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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대한 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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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08:0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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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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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 대한 소고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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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전 [가입일자 : 2004-12-22]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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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들어와 이런저런 글을 보다가 박정희에 대한 글을 읽고 답글삼아 한 글 적어봅니다.
평소하는데로 편한체를 사용합니다.
박정희에 대한 소고
진보적인 성향의 분들이 보기에는 일부 나이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는 박정희에 대하여서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 참으로 많을 것이다.
군사쿠테타에 유신독재에 말년의 방만한 생활 등 무엇 하나 인간답게 평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박정희에 대한 맹목적인 향수 같은 것을 가지고 추종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박정희의 과는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기 때문에 생략하고 그의 공에 관하여 딱 한 가지만 말하겠다.
그것은 희망.......성취.......자신감 이것 뿐이다.
저것이 무슨 말인가 하실 분들이 계실 것이다.
자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 보자.
조선 후기 부터 일제의 침탈과 미국에 의한 해방까지 근 300 여년간의 조선인민들의 삶은 총체적인 난국과 고난의 연속이였다.
해방 후 좌우의 대립으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과 민족 분단에 기인한 남북간의 전쟁 등의 후유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경의 시절이였다.
이러한 때 인민들의 수준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해방 후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1945년 13세 이상의 문맹률은 대강 80% 정도였다.
박정희 시대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지만 일 할 수 있는 청장년층의 문맹률은 해방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새롭게 자라나는 새싹들은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로 일 할 수 있는 층에는 대다수가 문맹자였다고 보면 된다. 거칠게 잡아 열 명에 일곱 명 정도는 일자무식이라고 해도 된다.
얼추잡아 삼 천만 명 정도의 이러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든 때가 바로 그때였다.
일부 깨우친 분들이 민주와 인권을 이야기하고 인간다운 삶에 대한 조언을 하여도 저 말이 뭔말인가를 이해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 시절이였다.
한마디로 이천만정도가 노숙자였다고 보면 얼추 맞다.
그러한 암울하고 앞이 안보이는 시절에 방향을 제시하고 ( 희망 ), 자그마한 성과를 거두고 ( 성취 ), 그러한 성과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된다는 것을 믿게 ( 자신감 ) 만드는 그 과정이 독재자 박정희의 주도적인 역할로서 이루어 진 적이 있었다는 실질적 경험이 나이 많은 세대들의 박정희 향수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와싸다의 진보지식인들이 노무현에게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단초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는 것과 동일한 사고구조임을 밝혀 둔다.
박정희 이후의 정치인들이 박정희가 제시한 희망, 거둔 성과, 그리고 전국민에게 부여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고취를 박정희의 반 만큼이라도 이루었다면 박정희라는 이름 석자는 인구에 회자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을 마무리 짓기 전 간단하게 한 자 더 추언하자면 우리의 노무현님은 희망은 제시했지만 거둔 성과는 없었고 노무현 시대의 지속이 미래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전환시키지 못하였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노무현은 박정희의 한 수 아래이며 레벨이 틀린다는 것이다.
돈 수 백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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