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본래 스포츠에 관심 없기도 하지만…,
축구 안 보고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이 게시판에서 자주 언급하는 절친한 지인인,
고대 한국사학과 석사 과정인 친구인데,
저보다 한참 나이는 적은 동생 뻘이지만,
배울 바가 너무나 많고, 정치, 사회적 견해도 일치해서
(운동권이죠. 요즘 보기 드문)
늘 만나면서 친구처럼 지냅니다.
제가 서예 쪽 일로 밥벌이한다고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친구도 골동, 미술 쪽에 관심이 많고, 수집을 하는데다,
(생각은 깨어 있지만, 좀 사는 집 아이입니다)
제가 새기는 전각(쉽게 말해 낙관 도장. 요즘 책도장 같은 거 많이 새기죠)의
주요한 고객 중 한 명이라, 늘 만나고, 통화도 하면서
많은 자료,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 도움 받고 삽니다.
그 친구가 석사 논문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일전에 스승님들께 제가 새긴 전각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석학인 조광 교수님 전각을 제가 새겨 선물하니까,
옆의 교수님이 넌지시 한 마디 하더랩니다.
"나도 하나 새겨 주지.
아예 심사위원 분들께 쫙 돌리시게"
그저께 인사동에서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그런 말을 하데요.
그래서, 왜 진작 말을 안 했냐, 내가 새겨주면 될텐데,
자주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차마 말을 못 했댑니다.
이 말을 들으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씁쓸했습니다.
나도 달라, 다른 교수들한테도 쫙 돌려라,
- 이런 말이 저리도 쉽게 나온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몇 시간 전부터 계속 그 심사위원 교수 열두 명 도장을
계속 새기고 있던 중입니다.
'촌지(寸志)'라 합니까? 스승께 대한 작은 정성,
옛날 서당 교육을 하던 시절에야,
선생이 특별한 봉급을 받는 게 아니라, 학동네 부모들로부터
감사의 정성을 담은 수확물, 음식 등을 받아 먹고 살았다지만,
학교 등의 짜여진 직장에 소속된 지금에 와서도
그런 게 '미덕'(?)으로 통용되어온 게 아닌가 싶은데…,
사실, 석사 받는 애들한테 짜내면 뭐가 나오겠습니까?
벼룩이 간을 빼먹지…
하기야, 이런 도장 같은 건 그야말로 약과이긴 합니다.
제자 논문에 공동저자라는 빌미로, 자기 이름 앞대가리에 넣고,
이런 풍토는 그야말로 착취가 아닌가 말이지요.
모든 교수님들, 학자들께서 그렇지는 않겠습니다만,
지성인들이라면서 어찌 저런 좀스러운 생활 방식을 영위하는지,
(뭐, 저도 다른 방면에서 좀스러운 점 많긴 합니다만)
참….
하도 저한테 전각 작품 부탁을 많이 한 것도 있고 해서, 미안해서,
저한테 부탁 안 하고, 인사동 길거리에서 개당 3만원 미만 하는
즉석 도장으로 때우려 했다는데,
사실, 그렇게 계산해도 그 친구한테는 큰 돈이라,
그냥 내가 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친구한테 지금껏 작품 값 받고 전각 새겨준 적 없으니까…
책, 자료, 그런 것들로 대체했지요.
교수님들, 왜 그리 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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