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북쪽으로 약 두 시간 남짓 거리에 위치한 휴양지 닛코(日光)를 유서깊은 관광지로
만든 이유 중에는 그곳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인 도쇼구(東照宮)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다시피 도쿠가와는 일본을 통일하고, 이후 260여 년동안 권력을 휘두른 군사정권 에도막부의
시조입니다. 그런 도쿠가와를 모신 곳인만큼, 도쇼구는 근세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힐만큼
화려합니다.
그런데, 도쇼구의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상대적으로 허술한 신큐사(神廐舍)라는 부속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고작 마굿간으로 쓰이던 그곳이, 그러나, 도쇼구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물로 언급되는 이유는 그 건물에 조각돼있는 원숭이 상(像)들 때문입니다.
말을 병으로부터 지켜 준다는 8마리의 원숭이 중에 특히
'산자루(三猿)'라고 이름 붙여진
3마리의 원숭이 조각상이 그 주인공이죠.
세 마리 원숭이는 살벌한 무신정권 아래 숨죽여 살아야 했던 일본 민중의 처지에 다름 아니었다.
에도막부는 이런 민중 폭압정책으로 전제권력을 260여 년간이나 이어나갔다.
각각 귀와 입과 눈을 가리고 있는 우스꽝스런 표정의 이 원숭이들은,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는 인간의 처세술을 대변하고 있다고 일컬어집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보편적인 '인간의 처세술' 따위는, 의미를 치장하기 좋아하는 후대인들이 교묘하게 갖다 붙인
주장일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고관대작들이 도쿠가와를 참배하기 위해 빈번하게 방문을 하던 곳으로,
도쇼구의 입구에 있는 마굿간에서 근무하던 하인들은 그 누구보다 몸가짐을 철저하게 해야
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무사정권이 지배하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칼을 찬 사무라이에게는
절사어면(切捨御免, 키리스테고멘)이라는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지배계급인 사무라이에게 불경하거나 무례를 범하는 평민은 그 자리에서 칼로 베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특권이었지요. 자칫하면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엄혹한 신분제도하에서 힘없는 평민은
그저 무슨 일에도 귀 막고 입을 봉하고 눈마저 감고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신큐사의 원숭이 세 마리가 의미하는 것은 권력 앞에서 그저 '쥐 죽은 듯이 살아라'는
무언의 경고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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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정보환경은 스스로 관심만 있다면 특별한 기밀대상이 아닌 한은 그 어떤 정보에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십여년 전까지만 해도 정보에 목말라 하던 개개인은 이제 과다한
정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대부분 정보소비자들로 구성된 개인회원 중심의 와싸다는 사이트 특성상 일차적 정보를 재생,
가공한 '이차적 정보 게이트웨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개봉중이거나 개봉을
앞둔 영화정보 같은 것은 이해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생산, 배포하는 관련 사이트 등을 통해
이미 무차별적으로 배포, 확산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정보통신 강국으로 꼽히는 대한민국은 이미 '1가구 1컴퓨터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며
그만큼 인터넷 정보의 접근성이 평등화된 국가입니다. 더구나 이런 2차 정보 게시판에
개봉중인 영화에 대해 사소하게 언급하는 정도를 두고 '스포일러'를 운운하거나, 아예 대놓고
'무식한 짓'이라고 비난하는 행위는 스스로를 '우물안 개구리'라고 자인하는 얘기죠.
정보교류를 위한 게시판에 극히 보편적인 정보를 올린다고 해서, 그것이 다수 사용자들의 정상적인
정보취득에 크나큰 방해요소라도 되는 것처럼 타박하는 분들은 대체 어떤 정보취득 구조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인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컴퓨터만 켜면 실시간으로 무한대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음에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취득 창구를
오직 이곳 와싸다 게시판에만 한정해놓고 계신 분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 분이 있다면, 도쇼구의 세 마리 원숭이처럼 눈도, 입도, 귀도 막고 사는 시대착오에 젖어있다고
해야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들에게 세 마리 원숭이의 규범을 따르라는
이야긴지... 알쏭달쏭하네요.
이렇건 저렇건, 2010년 대한민국, 절사어면권이 횡행하던 사무라이 시대의 일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