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동안, 이런저런 경위로 여러가지 튜너들을 빌려서 들어보았습니다. 대략 10 여 대 정도? 비싼 것도 있고 보급형도 있고 희귀모델도 있고... 그 중엔 어쩌다 발에 걸려(?) 가져온 만 원 짜리 캔우드 KT-500 튜너가 있습니다.
이 녀석은 빈티지, 아나로그, 모던한 튜너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기준으로 볼 때 다소 개념이 모호하고... 사실 별 볼일 없는 튜너입니다. 그런데 좋아요. 디자인이 멋지고 음이 명료하고 수신이 잘 되고 그런 관점이 아니라 조금 다른 이유가 있지요.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절의 PEAK 점에 생산되었던 튜너인데 내부를 보면 텅~ 비어있는 모습에, 어느 조립공장 작업자의 너저분한 수작업 배선흔적들이 있고 레벨메터도, 스테레오/모노전환스위치도 없습니다. 커다란 전면패널에 큼직한 메모리/선국버튼을 보면 단순함과 투박함 그 자체. 그러나 식상하지 않은, 하이브리드적 디자인 때문에 전혀 다른 맛이 있지요.
거실 불을 끄고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쳐다보면 설계자의 의도가 짐작 됩니다. 밝게 빛나지 않는 엉뚱하게 작은 FND가 가만히 존재만 들어내는 정도? 겪어보니 밤에 음악감상할 때는 밝은 창이 있는 튜너나 환한 VFD가 있는 튜너보다는 이 녀석이 훨씬 좋더랍니다. 아무튼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기타의 묘한 느낌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를 상상하게 만드는 튜너인지라... 소리가 약간 둔한 편이라서 통울림은 좋으나 고음이 좀 약한 AR 스피커에는 전혀 안맞더군요. 상대적으로 고음이 잘 나오는 다른 스피커를 써서 듣고 있습니다.
이 녀석 때문에 튜너에 대한 제 생각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1) 싸구려라고 절대 무시할 것은 아니다. 2) 4련, 8련 바리콘/바리캡에 이러구 저러구, 난다긴다하는 회로를 썼다한들... 기본스펙의 3련 튜너도 좋은 소리를 내더라. 3) 그러므로 체감하기 어려운 수치요소에 목멜 필요가 없더라. 4)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최상, 최고의 튜너는 없다. 정히 불만이 있다면 버리지 말고 확연히 특색이 다른 튜너 하나 더 들이면 된다. 5) 앰프와 스피커의 특성에 따라 튜너 음질 등 성능이 간접 평가되니... 경우에 따라 다소 억울한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 6) 남들이 좋다고 하고 통상 가격이 비싼 튜너가 나에게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7) 튜너를 어떤 곳에 놓는가에 따라 사용빈도가 달라지고 자주 듣게 되면 귀가 익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