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에서 아이맥스로 관람했습니다.
일단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만족스럽지도 못했습니다. 이전 3D관람경험이 있어서 과도한 환상따위는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좋더군요. 생각보다 덜어지럽고 배경과 전경의 분리도 여지껏 본 3D중 가장 훌륭했습니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배경이 CG라 포커싱이 필요한 필름 화면에 비해 구석구석 화면 어느곳을 둘러보아도 3D의 느낌을 살려줍니다. 사실 카메라의 포커싱은 눈의 촛점맞추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입체촬영은 촬영 후 추정거리별로 입체시간격을 조정하는 재처리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CG로 만드는 방법이 가장 자연스럽고 쉽죠.
그러나 여전히 그림들은 가상현실을 느끼게 해준다기 보다는 신기한 구경거리에 더 가깝습니다.(엄청 신기한 구경거리죠^^) 물체들 사이의 원근감은 훌륭하지만 여전히 각 물체의 입체감은 빈약한 편입니다. 나쁘게 예기하면 3D 종이모빌을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단 저는 좀 뒷자리에서 관람했는데, 3D의 특성항 거리가 가까울 수록 입체감이 도드라지니 C열 정도의 앞자리에서는 좀 더 나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입체시만으로 거리감을 지각하는게 아니라 기울기와 주변 물체와의 관계등을 계산하기 때문에 극장의 배경은 시각적 몰입을 방해하더랍니다. 제 생각으로는 왕십리 기준으로 C,D열 정도가 가상현실을 위해서는 가장 적당해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인지과학적인 접근은 많이 부족한듯 보입니다. 원래 인간의 시각은 인간의 몸의 움직임과 동조화되어 있어서 움직임에 따른 시각억제메카니즘이 작동합니다. 그러나 아직 초보적인 가상현실 기술로는 그런 동조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장면이나 배경을 둘러보는 패닝 컷의 경우에는 매우 부자연스럽고 어지럽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경에 집중하지 않고 포커싱 된 가장 큰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하는 것이 가장 편한 관람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내용은 뭐 지극히 카메론 다웠습니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대자본에 대한 적개심은 여전하고(그런데 4억 달러 가까이 들여서 영화를 찍는단말야?ㅋㅋ) 들인 자본의 안전한 회수를 위해 충실히 인류 최대공약수의 감수성을 건드립니다. 유치하거나 뻔한 건 질색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3시간에 가까운 관람시간이 매우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론의 젊은 시절을 지배했을 세기 중후반의 신좌파적인 상상력은 뭔가 아련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더군요.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마거릿 미드류의 문화인류학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신화학, 자각몽이나 아바타 등 뉴에이지 코드, 월남전 반전주의 등의 주제들이 숨가쁘게 지나갑니다. 어찌보면 신기술의 당의정 속에 계몽주의적 메시지를 숨겨놓는 카메룬의 방법론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사실 얼마나 많은 대중들에게 그 방법론들이 먹혀들까요? 특히 우리나라에서요. 월남전이 부끄러운 범죄였다는 인식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영화가 미국에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는데, 같이 더러운 범죄를 저지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월남전이 범죄였다는 말이 조심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당연히 용산참사를 떠올려야 하는데 보는 아해들중 몇명이나 그럴까요? 테크놀로지가 중심인 오락영화 영화 한 편 보면서도 이렇게 잡다하게 생각을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무겁습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고 제가 느긴 가장 큰 교훈은 이겁니다.
"큰 차를 사면 여자의 떠난 마음도 돌릴 수 있고 상대방 남자를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다."
사족- 1.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점 중 가장 큰 것은 평론가들이 앞다투어 바지를 벗고 말해듯, 판도라라는 행성을 창조해다는 것일겁니다. 카메론은 언어학자와 다른 여러과학자들을 자문역으로 고용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접근 방식은 좋습니다만, 사실 너무 어설펐습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행성에서 기대하는 외계의 언어는 영어와 다른 언어가 아니라 지구의 언어와 다른 언어입니다.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진화한 생명체가 유사한 발성기관으로 비슷한 언어를 말한다는 설정은 너무 동화적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키가 3미터는 될 법한 생물체의 발성기관에서 나오는 벌성이 인간과 닮았다는게 말이 됩니까? 예전 진화고고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만들어진 가상의 네안데르탈인의 발성도 나비족 보다는 훨씬 이질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여자라도 최소한 최홍만이나 베리 화이트보다는 목소리가 낮아야죠.ㅋㅋ 어쩌면 단순히 월남전이나 제3세계의 은유로 표현된 판도라에 대해서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해는지도 모르구요.
예전에 아마겟돈의 연극무대같은 배경에서도 느낀 바지만 지구보다중력이 약한 곳에서
내내 자연스러운 1G의 움직임이 보이는것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습니다.ㅎㅎ
2. 사실 아바타 프로그램은 인지철학자들의 가장 흥미로운 난제인 심신론의 어려운 문제를 유발합니다. 토머스 네이글이 말했듯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라는 질문이죠. fMRI 장비를 닮은 스케닝 장비 등, 현대과학의 성과들을 외형적으로 반영하고 있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언급도 안되고 해결도 안됩니다. 그걸 구체적인 주제로 다루는것은 당연히 대중영화 코드에 맞지 않겠지만 몇가지 암시만으로도 생각보다 설득력 있는 영화가 되었을텐데요. 생각보다 카메론의 인력풀이 작은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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