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요구르트 훔친노인과 국민 법감정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11.27 12:23|조회 : 55660 |추천: 72|나도한마디: 5
72세 노인 한모씨는 지난 5월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요구르트 등을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혼자 사는 처지에 먹을 것이 없어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홍승면 부장판사)는 한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생계형 범죄는 벌금형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어서 실형이 선고된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한씨는 세 차례나 절도를 한 상습범으로, 앞서 지난 2004년 3월과 2006년 7월 절도죄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었다. 검찰은 한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5조 4의 6항을 적용해 기소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형 집행 종료 후 3년이 되지 않아 또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량의 배를 더하는 가중처벌을 받아야 한다. 특가법상 절도죄 법정 형량은 징역 3년이기 때문에 한씨는 징역 6년 이상을 선고받아야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씨의 사정을 고려해 검사에게 공소장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사는 특가법 5조4의 6항에서 1항으로 적용 조항을 변경해 다시 기소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재판부는 징역 3년 이상만 선고하면 된다. 이후 재판부는 작량감경을 통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과거 한씨의 범죄 역시 모두 먹고 살기 힘든 사정 탓이라는 것을 딱히 여긴 것이다.
재판부와 검사는 나름 가벼운 양형을 모색했다지만 이는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판결이다. 한씨에게 징역 2년이 선고된 사실이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너무 무거운 형벌"이라며 사법부를 비판했다.
더욱이 재판부의 공소장 변경 요청이 없었다면 한씨는 2년이 아니라 6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야 했을 것이다. 애초에 검찰이 양형을 가볍게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씨의 사정을 살피지 않은 채 형식적인 법 적용을 한 검찰의 태도가 아쉬운 대목이다.
최근 법무부는 유기징역형의 법정최고 형량을 현행 25년에서 30년으로 높이기로 했다. 이는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뜨거워진 국민의 법 감정을 반영한 조치다. 그러나 뜨거운 국민의 법 감정은 제도 개선만으로 해소할 수 없다. 국민이 조두순 사건을 처리한 사법부를 비판한 진짜 이유는 검찰의 법률 적용 오류와 법원의 관대한 양형 때문이다.
성폭행 피해 아동의 아픔과 독거 노인의 배고픔을 보살필 수 있는 따뜻한 사법부만이 국민의 법 감정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