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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0-04-22 15:31:57
추천수 2
조회수   1,080

제목

아인슈타인

글쓴이

윤양진 [가입일자 : 2001-09-12]
내용


- 우선 아인슈타인에 대한 저의 이미지



지구과학 선생이 있었는데....독특하게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더군요.



보통 속도가 빠르면 젊어진다거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걸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때

많이 이야기 합니다.(수퍼맨 1편 참조^^)



63빌딩에 사는 사람은 지상에 사는 사람보다 지구 중심에서 볼때 지름이 크기 때문에

같은 속도로 지구가 자전할 경우 실제 자전 속도가 지상의 사람보다 빠르게 됩니다.

(원심력이 원밖으로 갈수록 커지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한사람은 지표면에서, 한사람은 63빌딩 꼭대기에서 60평생을 사는것으로

가정하고 상대성 이론으로 계산해보니 죽을때 30분정도 더 산다는군요....^^;



- 그의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



그는 과잉행동 장애 아동이었답니다. 말더듬이에다가, 지진아였죠.

암기과목에 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가 그리스어 교사로부터



"넌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다"란 폭언을 듣기도 했답니다



결국 역사·지리·어학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졸업장도 못 받고 학교를 졸업합니다.

대학도 오로지 수학성적때문에 처음엔 청강생으로 수업을 받기 시작합니다.

6세부터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평생을 통한 유일한

즐거움이었답니다.



우리나라같으면 오느 시골 양계장에 취직해서 모이나 주고 있겠죠.....

그러나 그는 항상 유머를 잃지 않았읍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미국으로 망명할때도...



그런 그의 이미지가 그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었지요.

마크트웨인과 그가 어떤 모임에 갔을때 마크 트웨인보다 그를 더 사람들이

환호했다는 이야기는 어릴적 영어 교과서에도 본거 같습니다.



- 그의 힘든 성공....



그러나 그는 이론을 발표한 뒤에도 그의 이상한 행동과 주류학파에 못들어가는

경력 등으로 그의 이론이 인정받기는 하나하나가 가시밭길이었읍니다.

아래에 당대의 학자이자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세상에 알린 애증의 인물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 논쟁만 보아도 알수있겠죠.

(조금 기니 패스 하실분은 지나가세요~)



보어는 1913년에 발표한 자신의 원자모형에서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에 관한

논문에서 제시했던 생각을 사용했지만, 그는 광양자 가설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광양자 가설에 대한 보어의 회의적 태도로 말미암아 1924년부터 1925년 사이에

보어와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한 여러 과학자들 사이에는 광양자의 존재 여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1924년 초 보어는 가상 진동자 개념을 바탕으로 해서

미시세계에서의 에너지와 운동량 보존법칙의 파기를 내세우며, 파동론에 입각한

복사이론을 부활하려고 시도했다. 가상 진동자(virtual oscillator) 개념이란

원자들이 가상적인 복사장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가상적인 진동자들과

서로 교통(交通)하는 일련의 가상적인 진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가설로 1924년

유럽에서 박사연구원으로 활동하던 미국의 과학자 슬레이터(John C. Slater)가

처음으로 제안했던 개념이었다. 보어는 이 가설에다가 미시세계에서 에너지와

운동량 보존법칙을 파기하는 자신의 생각을 결합시켰고, 마침내 보어(Niels Bohr,

1885 1937), 클라머스(Hendrik A. Kramers, 1881 1957), 슬레이터(John Clarke

Slater, 1900 1976) 세 사람은 공동으로 새로운 복사이론을 발표했던 것이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이 광전효과를 비롯한 많은 문제를 설명하는

데에는 좋은 개념적 도구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빛의 간섭이나 회절 현상을 설명할

때에는 파동론에 의해서 정의되는 진동수나 파장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어가 보기에는 1922/23년에 컴프턴(Arthur

Holly Compton, 1892 1962)과 드베이어에 의해서 발표된 전자에 대한 X-선 산란

실험, 즉 컴프턴 산란 실험도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을 확증하는 결정적 실험은

되지 못했다.



보어의 이런 새로운 파동론적인 주장과 아인슈타인의 기존의 광양자 가설 가운데

어느 것이 타당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베를린의 제국물리기술연구소에서 일하던

발터 보테(Walther Bothe, 1891 1957)와 한스 가이거(Hans Geiger, 1882 1945)는

그들이 그 이전에 사용하던 전기계수 장치를 개량해서 창안해낸 동시계수법을

이용해서 엄밀한 결정적 실험을 실시했다. 동시계수법이란 두개 이상의 계수 장치

모두에 동시에 입력 신호가 들어갔을 때에만 계수기의 출력 신호가 나타나게 만든

장치인데, 이것을 이용하면 광양자와 전자와의 충돌 현상이 단일 사건인지 아니면,

여러 요인에 의한 복합적인 사건인지를 알 수 있었다. 1925년 4월에 얻어낸 보테와

가이거의 실험결과는 아인슈타인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은 1924년에 있었던 보어의 반동적인 쿠데타를 1925년 보테와 가이거가

실험적으로 반박하고, 곧 이어서 미국의 컴프턴이 사이먼(A.W. Simon)과 함께

구름상자를 이용해서 컴프턴 효과에 관한 실험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과학자들 사이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게 된다.





- 아인슈타인 이론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



(한겨례신문에서 퍼왔읍니다.)



1. 시계에 담긴 브라운운동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을 확인하는 액정 크리스탈 시계에는 브라운운동의 원리가

담겨 있다. 브라운운동은 물에 떠 있는 꽃가루 알갱이(분자)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식물학자 이름을 땄다. 아인슈타인은,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이런 운동의 원리를 밝혀 물질이 작은 입자(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가설을

논리적으로 입증했다. 시계의 액정 크리스탈 분자들은 가만 놔두면 끊임없이 브라운

운동을 한다. 여기에 전장을 걸어주면 문자가 보이는 곳의 분자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도록 브라운운동을 방해해 우리가 시간을 볼 수 있게 된다. 브라운운동을

거꾸로 이용한 이 원리는 전자계산기 화면에도 들어 있다.



출근길에 덜 막히는 길을 찾으려고 위성항법장치(GPS)를 켜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함께 켜진다. GPS는 지구 상공에 떠 있는 위성에서 받는 빛의 속도로 거리를

파악한다. 그런데 2만㎞ 상공에서 시속 1만4천㎞로 움직이는 GPS위성에서 시간은

지구에서보다 중력 때문에 45㎲(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 빠르게 가고(일반 상대성

이론), 위성의 속도 때문에 7㎲ 늦게 간다(특수 상대성 이론). 이에 따라 38㎲를

보정해주지 않으면 GPS 화면에는 서울에 있는 차가 실제로는 안양에 있게 된다.





2. 시디에 담긴 레이저



음악을 듣기 위해 시디플레이어를 켜거나, 아침 식사용 샌드위치가 바코드로 계산될

때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빛의 유도 방출에 관한 논문’을 만난다. 이들 장치는

모두 레이저를 이용한다. 레이저는 ‘유도 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을 의미하는

영문의 머릿글자를 조합해 만든 조어다. 아인슈타인은 들떠 있는 전자에 일정한

진동수의 자극을 주면 전자가 바닥상태로 바뀌면서 같은 진동수의 빛을 방출한다는

가설을 세워 레이저의 기본 원리를 제시했다. 레이저는 측량술, 라식 등 각종 의료

시술 등에도 쓰인다.



아인슈타인이 찬사와 비난을 한꺼번에 받는 이유는 그가 제시한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 관계’(E=mc2)가 원자력발전소와 원자탄 개발의 이론적 근거가 됐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론에서 물질의 운동량이 0면 에너지만 남는데 이는 질량에

비례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쓰는 전기의 40%는 아인슈타인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3. 음주단속(음주측정기에 담긴 광전효과)



퇴근길 음주단속 검문을 당하면 아인슈타인을 원망해도 된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뒤에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빛의 방출과 변환에 관련된 예시적 관점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빛이 고무줄을 튕겼을 때 모양처럼

연속적 에너지를 갖는 파동이 아니라, 일정한 단위의 에너지를 갖는 양자(퀀텀)로

기술될 수 있음을 보였다. 빛이 알갱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파장이 짧은

빛을 금속 표면에 쬐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가 설명됐다. 음주측정기에 들어

있는 가스가 알코올과 만나면 보라색이나 파란색 등 파장이 짧은 빛깔로 바뀌고,



이 가스에 들어 있는 빛알(광양자)이 금속 표면을 쬘 때 튀어나오는 전자수를

측정해 혈액 속의 알코올 농도를 측정하게 된다.





- 아인슈타인의 어록





"내가 성취하고자 추구했던 것은 단지 나의 부족한 능력으로 진리와 아무도 즐겁게

하지 못하는 위험에 대한 정의에 봉사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항상 신이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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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2010-04-22 15:52:29
답글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거부했었습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가 양자역학에 반대한 말입니다. <br />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광전효과가 양자역학의 기초가 되었죠. <br />
이걸로 노벨상도 받고요.(상대성 이론으로는 노벨상 못 받았습니다.) <br />
재밌는 역사의 한 장면입죠.

김진우 2010-04-22 15:58:00
답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불확정성의 원리와 관계가 있는 것같아요..

김대홍 2010-04-22 16:00:24
답글

진우님 말씀이 맞습니다. 불확정성 원리도 양자역학의 기초입뉘당~~ ^^;;

윤양진 2010-04-22 16:03:20
답글

닐스 보어와 아인슈타인...서로 사이가 안좋은 것 같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경쟁자 <br />
관계는 아니죠. 이론으로 경쟁했을 뿐....

이승목 2010-04-22 16:51:54
답글

아인쉬타인은 학습지진아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성적이 안좋았다는 것은 독일의 성적표를 미국인들이 제대로 이해를 못했기 때문인데 그것을 한국에서 그대로 베껴 쓰다보니 학습지진아에 수학/과학만 잘하는 괴짜라는 엉터리 전설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br />
게다가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이론을 물리학계에 인정을 받았었고, (물리학계에 주류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지만) 20세기초 물리학의 폭발적인 발견의 시기에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권윤길 2010-04-22 17:03:16
답글

피터 콜레스의 아인슈타인과 거대 과학의 탄생을 보면 과학이 아인슈타인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걸로 나오더군요. 과학자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지고, 대중성에 영합하는 과학이 탄생하기 시작하게 만들고 말이죠. 수학에는 지진아 수준인 저조차 특수 상대성 이론이 어떻고, 일반 상대성 이론이 어떻고하는 풍얼을 읊으니..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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