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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글] 정인을 지켜내야 합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0-05-16 18: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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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596

제목

[잡글] 정인을 지켜내야 합니다.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예부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정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금래의 상황을 파악해보자면 이것은 어폐가 되겠는데, 실로 중매나 소개팅 같이 비인간적인 삶의 여러 가지 유형들이 이를 유의미하게 설명합니다. 하기야 누구나 외로움을 타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길 간절히 원하는 게 사람 마음이라지만 현대 사회는 극적인 모순성에 불타오르는 듯 싶습니다. 정략결혼은 단지 부자들끼리의 자기보존의 형태라고 본다면, 이것은 커다란 부덕의 소치입니다. 정략결혼이라는 건 ‘정치적인 측면’만을 계산에 넣어 가정을 생산해내는 것, 결국 가문의 안녕을 위한 주례사에 불과합니다. 정치적인 결혼은 결국에는 자기후회로까지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오래 살아본 사람은 깨닫는 사실 중 하나가 ‘인연은 하늘이 정한다.’는 명제입니다. 비일비재하게 많은 인연들 요컨대 크게는 친구·연인부터, 작게는 아는 식당 아주머니까지 이들을 배열하고 상정하는 원칙은 [지역]이라는 지정학적 구조와 [인맥]이라는 인간학적 구조, 그리고 [우연]이라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법칙에 의해 지배당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인연을 이어주는 것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공존하지만 무엇보다도 현재의 인터넷 사회에서는 [우연]이 무엇보다 중요한 하나의 ‘법칙’으로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 이 시대에는 더욱 진부한 만남이 될 것이란 점입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통한 만남이 왜 더러운 만남이냐, 하면 대부분의 인터넷 유저들은 개별성의 원리가 어떤 당위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인간관계의 인과성의 방향성의 중요한 몇 가지 포인트, 개별성·차이성으로 구성되는 일련의 결과 즉 규칙적 ‘동일성’을 직조해나가는 데 시비를 두지 않습니다. 우연적인 만남과 인터넷을 통한 계획적인 만남 사이를 가로지르는 핵심은 바로 이 ‘동일성’의 차이에 있습니다. 속된 말로, 인터넷은 모든 사람을 인식하게 만들어 주지만, 그들을 ‘알게’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은 하나의 통로일 뿐이지 결과를 향하는 도구는 아닙니다. 반면, 우연적인 만남은 거의 무모할 정도로 장대한 계획성을 배제한 채 말 그대로 천우일우의 개연성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그래서 더 로맨틱하고 지정학적 특성에 더욱 강한 배타성을 띕니다.



위의 말을 쉬운 말로 풀이하자면 이렇습니다. “새로운 사랑은 매순간 있지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을 것이다”는 피츠제럴드의 말은 우리는 생을 살아가면서 뼈저리게 상기하게 되는 감성의 상식 중 하나입니다. 고(古)의 사람들은 이미 주지하다시피 똑같은 사랑이 두 번 다시 않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운명이 정해준 정인을, 목숨을 걸고 지켜내고자 했으며,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바 삶을 선택하느니 사랑이라는 이름을 보호하고자 죽음을 택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어원은 죽을 사(死), 함께 랑(浪)자로 ‘죽어도 함께하겠다’는 뜻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윤리의식과 더불어 고결한 인문학적 정신도 결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비극은 비단 썩은 자본주의와 부패한 관료주의에만 속한 게 아닙니다. 현대인은 기본 정신을 비롯하여 깊은 저 바닥까지 자기 안전만 추구하며 나태하게 뒹굴고 있습니다. 결코 위험(물론 이 의미는 범죄적인 리스크가 아닙니다)에 가담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연민으로 하여금 노력하지 않으려는 오성, 달리 말해 그 지향성은 병폐한 개성의 미분화(未分化)에 현혹되어 비로소 퇴폐한 현대인의 군상을 처절하게 드러냅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써, 현대인은 더군다나 삶을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기야 삶은 곧 현실이고, 현실은 곧 노동과 쓰잘데기 없는 매너리즘으로 광범위하게 가득 차 있는 데 그 누가 그것을 선택하기를 원하겠습니까?



삶은 지루함의 연속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최소보장임금이 4000원대를 호가함과 동시에, 비싼 식료품값과 제한적인 무역장벽은 한국인들에게 섹스 이상으로는 달리 할 것이 없게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섹스야말로 돈이 안 드는 가장 싼 유희의 형태이며, 그래서 우리나라의 인구가 많은 것이 그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같은 경우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여 엄청난 인구와 더불어 기아가 존재하는 겁니다.



아시다피시 한국 사회는 천박합니다. 인구포화상태를 견디다 못해 그 쓰잘데기 없는 노인네들한테 11만원 씩 지급하는 MB정부는 무너져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제대로 된 교육을 우리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인데, 덜떨어진 교육 문제가 인간 실존을 더럽히고 천하게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일단 오락프로그램을 패쇄 시키고, 썩은 가요계를 해산시켜야 합니다. 근본적인 오락문화가 썩으면, 아이들의 정신 또한 황폐해지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에게 허황심을 심어줌으로써 잘못된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어순에 맞지도 않는 어휘들이 남용되어 국어에 유해성을 심어주게 마련입니다. 또한 무분별한 섹스어필이 종국에 가서 인구수를 늘리게 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퇴폐적인 문화들을 거부해야 하는 절대적인 명분을 확보하게 됩니다. 문화는 과거로 가면 갈수록 더 세련되고 심오하기 마련입니다. 대중문화라는 게 현대사회에 인스탄트 음식(junk food)처럼 자리메김함으로써 삶의 문법을 파괴하고 그 깊이와 오묘한 맛을 떨어뜨리고, 다양한 삶의 가능성과 차이를 일자(一者)로 만듭니다. 그럼으로 인해 현대인은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구분 역시 자가 판단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획일성이 도처에서 난무하고 거대기업들과 중소기업 들 간의 격차로 인해 부르주아와 난민의 격차 또한 심화됩니다.



아이들이 초월적인 개념을 파악함과 함께 인생을 관조할 줄 알 때야 비로소, 도덕적인 윤리관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미적 가치를 볼 줄 아는 눈이 생기게 됩니다. 하여, 정인을 지켜나가는 게 무엇인가 하는 명료한 초점이 그들 의식의 안팍에 생기게 되며, 진실한 로맨스의 참맛을 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문학과 그림을 감상할 줄 아는 눈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사랑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계속 상대가 바뀌고 그런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에, 바로 그 시점에 가서 인간은 단지 성욕을 위해서만[마치 창부를 희롱하는 것과 같이]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동물들의 난교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동물과 사람 간의 사랑을 구분해주는 것이 바로 로맨스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중매와 소개팅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삶의 다다한 국지적인 요소들을 파괴하고 소중한 이면들을 침몰시킵니다.



정인을 지켜내는 시대가 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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