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안 나오는 갑갑한 정치 지형 가운데서,

정의감 있고, 용감하고 솔직하며, 실력 있는 정치가가 대중들의 스타가 되는 게

현대 한국의 상황인 듯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정치가에게 박수를 보내며 성원하는 심정은 저도 십분 이해는 합니다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한비자》를 읽다 보니,

"통치의 잣대인 법규는 분명하고 엄정해야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治術은 드러나는 것이 좋지 않다"

(원문을 옮기지 않고, 기억나는 대로 대충 썼습니다)

- 라 했더군요.



그리고, 그저께 만나 뵌, 제 지인이신 화가께서,

"예술가가 현재 자신이 가진 100%를 다 드러내서는 안 된다.

70~80%만 드러내야 된다.

100%를 다 드러냈을 때, 그는 그 직후에 긴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치란 국민에 대한 봉사이고,

(한비자,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의 정치 철학, 정치 공학은,

군주 독재 시대, 그것도 난세의 사상이었긴 합니다만)

따라서, 신실한 정치가는 국민을 섬기며, 국민과 진솔하게 대화해야 합니다만,



저는, 그 이전에,

정치는 상거래이고 전투라고 생각하는데,

상거래나 전투에서, 솔직하게 다 드러내는 건 미덕이 아니라 악덕입니다.

순진하고 어리석다는 뜻에서 악덕이라는 것입니다.



높고 올곧은 이상을 마음에 오롯이 품되,

그 실현을 위해서는 약삭빠른 상인의 감각,

(김대중 대통령님도

"선비의 문제 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갖자"라고 말씀하셨죠)

때로는 비정과 잔인도 발휘할 수 있는 정치가가

정말 프로 정치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과 원칙 때문에 적 앞에 무장 해제를 한다거나,

솔직한 진정성을 다 드러내 보이는 건,

깨어 있는 시민들의 감동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정치가로서는 아마추어적인 모습이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레드 컴플렉스와 물질 만능주의가 사회 전체의 집단 무의식으로 깔려서

한국 정치를 마치 전족처럼 옭아매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하기, 민주 진영에서 정치하기가 결코 쉽지 않긴 합니다만,

그런 정치가, 그런 야당이 나타나고, 가능해질 수 있기를

저는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바램도, 실은 대단히 추상적인 것이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