 합쳐진’ ‘우리’라는 의미로서 우리 민족 전체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런 활용이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으므로 어느 경우든 우리 민족 이름으로서의 ‘한’의 뿌리로 삼기에는 좀 미흡하다고 생각된다.





② 만주지역 동이[東夷]의 한[韓]



최근 신용하가 발표한 ‘만주지역의 韓에 관한 주장은 우리 민족 이름과 관련해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는 조선을 건국한 중심 세력이 만주에 있던 ‘한’부족이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단군’이 세운 ‘조선’의 후예인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의미 있는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사서[史書]에 나타나는 한[韓]은 ①중국 관내에 있는 옛 중국의 한[韓]. ②연의 북쪽에 있는 동이[東夷]의 [韓], ③위만에 패하여 다시 동쪽으로 옮겨 살았다는 동이[東夷]의 한[韓]등 세 한[韓]이 있다. 이 중 ①③의 한[韓]은 언제나 한[韓]으로만 표기되는데 비해 ②의 한은 상서[尙書]에서는 간맥[馯貊]의 간[馯]으로,급청주서주[汲冢周書註]에서는 한예[寒濊]의 한[寒]으로도 나타난다. 이는 동이족[東夷族]인 그들의 발음인 ‘한(Han)’을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이 중 ①③이 아닌 ②만주지역의 한(韓ㆍ馯ㆍ桓)부족이 조선 건국의 주역이며 왕계[王系]로서 한국민족 형성을 주도했다. 이렇게 조선 원민족이 형성된 후 조선민족을 부르는 호칭이 다수 나오게 되었다. 아사달족, 밝달족, 朴達族, 단족[檀族], 배달족, 發朝鮮族, 發族, 桓族, 韓族, 馯族등이 그것인데, 이들은 모두 ‘밝음’을 뜻하는 ‘한’과 연결되는 이름이다. 따라서 관자『管子』규도편「揆道篇」과 경중갑편「輕重甲篇」에 나오는 발조선[發朝鮮]도 조선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②만주지역의 ‘한’에 대한 그의 분석을 좀 더 살펴봐야 한다. 그는 시경『詩經』한혁「韓奕」편의



커다란 저 韓의 성은 연[燕]나라 백성들이 완성한 것일세(溥彼韓城 燕師所完)

선조가 받으신 명을 받들어 많은 오랑캐를 다스리셨네(以先祖受命 因時百蠻)

왕께서 한후[韓候]에게 추[追]와 맥[貊]을 맡기셨네(王錫韓候 其追其貊).

북국들도 모두 받아서 그들의 백[伯]이 되셨네(奄受北國 因以其伯).



라는 내용을 해석하면서 정씨집운『鄭氏集韻』및 잠부론『潛夫論』의 내용과 연관지어, 여기에 나오는 한[韓]을 동이의 별종인 한[韓, 馯ㆍ寒ㆍ桓]으로 보고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가.한(韓, 馯ㆍ桓)나라의 저 커다란 성은 원래 한(韓, 馯ㆍ桓)이 쌓았는데, 또 燕이 그것을 완성시킨 것이다.

나.한은 많은 오랑캐들을 다스렸다.

다.한은 追(濊-김상기)와 貊을 통합하였다.

라.한은 북국들도 모두 지배하여 그 伯(우두머리)이 되었다.



따라서 그는 시경『詩經』한혁「韓奕」편의 내용에 대해 “동이의 한(韓, 馯ㆍ桓)족이 중심이 되어 추追[濊]와 맥[貊]을 통합하고 북국들[중국의 북쪽에 있는 나라들]을 ‘모두’ 다스리는 종주국(伯)이었음을 알려주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여, 연나라 북쪽에 예와 맥을 통합한 강성한 한(韓ㆍ馯ㆍ桓)이 연나라와 쟁패를 벌였다는 새로운 해석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단군설화에서 조선을 건국하는 태양ㆍ곰ㆍ범 토템 부족 중 태양 숭배 부족은 환인ㆍ환웅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한(桓ㆍ韓ㆍHanㆍHoan)’부족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아들ㆍ자손이라고 생각하며, 태양ㆍ밝음(광명)ㆍ햇빛ㆍ새빛[東光]을 숭배한다.”고 하여 ‘태양족인 한’부족이 조선을 건국한 주체세력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이 연구는 아직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윤내현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아직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던 조선민족을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민족’은 조선 후의 삼한이나 대한제국에서 연원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건국 이전부터 있었던, 그래서 ‘조선’보다도 더 오래된 ‘한’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족[族]명에서 연원하는 것이 된다.





③ 태양족의 상징 ‘밝’ㆍ‘환’



신용하의 ‘태양족을 한이라고 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나와 있다. 먼저 최남선은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이 ‘한’의 어원에 대해 ‘우리 민족의 먼 조상들은 하늘의 자손으로서 하늘과 태양과 신을 하나로 보는 사상을 가졌는데, 그 본국을 「」이라 하고, 氏계를 「」이라 하고, 그 族호는 「」이라고 일컬었다. 이는 모두 하늘(天)을 뜻하는 말인데, 후대에 와서 「」은 韓ㆍ桓으로, 「」은 大ㆍ夷(고음 )로, 「」은 白ㆍ貊으로 쓰게 된 후에 자기들이 개척한 땅에는 흔히 「밝」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神明의 원뜻이며, 이를 한자로 번역하여 貊ㆍ發ㆍ夫里ㆍ夫餘ㆍ番ㆍ方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최민홍은 이를 정신적인 내용과 연결하여 비슷한 주장을 했다.



동쪽에서 가장 높은 산을 ‘밝달산(지금의 백두산)이라고 불렀듯이 ‘한’은 ‘밝’과 궁극적으로 같은 말로서 ‘밝’은 ‘환’한 광명에서 온 말이다. 역사에 나오는 이理ㆍ도道ㆍ광명光明ㆍ금金 등이 모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와 빛을 상징한 것으로서 환하고 밝은 것이라는 ‘한’의 동의이음[同意異音]으로 한국 민족의 정신생활을 꿰뚫어왔다.



이러한 분석의 가장 원초적인 자료가 설화인 것 같다. 뒷장 겨레 얼 부분에서 좀 더 자세히 보겠지만, 우리나라의 단군, 해부루, 해모수, 동명, 추모, 박혁거세 등의 탄생 설화와 창세신화에도 한결같이 태양과 하늘이 연결되어 있다. 나아가 우리와 이웃하거나 우리 민족에 포함될 수도 있는 선비, 동호, 고리족 등의 설화에도 이런 내용이 많다고 한다.그리고 그렇게 태어나서 나라를 세운 시조의 이름에 단[檀]‘해’동[東]명[明] 주[朱]혁[赫] 온ㆍ‘금’ 등이 들어 있다. 우리가 태양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설화이고 이름들로 보인다.



언어학적으로 ‘한’에 대해 구체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많지 않지만, 정연규는 ‘한’의 상고음인 ‘간’(gan)이 고대어에서 가라(kara) 또는 가나(kana)였는데, 이를 비슷한 음으로 소리 옮김 한 것이 한[韓], 간[馯]이다,고 했으며, 옛말을 연구한 박현과 박병식은 아래와 같이 비슷한 주장을 한다.



박 현 : ‘한’은 ‘하나’와 같은 말이고 ‘하나’는 ‘하라’에서 온 말인데, ‘하라’는 고구려 말에서 ‘처음’이라는 뜻을 가진 어근 ‘하’와 태양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가 결합된 말이므로 ‘원 태양’이라는 의미가 된다. 일반적으로는 뭇 태양이라는 ‘라’와 함께 ‘태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한=태양’)



박병식 :『일본서기』등의 기록을 분석해보면, 진국[辰國]과 한국은 모두 태양의 나라라는 뜻’이다. 1907년에 출판된 『大日本地名辭書』제3부 「국호편」에 여러 저명한 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하여 ‘일본이란 국호는 한민족이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었으나 우리가 그 이름이 아름답고 우리나라 이름으로 쓰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만고불변의 국호로 삼았다.’고 하면서 ‘日本은 태양의 나라라는 히노모도에 한문자를 적용한 것이다’고 쓰고 있다. ‘韓’이란 한문자는 ‘가라’(加羅)라는 우리말을 나타내기 위한 이두문자인데, ‘가라’라는 우리말은 ‘태양’ ‘왕’ ‘귀중한 사람이나 물건’이라는 뜻이 있다.따라서 단군의 조선 때부터 우리 땅을 ‘태양의 나라’라고 일컬어 온 것이다.



이상에서 한민족에서의 ‘한’의 원 뿌리가 ‘태양’ㆍ‘밝음’의 의미를 가진 우리말이고, 민족이 형성되기 오래 전부터 있던 태양숭배 부족 또는 종족의 단계를 거쳐 ‘한민족’으로 발전되어 조선을 건국하는 중심세력이 되었으며, 그 후 범위가 더 넓어지고 단결이 공고화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연구가 나오기 전에 조선 건국 이전부터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속에 들어 있었으나 위서시비로 인해 무시되었다. 『환단고기』가 1911년경에 만들어진 위서라고 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는 있으므로 참고로 소개한다.



①우리 환(桓)이가장 오래 전에 건국을 하여(吾桓建國最古)…이를 환국이라 하고…. 「삼성기」전 상편, 15쪽



②(密記에)환국의 말기에 겨레의 칭호가 다양하였는데…곰 무리는 받아들여 아들을 낳고 산업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범 무리는 끝내 그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이를 사해로 내쫓았다. 桓族의 일어남이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 「삼성기」전 하편, 39-40쪽



③당시(환국 때)의 사람들은 스스로 호를 桓이라 하고 감군을 因이라 불렀다. 「태백일사」‘환국본기’, 162쪽



④이른바 환은 즉 九桓을 말하는 것이다. 한(韓)은 크다는 뜻이다.…우리 환족[桓族]은 모두 신시가 이끄는 삼천 무리의 장막에서 나왔다. 「태백일사」‘신시본기’, 184ㆍ185쪽



⑤桓이란 광명, 곧 환하게 빛나는 것으로 그 형체를 말하는 것이며…. 『규원사화』조판기, 9쪽



앞에서 살펴본 대로 ‘桓’의 원음 또는 고음이 ‘한’(寒 또는 韓)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여기 나오는 환족[桓族]은 ‘한족’이라 읽히므로 ①③에서 ‘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씨족 또는 부족이 환인시대인 환국의 초기부터 있었고, ②④에서는 그 인구가 늘어나 이름도 여러 가지가 되었으나 환국 말기에서 환웅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한’ 씨족(또는 부족)이 중심이 된 ‘종족(또는 민족)’으로서의 桓族(韓族)이 시작되었다는 게 된다. 이 환웅 시절의 九桓(④)을 통합한 단군의 역사로 연결되어지게 될 것이니, 조선 건국이전에 ‘한’이라는 이름의 종족이나 민족이 있었다는 논리가 된다. 이런 내용은 신용하의 주장과 맥이 통하면서 오히려 더 구체적이며, 앞에서 정립했던 ‘국가 성립 이전의 민족 형성’ 논리를 보강해줄 수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아직은 위서 논란이 있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냥 무시할 것이 아니라 참고할 가치는 있다고 본다.





⑵ ‘배달’



앞에서 보았듯이 ‘배달’이라는 말은 밝달과 같이 ‘밝(=한)이 자리잡은 터’로서 ‘밝은 나라’ㆍ‘태양의 나라’ㆍ‘환한 나라’ 등의 의미가 되므로, 박병식의 주장처럼 ‘한’과 동의리음[同意異音]의 관계에 있는 말임은 앞 ‘한’의 연원 추적에서 살펴보았다. 이런 내용은 김교헌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서 역사적으로 더욱 명쾌하게 드러난다.



김교헌은 “단군이 무진년(서기전 2333년)에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임금(大君主)이 되어 나라 이름을 단[檀]이라 했으며, 방언으로 배달이라고도 부른다.…23년을 지나 경인년(단기 23년)에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나라이름을 고쳐서 조선이라 했다.”고 하여, 단군이 처음 세웠던 나라인 단국[檀國]을 배달나라로 보고 단군을 배달(=밝달)임금으로 보았다. 박달나무 단[檀]의 ‘박달’에서 ‘배달’로 변음 되었다는 것이다.



언어학자인 강길운은 “우리말 ‘박달’이 한자어로 나타날 때는 단수[檀樹]ㆍ白岳(白山)ㆍ평양[平壤] 등으로 나타남을 감안하여 단군을 박달족의 통치자를 일컫는 ‘박달-간’으로 보고, ‘배달’은 ‘박달’이 와천(訛舛)된 것이므로 우리 민족도 배달민족이 아니라 박달민족이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단[檀]자가 박달나무 단자이니 밝음과 환함을 나타내는 의미의 ‘박달’이라는 말로부터 ‘밝은 나라’는 단국[檀國]이 되고 박달임금이 단군[檀君]으로 표기된다는 논리이므로 앞에서 본 ‘한’의 뿌리와 크게 차이가 없다.



그리고 배달에 대해 『국사대사전』에는 기술조차 되어있지 않으나 국어사전에는 어느 정도의 뿌리를 추리할 수 있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배달’과 관련된 말에 대한 몇 가지 사전의 내용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① 배달 : 배달나라의 준말.



② 배달나라 : 우리나라의 처음 칭호. 상고시대 우리나라의 이름. 대종교에서 주장함.



③ 배달민족 : 우리나라 겨레.



④ 배달족 : 배달민족의 준말



비록 대종교에서 주장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상고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이름이 ‘배달’이었고, 거기에서 우리 민족을 일컫는 배달민족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은 국어사전에 게재되어 있는 내용이므로 상당히 보편화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2001년까지 사용한 중학교 국사교과서에서는 “배달민족이라고도 불리는 우리 민족 이라고 하여 우리 스스로를 ‘배달민족’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분명히 서술했으나, 그 다음해부터 없어졌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국민들도 우리가 ‘배달민족’이라는 데 공감한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배달’에 대해서도 학문적 가치는 아직 검증이 덜 되었거나 다소 떨어지더라도 참고할만한 자료 두 가지를 소개한다. 박현의 연구와 『환단고기』의 기록이다.



박현의 연구는 언어학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어 요약 소개한다.



배달의 원래 음가는 ‘바이다’이다. 여기서 ‘바이’는 ‘이끌다’ ‘중심적이다’ 등의 뜻을 가진 어근인데, 지난 날 우리 겨레는 빛을 모든 사물의 중심으로 생각했으므로 ‘밝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다’는 『三國史記』에서 부구토[復舊土]의 의미로 쓰였다는 다물[多勿]에서의 ‘多’와 같이 ‘터’나 ‘땅’과 통하는 말이다. 따라서 바이다는 ‘중심적인 터’이며 ‘밝음의 땅’이 되고, 이 의미를 한자어로 표시하면 중화[中華]가 된다. 우리 겨레가 그간 세계의 중심으로서 세계를 두루 밝히려고 붙였던 이름 ‘배달’이 우리의 새로운 민족 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환단고기』에는 “환웅씨가…신시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이라 불렀다.”고 하여 환웅이 세운 나라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온다. 위서시비 문제가 있지만, 앞에서 ‘한’이 밝음을 뜻하며 ‘배달’이라는 한자어로 나타났다는 논리와도 맞으며, 사전에 나왔던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이름’이라고 하는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어 참고하였다.





⑶ 조선[朝鮮]



‘조선’이라는 이름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이름으로부터 李조선을 거쳐 현재의 북측 정부의 이름까지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는 이름이다. 그 원 뿌리는 ‘한’ㆍ‘배달’과 비슷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 대표적인 논리를 단재 신채호의 아래와 같은 주장에서 볼 수 있다.



해부루, 해모수 등 왕성[王姓]을 해[解]라 함은 태양에서 뜻을 취함이요, 신라에서 왕호를 불구내[弗矩內](불그레)라 함은 태양의 광휘에서 뜻을 취함이요, 천국을 桓國이라 함은 광명에서 뜻을 취함이다. 대개 조선족이 최초에 서방 파미르 고원 혹은 몽고 등지에서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동방으로 나와 불함산(今 白頭山)을 명월이 출입하는 곳, 곧 광명신의 서숙으로 알아 그 부근의 토지를 조선[朝鮮]이라 칭하니 ‘조선’도 고어의 광명이란 뜻인데, 조선은 후세에 이두자로 朝鮮이라 쓰니라.



조선[朝鮮]이 밝음을 뜻하는 ‘한’이나 ‘배달’과 같은 뜻의 한자어라는 의미인데, 많은 학자들이 이런 논리에 공감하고 있다.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는 조선이란 말이 나타나지 않는 점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한자어 朝鮮이 생기기 전에는 ‘한’ㆍ‘밝’ㆍ‘배달’ㆍ‘불함’ 등의 우리말로 불리던 나라이름ㆍ종족이름이 그 후에 ‘朝鮮’이라는 한자말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가 되므로 그 뿌리는 역시 ‘한’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언어학자인 강길운[姜吉云]은 이와 좀 다른 주장을 한다. 그는 여러 가지의 분석을 통해 조선이 본래 국호로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 부족명과 같이 두루 쓰일 수 있는 보통명사로 출발되었을 것이라면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朝鮮에 대해『史記』색은[索隱]에서는 조수[潮水]와 산수[汕水]의 두 물의 이름을 합하여 지은 지명’,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동쪽에서 해 뜨는 관경을 형용한 것’,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는 조[朝]는 동방의 뜻이고 선[鮮]은 선비산의 약칭이므로 조선은 선비산 동방의 나라’, 최남선은 朝는 ‘첫’의 뜻이고 鮮은 ‘새다’ㆍ‘싱싱하다’의 뜻을 가진 의역어[意譯語], 이병도는 ‘해 뜨는 곳’ 등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한자풀이로 한 해석에 반대한다.



조선이라는 말의 뿌리는 당시의 우리말에서 찾아야 한다. ‘조선’은 원래 국명이 아니라 보통명사인 퉁구스족이라는 부족명으로서 숙신[肅愼]ㆍ주신[珠申]ㆍ주진[珠眞]ㆍ주선[州鮮]ㆍ여진[女眞](jušen, 만주어)ㆍtěosuńg(퉁구스족, 길약어) 등과 동의이기[同音異記]로 보아야 한다. 그 어원은 teoden(전전하는 것→만주어로 ‘유목민’의 의미)과 동근어[同根語]였을 것이다.



그의 주장 중에 ‘여진’을 뜻하는 또 다른 만주어 ‘아이신(愛新)’이 황금을 뜻하므로 앞에서 본 최민홍의 ‘한’을 의미한다는 주장과 연결되므로, 원래 우리가 쓰던 말을 찾아가면 ‘조선’이라는 우리말에도 ‘황금’ㆍ‘밝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최근 순록유목민으로부터 우리 겨레의 뿌리를 찾는 노력을 하고 있는 주채혁은 조선[朝鮮]의 뿌리도 단군조선 이전으로 올라가며, 그 의미도 밝은 곳이라는 의미보다는 생계경제인 순록치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검증된 단계는 아니지만 참고할만한 가치는 있다고 판단되어 그의 주장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朝鮮의 ‘朝’는 압록강만 넘으면 ‘아침 조(zhao. 1聲)’가 아닌 ‘찾을 조(chao, 2聲)’로 읽으며, 鮮은 순록의 먹이인 이끼(蘚)가 나는 낮은 산(小山)을 의미하므로, ‘朝鮮’이란 순록의 먹이인 이끼를 찾아 순록을 몰고 소산을 찾아다니는 ‘순록유목민’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본다. 또한 만주지역 현지의 말에서 朝族과 鮮族을 구별하고 있는 것을 추적해보면,유목생산업을 개척해낸 차아탕(Chaatang ; 치우족)-朝族이 鮮(Soyon)族을 통합해 이룬 예맥 연맹국가가 조선이라고 볼 수 있다. 현지에는 순록을 고리(Qori)라고 하므로 그 ‘고려’와 순록유목민을 뜻하는 ‘조선’이라는 이름이 모두 순록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직도 순록의 주식인 蘚이 자라고 있는 대흥안령 북동부와 소흥안령 서북부를 중심으로 蚩尤·朝鮮·槁離라는 순록유목제국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물론 치우계는 요서스텝으로 나아가 중원으로 진입해 오랜 도전과 응전 과정을 거쳐 점차로 뒷날 商族帝國의 역사적 토대를 마련했다.



현지에 가서 직접 보면 濊(숫수달 : Buir=夫餘), 貊(너구리 : Elbenku), 朝鮮(순록치기 : Chaatang), 高[句]麗(순록 : Qori), 발해(渤海 : 늑대의 토템 語 ; Booqai), 솔롱고스(黃 : 누렁 족제비, Solongo의 복수형)라는 종족 또는 나라 이름이 이미 한민족 스키토ㆍ시베리안 기원을 웅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의 주장은 아직은 지엽적인 내용을 너무 확대해석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고대의 모든 말들이 생활과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조선’의 어근이 유목민을 뜻한다는 앞의 강길운 주장과 연결되는 면도 있으므로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보면, 조선이라는 말은 원래 태양족들이 많이 사용하던 밝음을 나타내는 ‘밝’ㆍ‘한’ㆍ‘불’등의 말이 한자어화 되는 과정에서 발음이나 의미를 따라 만들어진 단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초기단계의 주장인 황금(아이신)ㆍ유목민ㆍ순록이라는 말과 한이나 조선과의 연결 가능성도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⑷ ‘Korea’와 '고리‘족



현재 우리나라의 영문국호 Korea의 뿌리에 대해 현 교과서에서는 “고려의 개방적인 대외 정책으로 활발해진 대외무역 과정에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고려’의 이름을 서양에 전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코리아’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여 ‘고려(高麗)’라는 나라 이름에서 ‘Korea’가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Korea의 발음부호는 ‘kəríə’로서 ‘고려’라고 발음하게 되어 있지만, 한자 高麗의 ‘麗’자는 “나라이름으로 쓰일 때는 ‘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1990년 이전에 나온 대부분 자전의 공통된 풀이다.그렇다면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리라고 발음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외국에서도 ‘코리’ 또는 ‘꼬리’라는 발음이 나는 단어를 쓰는 게 맞을 것이다. 실제로 불어권에서는 Coree라고 하여 명확하게 ‘꼬리’로 발음하며, 영어 ‘-ea’의 경우 ‘-iə’보다는 ‘-i:’로 발음되는 경우가 많은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중세의 고려보다 훨씬 앞에 등장하고 발음도 분명히 ‘kɔri'인 ‘고리(槀離, 槁離)’가 Korea의 뿌리라고 볼 수도 있으며,주채혁이 ‘투르크-몽골어와 코리야크어에서 순록을 코리(Qori)라고 한다’고 주장하는 순록이나, 몽골의 시조인 ‘코리족’,지금도 바이칼 호 올콘섬에 살고 있는 ‘코리’, 또는 ‘구리’(九夷, 九黎 또는 句麗)와 연결되는 데서 뿌리를 찾는 게 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나라이름을 외국에서 부르는 대로 ‘Korea’라고 하는 것은 세계화시대에 부응한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Korea’는 우리가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우리가 지어서 부르는 우리나라 이름이다. 외국인들이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 외국인들이 알기는 쉽겠지만, 결국 내가 인식하는 내가 아니라 외국인이 인식하는 내가 된다는 면에서, 그리고 내용적으로 주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있는 이름이 되는 것이다.



둘째, 나라에서 정한 맞춤법을 나라가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고, 당연히 이는 고유명사이며,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서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는 국어의 표준발음에 따라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대한민국’의 어디에서도 Korea라는 발음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문명을Republic of Korea’라고 쓰려면 국호를 ‘고려공화국’이라고 고쳐야 하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쓰려면 영문국호는 ‘Daehanminguk’이 되어야 한다. 大韓을 고유명사로, 民國을 일반명사로 본다면 ‘Republic of Daehan’, 大와 民國을 일반명사로 치고 韓만을 고유명사로 생각한다면 ‘Republic of Great Han’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그대로 쓴다고 하더라도 KoreaㆍCoreaㆍCoreeㆍCore 중 어느 것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Korea가 高麗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高자의 우리 발음이 ‘코’보다는 ‘꼬’에 가까운 발음이며, 영어 알파벳으로는 K보다 C에 가깝기 때문에 ‘Corea’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리고 아직 명확한 근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1896년 이전에는 영어권에서도 Corea라로 썼었는데, 일본인들이 영문알파벳 순으로 따져서 C가 자기들 국호의 이니셜인 J보다 앞이 되므로 뒤에 있는 K로 바꾸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한국을 표기하는 외국 고지도의 90% 이상이 K보다 C를 사용했다는 점도 참고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02 한ㆍ일 월드컵 응원 깃발이나 엠블렘에도 Korea와 Corea 두 가지가 다 쓰일 정도로 우리 국민들도 혼동하고 있다. 이는 실제 영어권에서는 대부분 Korea라고 쓰지만, 에스파니아어권이나 불어권, 동남아권에서는 ‘Corea’ㆍ‘Coree’ㆍ‘Core’ 등으로 쓰이고 있으며, 바이칼 지역의 코리족도 KhoriㆍQoriㆍXori등으로 표현하는 등 국내ㆍ외에서 제대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외국에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우리 스스로 우리 발음에 맞는 정확한 이름을 내놓고, ‘이것이 고유명사인 우리나라와 민족의 이름이다. 이렇게 불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우리가 붙이는 영문국호일 것이다. 그리고 고유명사는 소리나는 대로 써야 한다는 맞춤법도 있다면 우리 민족의 이름인 ‘한’이 포함되는 국호 ‘대한민국’이라는 고유명사를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Republic of Great Han’으로 쓰는 것이 옳을 것이며, Korea류[類]의 이름을 쓴다고 해도 Corea나 Coree로 쓰는 것이 원래의 우리 이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더 많은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⑸ 동이[東夷]



우리 민족은 스스로 동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고대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서 나온 화이관[華夷觀]에 따라 ‘동쪽에 사는 야만인-오랑캐’ 내지 ‘동방에 거주하는 비화하계[非華夏系] 사람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했던 말이다.



그러나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이를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우리 민족의 이름으로 생각하기도 하며,고교 국사교과서에 게재될 정도로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이지만, 정확한 이해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는 용어이다. 최근에 ‘동이’는 어느 특정 종족의 명칭이 여러 종족을 통칭하는 일반명사라는 주장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지만 아직 논란 중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본다.



중국에서는 야만인으로 봤으므로 오랫동안 ‘동이’에 대해 깊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다가 1930년대 몽문통[蒙文通]이 동이를 고대 중국의 3대 종족의 하나로 보기 시작하여, 1970년대 부사년[傅斯年]의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에 이은 大文口문화의 발굴을 기해 1980년대 이후 동이문화열[東夷文化熱]이라고 할 정도로 東夷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중국 동부해안지역의 大文口문화를 만주지역을 포함한 東夷文化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그러다가 1995년에 중국 하북성 탁록현반산진에 귀근원[河北城 涿鹿縣礬山鎭에 歸根苑]을 짓고 그 안에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세워 중화문화의 세 조상이라면서, 기존 화하족[華夏族]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黃帝]와 함께 동이족의 시조인 염제[炎帝]와 묘족의 시조로서 치우제[蚩尤帝]의 좌상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치우는 그들의 여러 기록으로 보아 동이족이기도 하며 그 이전까지 자신들의 시조인 황제에게 대항했던 나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왜곡 의도가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우리나라의 동이에 대한 연구는 더욱 늦어, 본격적인 연구는 광복 후인 1954년 김상기가 ‘先秦시기 山東의 九夷에 관한 연구’를 한 후, 1991년 이성규의 「선진 문헌에 보이는 東夷의 성격」이라는 논문이 나올 때까지 직접 東夷를 언급한 논문은 거의 없었다. 근래 우리나라의 東夷에 대한 인식은 기수연의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의 동이에 대한 인식은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충분한 근거 없이 東夷를 우리 민족의 원류로 파악하는 고대사 학자들로서, 산동[山東]의 동이[東夷]와 동북지방의 동이[東夷]를 같은 집단으로 보고 예맥[濊貊]과 동이[東夷]를 같은 종족으로 포괄하기도 한다. 둘째, 산동의 東夷와 동북의 東夷를 같은 계보로 연결시켜 중국의 사서[史書]에 동이인[東夷人]이라고 표시된 요,순,치우,공자[堯, 舜, 蚩尤, 孔子] 등의 현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우리 조상으로 봄으로써 민족의 긍지를 드높이고자 하는 연구자들이다. 셋째는 李조선시대 유학자들과 중국 부사년[傅斯年]의 영향을 받아 기자[箕子]집단을 산동에서 동북으로 이동한 東夷집단으로 파악, 은족[殷族]의 동북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동이는 어떤 종족을 칭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중국 동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로서, 선전[先秦]문헌에서는 대부분 이[夷]라고만 칭하여 화하[華夏] 이외의 이민족을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한[漢]대의 『예기』에서부터 동서남북의 방향과 연결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진[秦]대 이후 동쪽, 특히 동부 연안에 거주한 많은 종족과 씨족에 대한 총칭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후 진[秦]의 통일에 의해 그들이 진[秦]의 민호로 편입되어 없어진 후에 동북지방의 이민족[異民族]을 ‘東夷’라고 부르게 되므로, 산동의 동이와 동북의 동이는 같은 종족이 아니라 중국의 사서에서 호칭의 대상이 바뀌었다고 보아야 한다.



천관우는 협의[狹義]의 동이와 광의[廣義]의 동이를 달리 보았는데, 협의의 동이는 기수연이 말하는 산동지역의 동이로서, 춘추시대까지도 큰 세력으로 존립했으나 진[秦]의 통일 때에 그 민호로 편입되어 마침내 소멸된다고 보았다. 우리의 관심이 더 쏠리는 것은 광의[廣義]의 동이로서, 이들은 발해[渤海]ㆍ황해[黃海]를 둘러싼 구 제하[濟河]ㆍ황허[黃河]ㆍ난하[灤河]ㆍ요하[遼河]ㆍ압록강ㆍ대동강의 충적지에 말발굽형(馬蹄形)으로 분포되어 있던 주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동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붙인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시각은 시대마다 변했으며 중국과 우리나라도 다르다. 더구나 과거 동이를 이민족으로 보던 중국에서는 최근 자기 민족으로 만들고 있는데도 우리나라 학자들은 아직 동이가 민족이나 종족의 이름이냐 아니냐, 산동의 동이와 동북이 동이가 같으냐 다르냐, 요하지역에서 산동으로 이동했느냐 그 반대로 이동했느냐 등에 대한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어떤 경우든 東夷가 우리 민족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이 東夷에 포함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중국 史書에서 동북의 東夷와 중국 동해안지역의 東夷가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지만, 문화적인 관계가 있고 이동과 관련된 자료가 분명하다면 전혀 다른 종족집단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4) 우리는 ‘한민족’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가지 우리 민족의 이름과 그 연원을 종합해보면, 한자로 적기 전에 우리 스스로 불렀던 우리말 이름은 ‘한’ㆍ‘밝’ㆍㆍ‘’ㆍ‘’ㆍ‘밝달’ㆍ‘박달’ㆍ‘불함’ㆍ‘바이다’ 등이었으며, 그런 모든 말의 원 뿌리는 밝음을 나타내는 ‘한’이었다.



‘한’의 본 의미는 ‘밝음ㆍ‘원 태양’이었으나 하늘(天)ㆍ하나(一)ㆍ크다(大ㆍ多ㆍ高의 의미 포함)ㆍ가운데(中)ㆍ대략 불확정(不確定) 등의 뜻으로 어의[語意]가 확대[擴大]되어 지금도 쓰이고 있다. 이런 의미를 가진 우리말 ‘한’이 세월의 흐름과 지역의 차이에 따른 변음을 거쳐 한자화 과정에서,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한[韓]ㆍ한[寒]ㆍ한[汗]ㆍ한[馯]ㆍ환[桓]ㆍ단[檀]ㆍ발[發]ㆍ용[辰]ㆍ백[白]ㆍ배달[倍達]ㆍ맥[貊]ㆍ부여[夫餘]ㆍ조선[朝鮮]ㆍ발해[渤海]ㆍ天 ㆍ大 ㆍ夷 등으로 적히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민족이 건국한 많은 나라들과 시조의 이름 또는 그 수도라든가 성스럽게 받드는 많은 산이나 봉우리 이름들이 이런 글자들이 들어가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고리’가 순록이라는 의미도 있다지만, 고리족 등 알타이족의 여러 전설에서 ‘밝은 노란색 빛’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있음에서, 우리 민족을 형성한 중심 집단이 민족으로 형성되기 이전부터 태양ㆍ밝음ㆍ하늘 등과 관련된 의미의 ‘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한자로 적히기 전인 형성될 당시 우리 민족의 이름은 당연히 그 많은 이름들의 원뿌리인 ‘한민족’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 연유로 지금 우리나라의 이름이 ‘대한민국’이고, 한복ㆍ한글ㆍ한옥ㆍ한식[韓食] 등 우리 것에 대해 ‘한’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양옥[洋屋]ㆍ화복[華服]ㆍ일식[日食] 등 외국의 것과 구분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도 우리 민족을 ‘한민족’이라고 불러야 하며, 한자인 ‘민족’이란 용어도 ‘한겨레’라고 바꾸어 쓰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이 때 사용하는 ‘한’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하늘(天) 가운데(中) 있는 모든(多) 것들이 큰(大) 하나(一)로 조화된다’는 매우 중요한 철학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겨레의 얼과 관련되므로 ‘한민족’ㆍ‘한겨레’라는 우리 겨레의 이름에 대해 자긍심 가질 수도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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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1, 2002, 목차.



2) 손보기, 「한민족의 형질」; 윤내현, 「한민족의 형성과 출현」; 이기동, 「고고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신용하, 「한민족의 형성과 단군에 대한 사회사적 고찰」; 이선복, 「화석인골 연구와 한민족의 기원」; 한영희, 「한민족의 기원」; 이성규, 「문헌에 보이는 한민족 문화의 원류」; 민영현, 「한민족의 문화원형과 단군」 등(상세 설명은 생략한다).



3) 김정학, 「한국민족의 기원에 대하여」『민족문화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64, 7~45쪽 ; 김정배, 『한국민족문화의 기원』,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 ; 신용하, 『한국민족의 형성과 민족사회학』, 지식산업사, 2001년(26쪽 내용에서는 ‘한민족’이라는 용어도 보인다.)



4) 이기백 책임편집, 『한국사시민강좌』32호, 일조각, 2003년 제1호.



5)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수중판, 박영사, 1992, 40-41쪽.



6) 윤내현, 『고조선연구』, 一志社, 1995, 167-168쪽.



7) 앞 책 『고등학교 국사』, 32쪽.



8) 김종서, 『신시단군조선사 연구』(수정증보판), 한국학연구원, 2004, 82-83쪽. 그는 여기에서 우리 민족의 명칭을 ‘신시쪽’ ‘조선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천손족’이 더 알맞다고 주장했다.



9) 이도상, 「세계화시대 민족사 교육 방향 시론」,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7, 45쪽. 이도상은 이 논문에서 우리 민족의 명칭으로 조선, 동이, 배달, 한 등으로 불렸지만, 배달이라는 용어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주장한다.



10) 뒤에 소개하는 허종호, 손영종, 장우진 등 북한 학자 모두가 조선민족이라고 부른다.(단군학회 엮음, 『단군과 고조선 연구』, 지식산업사, 2005. 참조)



11) 김정학, 앞 글 「한국민족의 기원에 대하여」, 10쪽.



12) 안호상, 『나라역사 육천년』(뿌리, 1987)의 제1장으로서 문교부 보조금에 의해 연구된 ‘국정국사교과서의 시정방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13)『대배달민족사』, 이유립, 고려가, 1987 ; 『배달민족혼』, 김수경, 미래문화사, 1996 ; 『21세기 배달민족사』, 김란기, 서울 P&B, 2005 ; 『배달민족 대륙역사』, 송부웅, 아스타나, 2007.



14)『신콘사이스 국어사전』, 동아출판사, 1978.



15) 정영훈, 「국사교과서의 상고사 서술 변천과정과 문제점」, 『단군학연구』3호, 단군학회, 2000, 87-88쪽 ; 현 고교 국사, 33쪽 ‘고조선의 세력범위’ 지도.



16) ‘渠帥’는 『三國史記』와 중국의 여러 史書에서 부족장, 族長이라는 의미로 쓰인 단어인데, 윤내현은 중국식의 諸侯國과 같은 의미로 渠帥國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17) 651년 唐에서 백제왕에게 보낸 국서의 ‘至如海東三國…遂令三韓之氓’ 이란 내용에서 ‘三韓’은 ‘三國’을 뜻한다.



18) 高帝紀 4년8월조의 ‘北貊燕人來置梟騎助漢’에 대한 당나라 顔師古의 註에 나오는 내용으로 동북방의 貊이 三韓에 속하는 貊族이라는 설명이다.



19) 노태돈,「삼한에 대한 인식의 변천」,『한국사연구』38권, 한국사연구회, 1982. 129-156쪽 참조.



20)『三國史記』권8, 「신라본기」8, <신문왕>12년조.



21)『高麗史』권2,「세가」2, <태조>26년조 : 思十有九載統一三韓叨居大寶二十五年身已老矣.



22)『高麗史』권38 세가38 공민왕1년조의 ‘恭惟我太祖統一三韓’, 卷81 志35 兵조의 ‘高麗太祖統一三韓始置六衛’ 등 다수.



23)『帝王韻紀』「한사군과 열국기」: 自然分界成三韓…辰馬弁人終鼎峙 羅與麗濟相次興



24)『日本書紀』권9 「神功皇后攝政前記」 11월조.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편찬된 책이므로 당시일본인들은 삼국을 삼한으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 한배달 편집부, 「우리나라에 구한말은 없다」,『월간 한배달』통권 63호, 67쪽. ‘구한말’이라는 용어가 우리 민족을 멸시하는 의미에서 일본인들이 사용한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의미는 있다고 본다.



26) 이는 고조선과 다른 삼한이어서는 ‘우리’라는 의식이 나올 수 없고, 세 한이 하나였던 시기가 있어야 하므로, 신채호의 주장처럼 고조선 후기에 삼한관경제에 따라 삼한(삼조선)으로 분할하여 통치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7) 신용하,「한(韓ㆍ朝鮮)민족의 형성과 단군에 대한 사회사적 고찰」, 단군학회 엮음, 『단군과 고조선연구』, 2005, 389~406쪽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논자가 추가한 내용은 별도로 각주를 달았다.



28) 춘추시대 황하 상류에 있던 작은 나라 晋이 3분되어 생긴 趙ㆍ魏ㆍ韓 가운데 韓을 말하는데, 이 3국 가운데 가장 동북쪽에 있는 나라는 趙였다.



29) 고조선 후기부터 한반도 남쪽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삼한을 지칭한다.



30)『鄭氏集韻』에서 “馯의 발음이 한(寒)이니 동이의 별종이다.”고 했다.



31) 齊나라로부터 8천 리 떨어져 있다는 發朝鮮인데, 이 ‘發’이 우리말 ‘밝’을 의미하므로 밝조선, 밝달조선으로서, 태양족이 왕계인 ‘고조선’을 말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32) 신용하는 “이 구절은 원래 주선왕과 한후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인데, 그들을 더욱 높이기 위해 동이의 한(韓ㆍ馯)이 요서와 하북 지방에서 쌓은 공적을 끌어다 삽입시킨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과 합치된다.”면서, 연(燕)의 북쪽에 동이의 한(韓)이 존재했음을 새롭게 주장했다(신용하, 앞 글, 『단군과 고조선 연구』, 394쪽).



33)『潛夫論』권9, 「志」‘氏姓’ 제35에 “옛날 周宣王 때에 또한 韓候가 있었는데 그 나라가 연에 가까이 있었으므로 『詩經』에 말하기를 ‘저 커다란 韓나라 성은 연나라 백성들이 완성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 뒤 韓西에 또한 韓이라는 성이 있어 위만에게 벌한 바 되어 이동해서 해중에 살았다.”는 내용에서 『詩經』의 韓을 『鄭氏集韻』의 馯, 즉 만주지역의 한으로 보았다(신용하, 앞 글, 394-395쪽).



34) 반절법(反切法)의 효시(嚆矢)인 梁의 顧野王 撰 『玉篇』券中, 185頁에서 ‘桓’의 발음을 ‘胡端切’, 즉 ‘한’이라고 했음은 桓자의 본음이 ‘한’이었음을 확신하게 하며, 명나라 말 사람인 張自烈의 『正字通』에서는 桓의 절운(切韻)을 ‘戶瞞切’로 표현했는데, 역시 「한」으로 발음된다는 의미다. 또한 우리나라 字典 중에서도 『大漢韓辭典』(집문당, 1983), 春園『最新康熙玉篇』(창원출판사, 1987), 『最新大玉篇』(쌍용문화사, 1983), 『明文漢韓大字典』(명문당, 1991)과 중국 朱駿聲 편,『說文通訓定聲 』2판(中華書局, 1998) 등 여러 옥편에서 공통으로 桓의 韻 또는 古音이 寒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35) 김상기, 「韓ㆍ濊ㆍ貊 移動考」, 『東方史論叢』, 서울대출판부, 1974, 357쪽.

“追의 음가는 되, 퇴이고 濊의 음가는 회, 외인데, 퇴와 회, 되와 외는 서로 전환되기 쉬우며, 여기서 쓰인 추는 濊를 지칭한 별명”이라고 보았다.



36) 정형진도 이 韓을 후기 고조선의 주도세력이었던 공공족으로 보고, 고안현(북경 남동쪽)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나라라고 생각하면서, 기자와는 다른 세력으로 보았다. 신용하의 주장과는 시기와 위치가 다르지만 큰 ‘한’이 있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고 있다.(「시경 한혁편의 한후와 한씨조선에 관한 새로운 견해」, 『단군학연구』13호, 단군학회, 2005, 489-510쪽)



37) 신용하, 앞 글, 『단군과 고조선 연구』, 398-406쪽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38) 최남선, 「兒時朝鮮」『육당 최남선전집』2, 현암사, 1951, 155쪽.



39) 최민홍, 『한철학』, 성문사, 1984, 14-19쪽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40) 박시인, 『알타이 神話』, 청노루, 1994, 125-252ㆍ327-354쪽 참조.



41) 鄭淵奎, 『언어 속에 투영된 한민족의 고대사』, 한국문화사, 2002, 72-74쪽.



42) 박 현, 「‘하라’와 배달겨레」, 『월간 한배달』창간호, 사단법인 한배달, 2000, 27-29쪽.



43)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에 있는 유열의 『삼국시기의 이두에 대한 연구』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44) 박병식, 『도적맞은 우리 국호 일본』1, 문학수첩, 1998, 17-26ㆍ 35-42쪽.



45) 임승국 번역ㆍ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6. 자료의 쪽 수는 이 책의 쪽 수를 나타내며, 임승국은 桓을 ‘한’이라고 읽었으나 여기서는 원음대로 ‘환’이라고 썼다. 『규원사화』는 <북애 저, 고동영 역, 뿌리, 1986>에서 인용한다.



46) 임승국도 ‘우리 한의 건국은’이라고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桓을 건국한 결과물 즉, 환국으로 해석했는데, 문맥의 마지막에 ‘환국’이 나오므로 이 ‘桓’은 건국의 주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환’(환족)으로 번역했다.



47) 金敎獻 저 高東永 역, 『神檀民史』, 뿌리, 1986, 31쪽 ; 김교헌 지음 이민수 옮김, 『신단실기』, 뿌리, 1994(3판), 12쪽.



48) 姜吉云, 앞 책 『古代史의 比較言語學的 硏究』, 28-68쪽.



49) 柳洪烈 감수, 『國史大事典』, 교육도서, 1989.



50) 양주동 감수, 『국어대사전』, 학진출판사, 1980.



51)『중학교 국사』(상), 교육부, 1998, 9쪽.



52) 박현, 앞 글 「‘하라’와 배달겨레」, 27쪽.



53) 앞 책 『환단고기』「삼성기」전 상편, 17쪽.



54) 신채호 저 이만열 주해, 『주석 조선상고사』상,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1983, 104쪽.



55) 姜吉云, 앞 책 『古代史의 比較言語學的 硏究』, 56-61쪽.



56) 투바의 소욘(鮮)족처럼 鮮(小山지대)에서 살며 자신들의 종족과 언어를 ‘鮮’族-‘鮮’語라고 자칭하는 것과는 달리, 이미 鮮이라는 시베리아-몽골-흥안령의 小山 지대를 떠나 장백산이라는 大山 지대인 吉林에 사는 조선족들은 자기 자신들의 종족과 언어를 ‘朝’族-‘朝’語라고 한다는 것을 만주지역 학자들의 증언을 통해 제시하면서, 그러나 현재는 1800년대 말부터 1960~70년대에 걸쳐 山東省의 漢族들이 대거 만주지역으로 이동해 오면서 이를 서로 混用하는 경향이 새로 생겼다고 했다.



57) 주채혁, 『순록유목제국론』, 백산자료원, 2008, 317쪽.



58) 주채혁, 「단군은 수달임금, 주몽은 산달 사냥꾼」, 『뉴스메이커』, 경향신문사, 2007.12.18.



59) 초등 『사회 6-1』26쪽과 『중학교 국사』100쪽.



60) “고울 ‘려’, 나라이름 ‘리’ 高句-, 高-”라고 하여 고구리, 고리라는 예까지 싣고 있다(『최신 강희옥편』, 창원출판사, 1987. 『大漢韓辭典』, 집문당, 1983. 『최신대옥편』, 쌍룡문화사, 1983). 그러나 최근에 나온 자전 중에는 나라이름 ‘려’로 되어 있는 곳도 있다.



61) 古離國(『삼국지』위서 동이전 韓조에 나오는 마한 54국 중의 하나), 高離國(『삼국지』위서 동이전 부여전. 魏略曰 동명의 고국), 맥국=槁離國→貊槁離→貊高麗→蒙古里=몽골로 역사적인 변용을 했다고 본다.(주채혁, 앞 책 『순록유목제국론』, 278쪽).



62) 실제로 주채혁은 “조선에 이어 철기문명 결합형 기마 야유목제국 제국 槁離-高麗=고구려로 이어지는 산달 貊系 순록치기의 貊槁離國이 오늘날 코리아(korea=kore-순록+a-땅 : 순록치기의 땅)의 원형이라고 본다. 조선인은 순록치기이고, 코리안은 선진 순록치기이며, 코리아는 선진순록치기의 땅”이라고 주장한다(주채혁, 앞 책 『순록유목제국론』, 61쪽).



63) 몽골족의 여시조인 알란미인은 코리 토마드족의 딸이다(유원수 역주, 『몽골비사』, 사계절,

2004, 23-27쪽).



64) 실제로 임승국은 중국 史書에 나오는 ‘九黎之君號曰蚩尤’(『書經』「孔傳」‧「疏」,『史記』卷1 「五帝本紀」1 <黃帝> 註3)에서의 九黎를 ‘Korea의 원음’이라고 보았다(앞 책 『환단고기』, 20쪽 주9).



65)『몽골 비사』에는 “몽골족의 시조는 코리족의 딸 알란 미인이 밤마다 ‘밝은 노란색 사람’의 빛과 감응하여 나은 아들(하늘의 아들이라 했음) 보돈 차르”라는 내용이 있음에서 빛을 ‘밝’이나 ‘한’으로 보면 코리족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가 밀접함을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유원수 역주, 『몽골비사(元朝秘史)』, 사계절, 2004, 23-34쪽 참조).



66)「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문화관광부 고시 제2000-8호(법제처 종합법령정보센터 홈피에지).



67) 김현규,「남북통일 국호 ‘Corea’」,『월간 한배달』통권83호, 사단법인 한배달, 2004, 26-28쪽.



68) 奇修延, 「後漢書 東夷列傳 硏究」, 단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2, 11쪽 ; 권승안, 「동이와 우리 민족의 고대사」,『단군학연구』14호, 단군학회, 2006, 127쪽 참조.



69) 안호상(『나라역사 육천년』, 뿌리, 1987),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우리 고대사』,2004), 최재인(『상고조선삼천년사』, 1998) 등 많은 재야학자들은 동이를 우리 민족 또는 선민족으로 보고 있다.



70) 기수연, 「동이의 개념과 실체의 변천에 관한 연구」, 『백산학보』 제42호, 1994, 5-7쪽.



71)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신들은 華夏族이고, 그 시조는 黃帝이며, 東夷는 자기들과 쟁패를 벌였던 집단으로 본다. 그리고 蚩尤는 黃帝에 불복하고 난을 일으켰던 거친 폭군으로 인식했었다. 따라서 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획기적인 인식의 변화이면서 어떤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72) 기수연, 앞 논문 「동이의 개념과 실체의 변천에 관한 연구」, 7-8ㆍ70쪽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73) 기수연, 위 논문, 10-12쪽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74) 千寬宇, 「고조선의 몇 가지 문제」『한국상고사의 제문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6, 127-128쪽 참조.



75) 최민홍, 앞 책 『한철학』, 14쪽 ; 박현의 앞 글 「‘하라’와 배달겨레」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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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enc@paran.com 2010-06-14 22:47:21
답글

시간날때 읽어봐야겠네요. 나름 도움이 될듯합니다.

이명재 2010-06-14 22:52:54
답글

저도 예전부터 찾던 글이었는데... 웹서핑중에 찾았네요. 잘 요약이 되어있고 참고문헌까지 있어서 '한'의 뜻을 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br />

김상열 2010-06-14 22:56:12
답글

20분동안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잘 읽었습니다..고맙습니다^^

김상열 2010-06-14 22:58:50
답글

일통삼한의 한이 우리 한겨레의 한이 아니었군요..

김성건 2010-06-15 01:00:48
답글

소설 '천년의 금서' 에서 어렴풋이 알게되었는데,<br />
소중한 자료를 상세하게 자료를 올려주셨네요..<br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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