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관계되지 않으시는 분이라도,
'대한민국미술대전'(과거 '국전'이었던)은 아실 것입니다.
비리로 점철되어 있지요.
저는 서예를 밥벌이로 합니다. 몇 번 말씀드렸었지만…
다른 미술 분야들은 작품 자체를 팔아 돈을 벌지만,
(교육, 기타 등등 다른 수입원도 많지만)
서예는, 작품 그 자체는 거의 팔리지 않고,
대개 학원, 문화센터 등의 제자들의 수강료 등이 공식적인 수입원입니다.
그러나, 이것 자체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지요.
작품이 거래되는 것도 아니고, 수강료 수입은 너무나 적으므로,
서예를 취미로 하는 수강생들의 성취감,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많은 군소 공모전들이 난립하고, 그것으로 상장 장사를 하고,
수강생들에게 얼마씩의 사례비, 감사하다는 답례의 선물도 받고,
그렇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수준 높고 권위 있는 서예 공모전이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 부문인데,
여기에서 입선, 특선 경력을 쌓고 수상하고,
심사위원 자격을 갖게 되어야, 강사로 임용되는 등 대접도 받고,
작가로서의 '자격증'도 갖추게 되는 것이며,
'국전 심사위원'이라는 권한이 주어지므로, 혹 나중에,
미술대전 등 각종 공모전에 입선시키는 댓가로서의 뒷돈 등도 받아챙길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서예계의 부패 구조는, 작가들이 도덕적으로 반성해서 정화될 수 없습니다.
그건 한계가 있지요.
서예계라는 바닥의 경제 구조가, 외부에서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닌,
말씀드렸다시피, 내부에서 뜯어먹는 경제 구조이니,
연고, 인맥 없고 뒷돈 거래 안 하지만, 작품만 좋으면 상을 주자,
작가로서 대접해 주자라는 분위기가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미술대전 비리는 매년 터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고쳐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심사를 할 때, 작품이 좋고 나쁜 건 둘째, 세째 문제입니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정도면 대개 기본은 된 작품들이 출품되긴 하지만)
이러한 사정 속에서, 현실을 존중해 주면서, 개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늘 고민하는 서예가들이 계십니다. 제 주위에도 선배 선생님들이 여럿 계시구요.
그 선생님들이, 올해 낸 미술대전 심사 방법은, 이랬습니다.
입선작을 뽑는 1차 심사에서, 심사위원 당신들이 갈라먹든 어쩌든,
늘 뽑던 대로 뽑아라.
그러나, 입선 정원의 75%만 뽑아라.
나머지 낙선작들은, 정말 존경받고 실력 있으시지만,
현재의 일선 서예계와 거리가 있으신 원로 작가님을
(로비가 들어가기도 어려운 정도 반열의 분)
무작위로 딱 한 분만 임박해서 뽑아서,
그 분에게, 나머지 15%를 마음대로 뽑게 하자,
그렇게 하면, 돈 없고 빽 없지만 실력은 있는 작가, 작품들이
어느 정도 구제되고, 숨통이 트일 수 있지 않겠느냐?
- 이러한 개혁안이었고,
올해 미술대전 서예 부문은 그렇게 심사했습니다.
(저 또한 공개 심사장에서 모든 과정을 참관했습니다)
사실, 아무리 작품성이 좋아도, 돈 없고 빽 없으면,
입선도 절대 안 되는 게 미술대전 서예 부문입니다.
그런데, 이 개혁안을 내놓은 분들께서는, 동료 서예가들에게,
이보쇼, 조금씩만 손해 보시오, 후배 작가 지망생들도 좀 살려야 될 거 아니오?
안 그래도 위기의 서예계인데, 예술성 있는 유망한 후배를 살려야
실추된 미술대전의 권위도, 서예계의 위상도 살릴 수 있잖소?
- 라고 설득하고 다니셨댑니다.
이러한 개혁안에도 반발하고, 이대로가 좋사오니라고 버틴 서예가들도 많았다고 합니다만,
결국 이 절충적 개혁안은 통과되었고, 올해 심사에 적용되어
좋은 작품들이 대거 입선에 올라갔습니다.
썩은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 현실 속에서 먹고 살아가는 것도 인정해 주면서,
그나마 숨통을 틔우는, 바른 길로 조금이라도 가는 개혁안,
이게 바로 '정치' 아닌가,
현실 속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에 다가간 개선을 해 나가는 아이디어, 노력,
이런 게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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