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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라교와 카톨릭교 새로운희망
2006/11/09 05:27
http://blog.naver.com/dream2m/120030927476
-미트라교(조로아스터교의 로마판)-
1. 미트라는 12월 25일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예수의 생일은 1월 혹은 6월.
2. 미트라는 태양신의 아들이며 중재라로서 미트라 성 삼위일체설을 형성하였다.
3. 미트라를 기리는 거룩한 날은 예수님이 나기 수 백년 전부터 일요일이었다.
(태양신을 섬기기 때문에 Sunday가 거룩한 날이다)
4. 그에게는 열 두 제자가 있었다.
5. 기적을 행했다.
6.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일어났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의 부활절 주기와 같다.
7. 미트라 교도들은 그가 부활한 날에 축제를 베풀었는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이 되었다.
8. 사람들은 그는 길이요, 진리요, 세상의 빛이요, 선한 목자, 구세주 혹은 메시아로 불렀다.
9. 죄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어린양을 이끄는 것으로 그려졌다.
10. 미트라는 사자상으로도 상징되었는데, 사자의 입에는 벌(Bee)이 물려져 있다.
그 벌은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갈대아어에서 '벌'은 'Logos'란 뜻이 포함된다.)
11. 세상이 선과 악의 끊임없는 전쟁터였다고 주장했다.
12. 천국과 지옥, 마귀, 마지막 심판, 구원, 부활등의 교리를 믿었다.(조로아스터교 교리)
(구약은 여호와의 집이라 나와 있다. 예수의 부활, 지옥, 마귀등에 대한 말씀은 전혀 없다.)
13. 카톨릭의 성직자 계급 제도나 예배 형식 및 예배 시 쓰이는 도구들
즉 향불, 예배 의복, 십자가 목걸이, 염주알 등등 모두 미트라교와 흡사 하다.
-카톨릭 역사(미트라교 + 조로아스터교 영향받은 기독교) : 황제를 위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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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10-
172 티티안
4 복음서를 통합한 복음서를 내다.
예수나 그리스도 또는 크리스쳔이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을 Logos 설명에 할당하고 있다.
130 디오그네투스서신
하나님이 그의 아들 (Logos)을 보냈다고 함.
예수의 이름은 전혀 나타나지 않음.
155 미누시우스 펠릭스
크리스쳔이라는 단어는 빈번히 쓰는데
예수나 그리스도 라는 단어는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음
180 티오필러스
기독교의 교리와 진리는 하나님에 의해 성령을 통해 계시된것임.
예수 또는 그리스도 라는 칭호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음
100-
165 저스틴
기초 경전을 -복음서-라 부르지 않고 -사도들의 회고-라 칭함.
Logos가 형상을 받아 사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라 칭함을 받았다 라고 서술
-예수(Jesus)-의 의미는 -하나님의 구원- 이라는 말임.
저스틴의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영적 그리스도였음.
160-
220 터툴리안(삼위일체 신학자)
믿을수 없으므로 나는 믿는다" "너희들이 우리가 태양신을 숭배한다 하지만 너희들도 그러하지 않느냐?" 라고 대답
300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성십자 긋기
321
일요일 법령과 그 강제 준수
325
제1차 종교회의(니케아)
예수는 투표에 의하여 신(神)이 됨
복음서에 윤회, 환생 부분 없애 버림.
381
제2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삼위 일체 결의
394
이교의 매일 미사가 도입됨
400
성경적 안식일 준수자에 대한 박해를 시작
431
제3차 종교회의(에페소스)
마리아를 신(神)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
450
안식일(토요일) 준수자들에게 사형 언도!!
451
제4차 종교회의(칼케돈)
예수의 이중성(칼케돈 신조)
로마 교황 탄생의 빌미기 되는 교리
500
신부들의 옷이 신도들과 달라짐
526
임종 미사 제도 시작
553
제5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예수의 십자가형이 인류의 죄를 대속했다는 결정
원죄론(타락한 천사 사탄이 인간을 죄짓게 했다)
오리게네스의 윤회설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하고 이단으로 정함.
593
연옥설 도입(조로아스터교의 하밍스타간)
607
'만인의 주교'란 교황의 칭화가 처음으로 사용됨
680
제6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단성설(單性說)을 배척. 로마카톨릭 교회와 화해
호노리우스 교황을 이단으로 정죄
709
교황의 발에 키스하는 전통 시작
786
십자가, 형상, 유물 및 유골 숭배 시작
787
제7차 공의회(니케아)
이콘(성화상) 숭배, 유물숭배, 성자숭배
죽은 성도와 순교자들에 대한 기도가 공인됨
869
제8차 공의회(콘스탄티노플)
이콘(성화상) 논쟁을 둘러싼 동·서 교회의 대립
1090
묵주와 기계적인 묵주 기도 도입
1184
종교재판 시작
1190
면죄부 판매 개시
1215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고 신부에게 하는 고해성사제도 시작
1229
평신도의 성경 소유가 공식적으로 불법화됨
1517
M.루터
면죄부(免罪符)에 관한 95개조 논제
1545
교회의 유전, 즉 전통이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선언됨
1546
경외서들이 성경에 추가됨
1555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종교전쟁 중지
1582 마녀재판 시작. 독일 바이에른에서 48명을 마녀로 판단 화형.
1782 마지막 마녀재판. 스위스 게랄스에서 아인나 겔티를 참수형.
1854
마리아 무염 수태설 주장
1864
교황의 유론표(Syllabus of Errors)
종교,언론,양심,출판의 자유, 과학적 발견과 학문의 자유 정죄함.
1870
교황 무오설 주장
1950
마리아 승천설 주장
1965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로 승격
기독교가 표절한 미트라교(조로아스터교) 2006-12-02 12:38
카테고리 : 흥미로운 이야기 http://blog.paran.com/hwa2nd/14404253
미트라교(조로아스터교의 로마판)-
1. 미트라는 12월 25일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예수의 생일은 1월 혹은 6월.
2. 미트라는 태양신의 아들이며 중재라로서 미트라 성 삼위일체설을 형성하였다.
3. 미트라를 기리는 거룩한 날은 예수 나기 수 백년 전부터 일요일이었다.
(태양신을 섬기기 때문에 Sunday가 거룩한 날이다)
4. 그에게는 열 두 제자가 있었다.
5. 기적을 행했다.
6. 그는 무덤에 묻혔으며 3일 후에 다시 일어났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의 부활절 주기와 같다.
7. 미트라 교도들은 그가 부활한 날에 축제를 베풀었는데, 나중에 기독교의 부활절이 되었다.
8. 사람들은 그는 길이요, 진리요, 세상의 빛이요, 선한 목자, 구세주 혹은 메시아로 불렀다.
9. 죄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어린양을 이끄는 것으로 그려졌다.
10. 미트라는 사자상으로도 상징되었는데, 사자의 입에는 벌(Bee)이 물려져 있다.
그 벌은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갈대아어에서 '벌'은 'Logos'란 뜻이 포함된다.)
11. 세상이 선과 악의 끊임없는 전쟁터였다고 주장했다.
12. 천국과 지옥, 마귀, 마지막 심판, 구원, 부활등의 교리를 믿었다.(조로아스터교 교리)
(구약은 여호와의 집이라 나와 있다. 예수의 부활, 지옥, 마귀등에 대한 말씀은 전혀 없다.)
13. 카톨릭의 성직자 계급 제도나 예배 형식 및 예배 시 쓰이는 도구들
즉 향불, 예배 의복, 십자가 목걸이, 염주알 등등 모두 미트라와 흡사 하다.
미트라의 기원은 고대 인도, 이란의 민족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미트라 숭배는 BC 3세기 경에 페르시아에서 성행하였다.
미트라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된 종교로, 페르시아의 발전에 따라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었으며, 거기서 로마로 전파되었다.
미트라교 종교의 이해
2007/04/17 23:10
http://blog.naver.com/middleway49
밀의(密儀) 종교로서 '정복 불가능한 페르시아 모자를 쓴 젊은 신'으로 표현되고 쓰러뜨린 황소 위에 무릎을 대고 한 손으로는 뿔을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단도로 목을 찌르는 像으로 묘사되었다.
미트라교는 로마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 4세기 동안 월등한 교세를 자랑하며 크게 성행하였으며, 미트라를 황제의 보호신으로 모셨다.
주로 군인 층에서 열렬히 신봉하였는데 이후 귀족과 황실에서 받아들여 제국과 황제의 수호신으로 격상되었다.
미트라교에 대해서는 고대 페르시아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BC 404 - BC 358)의 비문에 그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로마에 나타났던 종교 형태는 이미 그 내용이 크게 변질되어 있었다. 이유는 소아시아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토착종교와 혼성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폼페이우스(BC 106 - BC 48)황제의 東征 이후에는 로마 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점차 모습이 사라졌다.
미트라의 숭배자들은
태양의 에너지가
인간의 두뇌에 축적 된다고 믿었고
이것이 후광으로 나온다고 믿었다.
이것은 후에 중세시대의 성화에서 예수의 얼굴 모습을 표현할 때 나타냈던 얼굴의 후광에 영향을 끼쳤다.
신자의 제례는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바위굴 안에서 행해졌는데, 그 깊숙한 곳 암벽에서 '숫소를 도살하는 신'의 부조를 볼 수 있다.
미트라 신전에 건조되었던 우상은 그리스도교도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당시의 건조물을 포함한 종교적 유적은 현재 유럽에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