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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퍼시픽의 과달카날 전투의 수훈갑 "츠지마사노부"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10-03-24 01:31:40
추천수 4
조회수   1,153

제목

[미드] 퍼시픽의 과달카날 전투의 수훈갑 "츠지마사노부"

글쓴이

이선형 [가입일자 : 2002-03-15]
내용
작전의 신 츠지마사노부 2차대전영웅

2008/06/11 19:34



http://blog.naver.com/lee82032/90032097978











1. 할힌골 전투



작전계획을 세운 츠지 마사노부.



일선지휘관들이 "이건 미친거야. 작전 수정해야 해." 라며 수차례 수정을 요구함



츠지 마사노부 왈 "닥쳐"



결국 그대로 계획 실행.



일본군은 다진 고기가 되서 들판에 거름으로 뿌려짐.



패전을 보고하면서 츠지 마사노부는



"소관의 작전계획은 완벽했으나 일선 지휘관들의 졸렬한 지휘와 감투정신의 부재로 패전"



이라고 대본영에 보고함.



결국 일선부대 연대장들 줄줄이 할복자결.



2. 남방작전



필리핀 14군으로 파견나간 "작전의 신"



이윽고 14군 전체에 "모든 미군 포로를 처형하라"라는 구두명령이 발신됨.



그 명령에 의구심을 품은 대령 하나가 문서로 된 명령을 요구하면서 진상을 알아봄.



실상은....



츠지 마사노부가 뒤에서 농간을 부리며 전화로 "포로 학살"을 대본영의 명령이라고 왜곡하며 지시내림.





결국 필리핀에서 미군 포로 대량 학살 발생.



3. 과달카날



이미 이치키 지대의 1차 공격이 전멸로 끝난 상태에서 대본영은 현상 파악을 위하여



"작전의 신" 츠지 마사노부를 과달카날로 파견.



가와구치 소장의 필사적인 2차 공격마저도 압도적인 미군의 화력에 말려 패배한 상태에서



츠지 마사노부는



험난한 정글밀림을 빠르게 돌파한후 전부대원 착검한채 야습돌격한다는 계획 수립.



가와구치 소장은 이미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을 경험한 후였으므로 이런 "정신나간 계획은 전멸을 불러올뿐이다"라며 좀더 합리적인 작전계획 수립할것을 요구.



우리의 호프 츠지 마사노부는



"미군은 비행장에서 테니스나 치면서 놀고 있고 가와구치 소장은 감투정신이 부족하여 소극적인 지휘를 한다"라고 대본영에 보고.



결국 가와구치 소장은 신병상의 이유로 본국으로 송환되고 "테니스장 야습 돌격"은 전멸로 끝남.



전후 미군의 문서에는 가와구치 소장의 2차 공격만이 미군에게 실로 지대한 위협이었다고 평가함





4. 패전후



츠지 마사노부는 기소중지되자마자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돈을 벌었고



정계로 진출하여 의원에 당선됨.



68년 캄보디아로 여행간후 실종됨.









P.S 이 인간이 가난한 집안의 수재로 태어나 수석으로 졸업하고 근면성실하며 청렴했답니다

[출처] 작전의 신 츠지마사노부|작성자 탕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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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요즘 퍼시픽이라는 미드 보고 있는데 과달카날 전투가 2화로 끝났습니다.



이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군 승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휘관이 이사람이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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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h7212@empal.com 2010-03-24 02:04:32
답글

솔직히 2차 대전사를 보면 현실 감각을 지닌 일본군 지휘관이 드물더군요...프로이센의 클라우제비츠가 이미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불후의 명언을 남겼지요..그런데 당시의 일본은 군이 정치의 우위에 위치하니 파멸은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합니다...하지만 당시의 일본군의 전략 전술은 비이성적인 면이 너무 많아요... <br />
[del]

loh7212@empal.com 2010-03-24 02:13:42
답글

노몬한 전투나 중일 전쟁의 발발과 전개 과정에서 도쿄 총본영의 명령을 듣지 않는 현지 지휘관들을 보면 개판이란 표현이 실감나지요..육군내에서도 죠수번 파벌과 다른 파벌의 대립...심지어는 직속 상관이어도 같은 파벌이 아니면 명령을 따르지 않고...쿠데타에 암살 크리...게다가 육군과 해군의 알력 싸움 등...정말 당시 일본군을 보면 정치가 군을 제어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의 아주 모범 케이스입니다.

고현철 2010-03-24 03:38:59
답글

이런 말도 안되는 싸움에 강제로 끌려나가서 죽은 한국사람은..........ㅠ.ㅠ<br />
<br />
태평양 전쟁은 보면 볼수록 복잡하기만 합니다.<br />
<br />
물론 저런 멍청이가 있어서 빨리 전쟁이 끝난 것일 수 있습니다만.....

daesun2@gmail.com 2010-03-24 08:00:27
답글

대한 제국 독립에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이군요.<br />
<br />
이런 또라이 를 찾아서 발굴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br />
<br />

김좌진 2010-03-24 09:15:58
답글

실종되어 한국의 아키히로가 되었다는 전설이 100년 뒤쯤에 일본에 퍼질 것 같습니다. 일본애들은 자기들의 명장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일본에서 도망쳐나와 칭기스칸이 되었다고 믿는 애들이니까요.

이희정 2010-03-24 10:18:18
답글

저도 퍼시픽 1화보면서 미군 기관총에 맞아 죽어나가는 일본인중에 우리나라 사람도 있었겠구나 생각되더군요...원숭이들 욕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죽은것인지.. [

kenhkim@empal.com 2010-03-24 12:15:57
답글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죽임으로써 일본군부의 우익, 과격파가 주도권을잡게되고<br />
결국 이로 인해 2차 대전 참전 그리고 이런 과격파가 대우받고 그리고 불나방처럼 소멸전을 <br />
치룸으로써 전쟁이 빨리 끝난 것입니다. <br />
<br />
일종의 나비효과라 하기엔 너무도 치명적인 것이죠. <br />
<br />
그때 이등박문이 죽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속국 티벳처럼 <br />
아직도 일본 지배하에 있을

daesun2@gmail.com 2010-03-24 12:35:51
답글

그런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br />
<br />
음 ...안중근 의사의 업적이 엄청 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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