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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펌글입니다.
비판과 비난은 타인을 이해한 후에 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아 무작정 퍼온 글입니다.
전 한명숙 후보의 패배가 안타까워 까칠한 하루를 보냈지만 노회찬을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이유를 붙이던 비겁한 변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판단이겠지만 아래 글은 한번쯤 읽어도 좋을 듯해 펌글을 또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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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겠지만 노회찬후보는 일정득표율을 얻지 못해서 선거자금을 돌려받을수 없게 됐어요.
그런데..노회찬후보는 가난해서... 하나뿐인 검정색 양복에 구멍이 났는데 그걸 그냥 입고 다닌다고 합니다.
전재산은 2500만원이라고 하구요.
(참고로 노회찬후보는 1956년생 명문대 졸업한 남자예요.
보통사람이라면 그 정도 학력에 능력까지 갖췄다면 2500만원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겠지요.)
지금도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있다는데 이번선거 망해서 빚은 불어만 가고..
그런데 사람들은 단일화 안한 책임을 지라면서 아직까지도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고 있어요.
그 분 싸이와 블로그에 가봤는데, 저주한다느니 파멸하는 걸 똑똑히 지켜보겠다느니.. 이보다 심한 말들도 많더군요.
노회찬후보는 힘든 정치인생을 사는 데 자식이 있으면 망설이게 될 것 같다는 이유로(그리고 돈도 없어서)자식도 없으시답니다. 요크셔테리어 '하늘'이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키우신다고 해요.
서울시장후보가 되기 위해 수년 동안이나 하루에 두세시간밖에 안 자고 공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 사람을 그냥 이대로 사장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들 아시겠지만, 아무리 뜻이 좋아도 돈이 없으면 정치판에서 살아남아있을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노회찬후보가 어쩌다 이렇게 빈곤한 신세가 되었는지;; 본인이 쓴 약력과 후원설명을 가져왔어요~ 세액공제도 된다니까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에요.
아래 약력을 보시고 그의 인생에 진정성이 느껴진다면,(후원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더 관심 갖고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참, 저는 노회찬후보가 젊은시절 치기로 잠깐 학생운동을 한 게 아니라,
고려대를 졸업하자마자 15년 가까이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자 권익에 힘쓰셨다는 점이 맘에 들더라구요.
또, 노회찬씨가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이던 시절 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차린 점을 봐도 그렇구요.
그가 권력을 탐하는 보통정치인이었다면, 멀쩡한 국회의원자리를 버리고 나와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길을 택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민노당과 신념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자리를 버리고 나와 백수가 되었답니다. (당을 탈당하면 그 당의 국회의원인 경우 자연히 의원지위가 상실됩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분은 사실상 백수지요..
학생운동했던 정치인들이 전부 쉬운 길을 찾아 보수정치(민주당,한나라당)에 흡수되는동안에도 꿋꿋이 혼자 진보정당에 남아 어려운 길을 가는 걸 보면 그의 젊은시절의 행동들에 진정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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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회찬 간단한 젊은 시절 약력
: 1956년 8월 31일 막 더위가 가실때쯤 태어남
초량초등(그때는 국민)학교, 부산중학교,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및 동대학 노동대학원 수료
1977-78 년 육군 일병제대
노회찬의 피가끓었기에 다채로웠던 젊은 시절
: 1973 박정희 유신독재타도 유인물배포를 시작으로
정의롭고자 하는 세상에 동참
1974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
1982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인식, 용접기술 학습시작 후
1983 고려대학교 졸업날 전기기능사2급 자격취득후!
용접공으로 근무
1987: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인민노련 창립)
1989: 그리고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
1992: 만기 출소
노회찬 이젠 앞으로 나서 달리기 시작
1994: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
1995: 진보정치연합 대표
1996: 노사관계 개혁위원회 자문위원
1997: 국민승리21 기획위원장,정책기획홍보 위원장
2000~2002;: 민주노동당창당(부대표) 에서 사무총장이 됨
2004: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법제 사법위원회 의원
2005: '삼성떡값검사' 7명 실명공개(이른바 안기부 X파일)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 보호법'위반혐의로 피소
민노당 삼성불법정치자금 및 안기부 불법도청
특별대책위원회위원
2006년: 조선왕조실록환수 추진위원
해외반출문화재되찾기 의원모임 대표
한-프 의원친선협회 부회장
한-멕시코 의원친선협회이사/ 아시아평화연대의원
2007년: 민노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
대중소기업 상생협회고문
민노당 삼성비자금사태 특별대책본부 본부장
2008: 개혁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민노당에 논평을 가한 후 탈당
조금은 험난한 시작, 전면에 나서서 세상을 마주하다.
2008년 3월 16일 진보신당창당(상임공동대표)
2008년 5월 18대 국회의원선거 서울노원구 병에 출마
2009년 3월 진보신당 대표선출
2009 년 11월 서울시장 출마 선언
그리고......'삼성떡값검사'공개 항소심 무죄선고'
2010년 2월 서울시장 예비후보등록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걷느냐?
가는 길이 맞느냐?
알고는 가느냐?
다시 이력서를 보니 마치 미리 알고 준비한 사람같아 보이지만
여러분과 부대끼며 바르지 않았던 국가와 대응하며 살다보니
그 길의 중간에 제가 서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정치인이 되겠다고 한것이 더 나았을까요?
저는 이미 달리고 있었고 여러분이 지켜주셨습니다.
고로 저에게는 전진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