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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나는 평생 극악의 고통과 함께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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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7 01:5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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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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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나는 평생 극악의 고통과 함께 지냈다.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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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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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까지 참 힘들게 살았다. 가정이 무너지는 가운데 나는 매일 석의적인 방향의식을 선천적으로 항상 내 인식 기관에 갖추고 있어, 그로 인해 어린나이에 너무나 힘들었고, 팔자가 너무 쌘즉슨 8개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냈다.
아마도 내 소천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지매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스카치 위스키를 먹고 정신이 횟가닥 돌아, 그로 말미암아 구치소에서 6개월을 보내다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간신히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보낸 시간도 총합 8개월째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청량리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나는 자살유혹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것 같은 비동류성적 분화, 이를테면 분유(分有)하는 인간실존의 아이러니를 한참이 지나서, 거기 몰입함으로써 느끼는 다다한 모호성에의 의미 즉 의미의 다의성, 아마도 그런 것을 경험한 것 같다.
그러나 청량리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오늘에 도착해서야 난 깨달았다. 내가 내 숙명에서 해방되었다는 하나의 자족성을. 무언가 나는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모종의 존재의식이 완미(完美)에 다가가는 자기이상의 무한한 연장(延長)을 향한 목적적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완연하게 느꼈다. 무릇 인생이란 오늘을 즐기는 것, 순간을 즐기는 게 곧 동양에서 말하는 선(禪)이거니와 동양철학의 핵심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준비를 하지만, 그것이 바투 고통과 고통을 잇는 개인역사의 패배행위에 대한 반란과, 후일에 가서야 마주하는 행위자적 소거행동의 기초가 정초되는 개인의 바람의 위치(좌표계)의 쌍극적 딜레마를 극복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 퇴원했다. 나는 자유의 몸이 된 지금 이 글을 작성하고 그러니까 당연 산출행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는 제발 이 질긴 팔자의 끈에서 벗어나고 싶다. 더 이상 고생하며 고통당하는 생을 살아갈 수 없다. 다만 인간이 불행을 느끼는 건 자유라고 하지만, 내가 선택하고 싶은 건 소박한 행복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나의 전체를 몰입하리라. 그것이 곧 인간다운 삶이요, 개인의 본질을 살아가는 근본명제일 따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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