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이야기입니다.
직장에서 입사 동기 한 명이 있었는데
(저희 둘 다 미혼이었죠.)
지방에서 올라와 누나 집에 기거하며 성실하게 회사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호리호리하며 순한 인상에 착한 사람이었죠.
당시 다니던 무역회사는
일을 빡세게(?)하고 회식은 끝장을 보는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2,3차는 거의 기본이었죠.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저와 동기는 날마다 고역이었습니다.
막내인데다가 잘 어울리지 못하니
간부들에게도 총애는커녕 업무에서 불이익까지 받고...
이렇게 억지로 밤 문화에 끌려다니던 어느 순간
동기가 술을 점점 잘 마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 친구가 사회생활 이 악물고 잘하려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자주 사무실에서 자리를 비우고...
바이어에게 팩스 쓰다가 멍하니 먼 산 보고 있고...
이러던 이 동기가 저에게 털어놓더군요.
자주 가던 룸에 나오던 아가씨를 좋아한다고요.
무척 놀랐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친구 그 여성에게 따로 연락하면서 선물도 하고 그랬나 봅니다.
저에게 하는 말이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환장하겠더군요.
정신 차리라고 앞으로 퇴근하고 혼자 술 마시러 가지 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습니다.
말을 듣지 않더군요.
술도 좋아하지 않고
몸도 따라주지 않고
저와 함께 이런 회사생활을 저주(?)하던 동기가 변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동화되고 빠져서
오히려 거기서 낙을 찾게 된 거죠.
결국,
동기는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아가씨가 동기의 지나친 구애에 부담을 느꼈는지
아니면 영화 속에 보던 말처럼 사랑에서 헤어졌는지
떠나가 버렸더군요.
그 충격에 동기도 회사를 접은 겁니다.
말릴 틈도 없이 그 친구 가버렸습니다.
가끔 제 동기가 생각납니다.
전날 술이 떡이 되게 마시고 정시에 출근해서
오전에 졸린 눈 비벼가며 일하다가 간신히 정신 차려
점심 먹고 둘이 옥상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하던 소리가요.
"승철씨, 우린 나중에 과장되고 차장되면 저러지 말죠.
술은 마시고 싶은 사람만 마시는 거지...
아무튼, 이러기도 힘든데 신입 둘이 술도 못마시고...
아, 사회생활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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