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보고 있습니다.
제 2강에서 1375년 정도전이 나주에 귀양갔을때 쓴 "답전보"를 소개하였습니다.
1374년 개혁을 추진하던 공민왕이 암살당하고 이듬해 정도전이
귀양을 가게되어 되는 과정중에 나온 글입니다.
궁금해서 찾아 읽는데 요즘 이야기인지 옛 이야기인지 헷갈리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서는 노무현대통령이 생각나서 참 착잡했습니다.
당시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유생들의 개혁작업은 기득권의 끊임없는 반발에 부딪혔는데 이에 좌절한 이들은 결국 역성혁명을 선택하게 됩니다.
다행히 내전까지는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피를 흘리게 되지요.
동문선 제107권 잡저(雜著) 농부에게 답하다
<答田父>
임시로 살고 있는 집이 낮고 기울어지고 좁고 더러워 나는 마음이 답답한데, 하루는 들에 나가서 노니, 눈썹이 기다랗고 머리가 희고 진흙이 등에 묻은 한 농부가 손에 호미를 쥐고 밭에 김을 매고 있었다.
내가 그 밭가에 서서 그에게, “노인 수고합니다.” 하니, 농부가 한참 있다가, 나를 보고 호미를 밭에 두고는 언덕에 올라와서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앉더니, 턱을 끄덕이며 나를 오라고 하므로, 나는 그 사람이 늙었기 때문에 추창해 가서 두 손을 포개어 섰다.
노인이 묻기를, “그대는 어떤 사람이오. 그대는 의복이 비록 해지기는 하였으나, 옷자락이 길고 소매가 넓으며 행동을 천천히 하는 것을 보니 선비가 아니요, 그리고 또 수족이 부르트지 아니하고 뺨이 풍요하고 배가 허하니 조정에 벼슬하는 사람이 아니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소. 나는 늙은 사람이라, 여기에서 태어나서 여기에서 늙었노라. 거친 들과 궁벽한 곳으로 장기(瘴氣)가 꽉 찬 지역이며 도깨비와 더불어 같이 살고, 물고기와 더불어 같이 노는 몸이거니와, 조사(朝士)인 그대는 죄를 얻어 추방된 이가 아니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터인데, 그러면 그대는 죄를 지은 사람이오.”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러하오. 죄를 지은 사람이오.” 하였다.
농부가 말하기를, “무슨 죄를 지었소. 아니 구복(口腹)의 봉양과 처자의 양육과 좋은 거마(車馬)와 궁실 때문에 불의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욕심을 채우려다가 죄를 얻었소. 아니면 벼슬에 승진하기 위해 뜻을 날카롭게 하다가 스스로 이룩할 능력이 없어서 권신을 가까이하고, 세력가에 붙어 그들이 탄 수레와 말 뒤를 분주하게 따라다니면서 먹다 남은 찌꺼기 술이나 고기 부스러기를 얻어 먹으려고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을 떨며, 구차하게 즐거움을 취하는 데에 애를 써서 조그마한 벼슬을 어쩌다가 얻으면, 온 무리가 다 성을 내어 내쫓아 하루아침에 형세가 가버리게 되니, 이런 것으로써 죄를 얻었소.” 하고, 다시 물었다.
내가, “그런 것은 아니오.” 하고 말하니, 농부는, “그러면 말을 단정히 하고 얼굴빛도 바르게 하여 밖으로 거짓 청렴한 체하여 허명을 훔치고, 어두운 밤에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새가 사람을 의지하는 형태를 취하며, 애걸하고 가엾게 보여 정도에 벗어나게 결탁하여, 녹위를 낚아서 관수(官守)를 얻든지 언책(言責)에 거하든지 하여 한갓 그 녹만 먹고, 그 직책을 돌아보지 않아 국가의 안위와 생민의 휴척(休戚)과 또 시정(時政)의 잘잘못과 풍속의 미악(美惡)을 막연하게도 마음에 두지 않고, 진(秦) 나라 사람이 월(越) 나라 사람의 살찌고 여윈 것 보듯이 하여 자기 몸만 도사리고 처자를 보호하는 꾀로서 세월을 보내다가, 혹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있어서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국가의 급한 일에 임하여 직분을 지키고 바른말을 해서 곧은 도를 행하다가 화를 당하는 그런 이가 있음을 보면, 안으로 그 이름을 꺼리고 밖으로 그 패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 이를 비방하고 비웃어서 스스로 잘한 체하다가 공론이 떠들썩하게 일어나서 천도(天道)가 밝게 드러나니, 그만 간사한 것이 궁해지고 죄가 발각되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오.” 하고 말을 하니, 농부가 다시, “그러면 대장이 되고 원수가 되어 널리 당(黨)을 만들어서 앞에서 몰고 뒤에서 옹위하여 평상시 무사할 때는 큰 소리로 공갈하며, 임금의 은총으로 관록과 작상(爵賞)이 마음대로 이루어져, 마음에는 자만심이 가득 차고 뜻에는 기운이 성해서 조사(朝士)들을 경멸하고, 적군을 만날 때는 호피는 비록 좋으나 마음은 양같이 겁을 잘 내어, <주 D-001>교전을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기에 바빠서 많은 생명을 적의 칼날에 버리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기라도 하였소. 아니면 혹시 경상(卿相)이 되어 제 마음대로 고집을 세워 다른 사람의 말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에게 아첨하는 이는 즐거워하고, 자기에게 붙는 이는 진급을 시켜주며, 곧은 선비가 항거하여 말하면 성내고, 바른 선비가 도를 지키면 배격하며, 임금의 작록(爵祿)을 도둑질하여 자기의 사사로운 은혜로 하며, 국가의 형법을 희롱하여 자기의 사용(私用)으로 삼다가 악이 많아 화가 닥쳐 이런 죄에 앉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니오.” 하고, 말을 하니, 농부는 또, “그러면 그대의 꾀를 내가 대강 알겠소. 그 힘의 부족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큰 소리를 좋아하고, 그때 그때의 불가함을 알지 못하고 직언(直言)을 좋아하며, 지금 세상에 나서 옛 사람을 사모하며, 아래에 처하여 위의 마음을 거스리니, 이것이 죄의 원인일 것이오. 옛날에 가의(賈誼)가 큰 소리를 좋아하고, 굴원(屈原)이 곧은 말을 좋아했으며, 한유(韓愈)가 고문(古文)을 좋아하고, 관룡방(關龍逄)이 윗사람 마음 거스르기를 좋아하였으니, 이 네 사람은 다 도가 있는 선비로되 폄직(貶職)되기도 하고, 죽어서 스스로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하기도 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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