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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도올선생의 사자후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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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21: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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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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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목상대-도올선생의 사자후를 보고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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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훈 [가입일자 : 2002-04-27]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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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오늘 도올선생의 사자후를 접하고 적지않게 감동했습니다.
이분이 유학을 마치고 한국학계에 데뷔했을 때는 적지않은 돌풍을 일으키셨죠.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동양학의 학문적 위상을 높인 것에 대한 기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이분이 어떻게보면 학벌 컴플랙스가 살아온 이력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죠.
수재 형제와 사촌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경기고와 서울대를 가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대만/일본/미국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는데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6공과 김영삼정부가 들어섰을 때의 행보라든가 김우중에 대한 평가 등등 이해하기 힘든 행보들도 적지 않았죠. 아마 젊은시절의 치기와 컴플랙스가 빛어낸 소극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올선생의 역사의식을 봤을 때, 절대로 6공에 대한 호의를 보이기 힘든 상황이엇을텐데, 자신의 중용되기를 원했던 적도 있었죠.
맹자에 보면 학정의 자행될 때 사대부의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귀절이 있는데, 대략 자신의 그릇을 알고 바꿀 자신이 있으면 들어가고 그렇지 못하면 물러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분은 자신의 그릇을 크게 평가했겠죠.
이분의 학문적 역량에 대해서도 말이 좀 있었죠. 저야 이분의 책을 두세권정도 밖에 읽지 못해(그래도 대학시절에 읽은 동양학 어떻게 할것인가?는 참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뭐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관련분야 공부하시는 분이나 교수님들은 아는 것에 비해 너무 척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하는걸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올선생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재기가 승한 소장학자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전 우연히 방송에서 중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의 자취를 더듬는 다큐멘터리의 나레이터로 나와 말씀하시는 걸 보고 참 세심하고도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진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 분의 언행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데, 이제는 이시대의 지성, 양심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분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노추를 숨기지못하는 대에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아름다워져가는 한 재기발랄하고 아직도 젊은 정신을 간직한 중견학자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앞으로 많은 학문적 성과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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