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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께서 한지 창호를 쓴 이유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11-16 13:14:19
추천수 0
조회수   1,307

제목

선조들께서 한지 창호를 쓴 이유는?

글쓴이

박종일 [가입일자 : 2004-02-14]
내용
요즘은 에너지 절약에 촛점이 맞추어 있다보니

이중창이니 삼중창이니 보온이 잘 되니 안되니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방이 밀폐가 되면 건강상 안 좋다 생각된다



왜 그런가

방안을 보자

함성섬유로 만들어진 의류,침구

플라스틱 전기 전자제품

방바닥 밑의 냄새나는 콘크리트와 모노륨

벽면의 화학잉크로 인쇄된 벽지

등등에서 온갖 해로운 물질이 기화되어 서서히 공기중으로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사람이 밀폐된 방안에서

오래 있다 보면 산소농도는 적어지고..



밀폐공간에서 살면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살고 싶다면



집안의 물건들을

천연재료들로 채우든지



아니면

환기를 자주 시키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방문은

한지로 만들어 공기가 들락거리게 했고

겨울에 두꺼운 이불덥고 자면서

방바닥은 뜨거웠지만



머리와

콧등은 차갑고

호불면 입김이 나올때도 있었고

숭늉은 마루에 놓았었는데

아침되면 얼음이 얼었던 기억이..



현대인의 삶은 어딜가나

건강을 해치는 삶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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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ehorse@empal.com 2009-11-16 13:24:23
답글

제 아이가 시골만 가면 감기들어가지고 옵니다.<br />
이유인 즉슨, 방바닥은 따뜻하지만 밤에 우풍이 쎄서 공기가 차갑기 때문입니다.<br />
<br />
환기가 너무 잘돼서 감기든 우리얘들은 어떻게 ㅠ.ㅠ.....

나순주 2009-11-16 13:26:11
답글

선조들께서 한지 창호를 쓴 이유는 마땅한 재료가 그것밖에 없었기때문입니다. <br />
꿈보다 해몽은 그만~

lgenc@paran.com 2009-11-16 13:27:36
답글

이미 체질이 많이 약해진거지요.. 사실 옛날에 감기 때문에 병원간적 있습니까.. 거의 없지요.. 아니 약도 정말 까라질 정도되야 먹었던것 같습니다. 요즘애들은 약으로 사는거 같아요..

권윤길 2009-11-16 13:27:46
답글

어릴때 외가집 가면 초가지붕에 흙벽이고 바닥만 장판이었던 기억이... 가을이면 볏단 지붕으로 던져 올리고..<br />
장작 때는 온돌의 아랫목은 시커멓게 장판이 타고, 웃목은 냉골 그 자체, 외가집에서 집으로 올라오면 몸의 빈대, 이 잡는다고 몇일 고생, 감기는 필쑤.<br />
유리라는게 있었다면 선조들도 틀림없이 유리를 썼을거 같아요.

정영회 2009-11-16 13:33:18
답글

유리가 있긴 있었는데 궁중에만 있었죠...<br />
한지를 대체할 종이나 빛투과할수있는 자재가 없었죠...가 정답이 아닐까요?<br />
<br />
그당시에 한지외 다른종이도 있었나요?

송태성 2009-11-16 13:46:03
답글

어릴적 한옥에 살았는데.. 감기 무지 걸렸습니다. 양옥으로 이사가서는 감기가 덜 걸리고요..<br />
그닥... 다가오진 않네요...<br />
하지만 한지가 좋다는건 확실한거 같습니다.<br />
시멘트벽보다는 흙벽이 더 좋구요...<br />
한옥을 요즘의 양옥처럼 개량하고 단열을 좀 더 잘 하고.. 그러면서 천연 제품을 사용한다면..<br />
건강에는 매우 좋은 환경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시윤 2009-11-16 14:00:34
답글

한지가 방안의 습기를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 글귀를 본적이 있네요. 천연 가습기라는 뜻.. ㅋ

조윤호 2009-11-16 14:12:44
답글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필요는 있겠지만 과학기술이 없던 시절 '최선의 대안' 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br />
요즘 가습기 만큼의 효과가 있으려면 한지 문을 방마다 1000장씩 달아야 할것 같습니다.

권균 2009-11-16 14:38:39
답글

어느 정도 채광을 하면서 바람을 막으려면 당시로서는 한지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br />
어릴 적 배웠던 "백의민족"도 흰색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면화에서<br />
뽑아낸 원래의 흰색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을 수 밖에 없었고, 염색은 너무나 사치스런 일이었겠지요.

장문희 2009-11-16 14:46:40
답글

정형회님 말씀에 더 공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유리가 한지보다 더 저렴했다면 당연히 유리를 했겠지요. 과연 예전 사람들이 요즘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을까 하는 문제도 사실 좀 의문입니다.

조성원 2009-11-16 18:06:07
답글

조선 전기 양반은 창호에 실크를 발랐습니다.<br />
임진왜란 이후 나라가 가난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종이를 써야 했습니다.<br />
<br />
정답은 가난해서 실크 대신 종이를 바랐을 뿐입니다.

박민규 2009-11-16 18:33:47
답글

실크냐 종이냐를 조선에 국한시킬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저멀리 삼국시대 혹은 그이전 한옥의 일정구조를 이뤘던 가옥형식이 발현한 그시기부터 문풍지의 재료로 무엇을 사용하였는가를 따져봐야겠지요. 그이전에도 비단을 &#50043;다면 조선후기는 가난해서 한것이 맞을테고, 그이전에도 종이를 &#50043;다면 조선전기가 특별히 부유했겠지요. 정답은 가난때문에 종이라고 단정할수없습니다.

nuni1004@hanmail.net 2009-11-16 19:03:14
답글

마땅한 재료가 없고, 또 한지는 빛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마땅한 조명이 없던 당시에는..<br />
<br />
창문 용도로 적합했던거 같구요..

nuni1004@hanmail.net 2009-11-16 19:05:20
답글

그리고 가난때문에 실크대신에 종이를 발랐다 보기보다는, 지금도 실크로 문풍지 바를려면 돈이 많이 들죠...<br />
<br />
양반들이 실크로 발랐던 이유는 호화 사치가 원인이였지 싶고, 당시의 주요 재료는 종이가 으뜸이였지 싶네요...

임상호 2009-11-17 00:22:14
답글

당시에 선택할수 있는 대처 재료가 있었나요??<br />
<br />
한지는 선택된 창호지일 뿐이었습니다.<br />
<br />
흙집에서 살아보세요??<br />
흙집에서 살아보신분들 모조리 내장재을 바꿉니다.<br />
춥고,덥고,칙칙하고,

racehorse@empal.com 2009-11-16 13:24:23
답글

제 아이가 시골만 가면 감기들어가지고 옵니다.<br />
이유인 즉슨, 방바닥은 따뜻하지만 밤에 우풍이 쎄서 공기가 차갑기 때문입니다.<br />
<br />
환기가 너무 잘돼서 감기든 우리얘들은 어떻게 ㅠ.ㅠ.....

나순주 2009-11-16 13:26:11
답글

선조들께서 한지 창호를 쓴 이유는 마땅한 재료가 그것밖에 없었기때문입니다. <br />
꿈보다 해몽은 그만~

lgenc@paran.com 2009-11-16 13:27:36
답글

이미 체질이 많이 약해진거지요.. 사실 옛날에 감기 때문에 병원간적 있습니까.. 거의 없지요.. 아니 약도 정말 까라질 정도되야 먹었던것 같습니다. 요즘애들은 약으로 사는거 같아요..

권윤길 2009-11-16 13:27:46
답글

어릴때 외가집 가면 초가지붕에 흙벽이고 바닥만 장판이었던 기억이... 가을이면 볏단 지붕으로 던져 올리고..<br />
장작 때는 온돌의 아랫목은 시커멓게 장판이 타고, 웃목은 냉골 그 자체, 외가집에서 집으로 올라오면 몸의 빈대, 이 잡는다고 몇일 고생, 감기는 필쑤.<br />
유리라는게 있었다면 선조들도 틀림없이 유리를 썼을거 같아요.

정영회 2009-11-16 13:33:18
답글

유리가 있긴 있었는데 궁중에만 있었죠...<br />
한지를 대체할 종이나 빛투과할수있는 자재가 없었죠...가 정답이 아닐까요?<br />
<br />
그당시에 한지외 다른종이도 있었나요?

송태성 2009-11-16 13:46:03
답글

어릴적 한옥에 살았는데.. 감기 무지 걸렸습니다. 양옥으로 이사가서는 감기가 덜 걸리고요..<br />
그닥... 다가오진 않네요...<br />
하지만 한지가 좋다는건 확실한거 같습니다.<br />
시멘트벽보다는 흙벽이 더 좋구요...<br />
한옥을 요즘의 양옥처럼 개량하고 단열을 좀 더 잘 하고.. 그러면서 천연 제품을 사용한다면..<br />
건강에는 매우 좋은 환경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시윤 2009-11-16 14:00:34
답글

한지가 방안의 습기를 자동적으로 조절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 글귀를 본적이 있네요. 천연 가습기라는 뜻.. ㅋ

조윤호 2009-11-16 14:12:44
답글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필요는 있겠지만 과학기술이 없던 시절 '최선의 대안' 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br />
요즘 가습기 만큼의 효과가 있으려면 한지 문을 방마다 1000장씩 달아야 할것 같습니다.

권균 2009-11-16 14:38:39
답글

어느 정도 채광을 하면서 바람을 막으려면 당시로서는 한지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br />
어릴 적 배웠던 "백의민족"도 흰색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면화에서<br />
뽑아낸 원래의 흰색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을 수 밖에 없었고, 염색은 너무나 사치스런 일이었겠지요.

장문희 2009-11-16 14:46:40
답글

정형회님 말씀에 더 공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 유리가 한지보다 더 저렴했다면 당연히 유리를 했겠지요. 과연 예전 사람들이 요즘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았을까 하는 문제도 사실 좀 의문입니다.

조성원 2009-11-16 18:06:07
답글

조선 전기 양반은 창호에 실크를 발랐습니다.<br />
임진왜란 이후 나라가 가난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종이를 써야 했습니다.<br />
<br />
정답은 가난해서 실크 대신 종이를 바랐을 뿐입니다.

박민규 2009-11-16 18:33:47
답글

실크냐 종이냐를 조선에 국한시킬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저멀리 삼국시대 혹은 그이전 한옥의 일정구조를 이뤘던 가옥형식이 발현한 그시기부터 문풍지의 재료로 무엇을 사용하였는가를 따져봐야겠지요. 그이전에도 비단을 &#50043;다면 조선후기는 가난해서 한것이 맞을테고, 그이전에도 종이를 &#50043;다면 조선전기가 특별히 부유했겠지요. 정답은 가난때문에 종이라고 단정할수없습니다.

nuni1004@hanmail.net 2009-11-16 19:03:14
답글

마땅한 재료가 없고, 또 한지는 빛을 통과시키기 때문에, 마땅한 조명이 없던 당시에는..<br />
<br />
창문 용도로 적합했던거 같구요..

nuni1004@hanmail.net 2009-11-16 19:05:20
답글

그리고 가난때문에 실크대신에 종이를 발랐다 보기보다는, 지금도 실크로 문풍지 바를려면 돈이 많이 들죠...<br />
<br />
양반들이 실크로 발랐던 이유는 호화 사치가 원인이였지 싶고, 당시의 주요 재료는 종이가 으뜸이였지 싶네요...

임상호 2009-11-17 00:22:14
답글

당시에 선택할수 있는 대처 재료가 있었나요??<br />
<br />
한지는 선택된 창호지일 뿐이었습니다.<br />
<br />
흙집에서 살아보세요??<br />
흙집에서 살아보신분들 모조리 내장재을 바꿉니다.<br />
춥고,덥고,칙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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