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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디오를 통해 알게 된 분이 저희 집에 왔다가 저희집 시스템을 보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부끄럽지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 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 일요일 오전, 문자가 옵니다. '뭐해요?' 음원 정리하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드렸더니 낮술이나 한 잔 하자는 문자가 옵니다. 애비 애미도 못 알아본다는 그 낮술. 늘 주님과 함께 하고픈 酒리스쳔으로 주님을 모시는 일에 게을리 한다면 그건 교인의 자세가 아니죠. 더구나 그 날은 일요일. 남들은 새벽부터 교회다 성당이다 나가는 그런 성스러운 날에 주님을 모시자는 문자를 어찌 씹을 수 있겠습니까? 당장 옷을 갈아입고 출발했습니다.
문자를 주신 분은 저와 오디오를 통해 인연을 맺게되어 지금은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된 분입니다. 제 Crown Reference 2와 IC-150A 앰프를 그 분께 분양받은 것이죠. 고맙게도 덕수궁 앞까지 저를 태우러 와주셔서 편히 갔습니다. 오디오 경력은 오래되지 않으셨지만 2년 여의 기간동안 수 많은 바꿈질을 통해 내공을 단련해오신 분으로 요즘에도 이 분 댁에 갈 때 마다 뭔가 하나는 바뀌어 있는 그런 분이시죠. 부드러운 저역을 원하셔서 Harbeth 스피커를 권해드리고 그에 맞는 앰프로 EL34관이나 6L6관을 쓰는 앰프를 찾아보시라고 했더니 사진 속의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낯익은 JBL 4344에는 WinSound Reference 미드버전, CDP는 태광 TCD-1, 그리고 Harbeth Compact에는 Dynaco ST-70 + Dynaco PAS-2 또는 WinSound 풍악(오리지널 버전) + CEC3300r CDP. 누군가에는 꿈의 시스템이 될 수도 있는 조합이고 어떤 이에게는 '구려' 한 마디로 정리될 수도 있는 시스템일 텐데요. 일단 JBL 4344의 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저는 이 앰프의 스펙을 전혀 모릅니다(홈페이지도 없고 다음 까페만 있는데 그것 마저도 비공개로 해놨더군요). 그렇기에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텐데요. 일단 앰프의 소리는 따뜻한 계열입니다. 파워나 프리 중 하나는 진공관 같다는 느낌이 들고, 만약 파워 앰프가 진공관이라면 KT88관 계열의 진공관을 썼을 것 같다는 느낌이더군요. 따뜻하지만 플랫한 소리. 그 느낌이었습니다. 출력은 대략 100W 언저리에 왔다갔다 한다는 느낌이었고, 출력에 비해 댐핑 팩터는 좀 모자라지 않나 하는 느낌이었네요. Rush의 '2112'를 들어보니 그런 느낌이 더 강하더군요. 앰프의 생김새를 보아하니 모노모노 버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 분 께서 딱딱한 저역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그냥 모노 한 덩어리를 스테레오로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귀에는 약간 퍼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딱딱한 저역을 듣지 않기 위해 선택했다는 느낌이요.
그 다음 곡으로는 정말 징그럽도록 많이들은 레퍼런스 음원, Dave Brubeck Quartet의 'Take Five' 입니다. 이 곡은 JBL 4344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곡입니다. 원래는 Paul Desmond가 작곡했지만 Dave Brubeck Quartet이 자신들의 'Time Out' 앨범에 수록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곡이죠. 한국에서도 mook라는 의류 브랜드의 광고에 삽입되면서 인기를 끌었던 곡입니다. Dave Brubeck의 피아노와 Paul Desmond의 알토 섹소폰, 그리고 Joe Morello의 심벌에 Eugene Wright의 든든한 베이스가 조합을 이루면서 쿨 재즈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명반 대열에 오른 앨범인데요. JBL 4344로 듣는 'Time Out' 앨범은, 뭐랄까요? 실제 Dave Brubeck Quartet이 제 앞에서 연주를 해 준다고 하더라도 앨범으로 듣는 것이 훨씬 더 라이브한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있게 표현해 줍니다. 마음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Metallica도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Sad But True라고... 재즈에는 JBL 4343보다 4344가 한 수 위 입니다. 눈 앞에 맻히는 음상이 두 뼘 정도는 아래로 내려오고 그렇기에 더 묵직한 소리를 내 준다는 느낌이 참 좋더군요.
원활한 음악감상을 위해 주안상을 내 오십니다. 먹다남은 맥주와 소주. 그리고 천도 복숭아. 맥주병 안에 빨대(스트로우)가 들어있던 것 빼고는 나름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습니다(형님! 빨대로 술드시는 분이셨군요). 좋은 음악과 좋은 소리, 거기에 술과 빗소리까지 겹쳐지는데 더 이상 무얼 바라겠습니까? 분위기가 점점 고조됩니다. Santana의 앨범을 한 장 올려봅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제 입에서 터저나온 한 마디 '이 양반은 늙지도 않아'.
며칠 전 제사를 지내셨는지 전을 부쳐옵니다. '몸에도 안 좋은 술, 빨리 없애 버려야지' 하는 생각에 그 집에 있는 술을 모조리 마셔버립니다. 저는 다른 뜻 없습니다. 다만, 형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라고 제가 대신 술을 마신 것 뿐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의 메인 이벤트. Harbeth Compact의 등장입니다.
이 분의 오디오 생활 특징 중 하나가 정말 깨끗한 물건을 잘도 구해 오십니다. Harbeth도 Harbeth지만 저는 그렇게 깨끗한 Dynaco PAS-2를 본 적이 없습니다. 뭐 당연하다는 듯이 바이올린 연주 앨범부터 올려봅니다. 역시 Harbeth다운 소리를 내 줍니다. 그렇다면 Harbeth다운 소리란게 뭘까요?
사실 Harbeth가 MBL이나 Goldmund, Cello, Bumester 등의 초고가 하이 엔드 시스템에서의 현소리를 내 주는 스피커는 아닙니다. 그런 시스템의 특징은 부드러우면서도 차갑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활에 묻은 송진이 떨어지는 장면이 보일듯한 해상도를 보여줍니다. 이런 시스템은 현소리도 현소리지만 대편성에서 왜 자신들의 몸값이 억대인가를 보여주죠. 반면에 Harbeth, 특히 Compact 시리즈는 그런 소리를 내 주는 스피커는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2way의 태생적 한계는 분명히 보이는 스피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arbeth 스피커에는 억대의 시스템에서도 들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바로 '따뜻함' 입니다. 배우로 비유하자면 Harbeth는 Megan Fox 같은 배우는 절대 아닙니다. 그런 감동적인 몸매도, 사람을 홀리게하는 눈빛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Megan Fox가 흉내내려고 해도 아직까지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것이 있죠. Meryl Streep이나 Jodie Foster의 아우라가 바로 그것이죠. 한국 배우로 비유하자면 초고가의 하이 엔드 시스템이 김태희나 이나영 스타일이라면 Harbeth는 김해숙 아줌마 정도라면 적절한 비유가 될까요?
또 한 가지. 이 시스템에서 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Dynaco의 PAS-2 프리 앰프였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Dynaco 파워와 Dynaco 프리는 상성이 좋지 않다고 알고 계시는데요.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분 중에서 제대로된 Dynaco의 조합을 들어보신 분이 몇 분이나 되실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Dynaco라는 회사의 제품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내구성인데요. Dynaco 제품은 내구성이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출시된 지 오래된 제품들은 상태가 거의 좋지 못합니다. 'Dynaco ST-70은 1959년도에 출시되었는데 아직도 쌩쌩한 것이 많은데?' 라고 반문하실 분이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Dynaco ST-70은 1959년도에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1993년까지 출시되었습니다. 또한 워낙 많은 제품이 팔렸기에 지금도 상태가 좋은 Dynaco ST-70을 구할 수 있는 겁니다. 각설하고... Dynaco ST-70과 Dynaco PAS-2의 조합은 아무리 돈을 많이 쓴다고 하더라도 150만원이면 차고 넘칠 정도로 돈을 많이 쓰는 것이고 그 아래로 조합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 대에서는 최강의 가격대비 성능비를 내 주는 조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이번에는 풍악에 물려서 들어봤습니다. 풍악에 사용된 6L6관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진공관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가락을 들이기 전까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진공관 앰프는 McIntosh MC40 이었습니다. 소리의 느낌은... 소리결은 Dynaco 조합보다 훨씬 화사합니다. '소리가 예쁘다' 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소리죠. 대신 밀어주는 힘은 Dynaco 보다는 덜한 것 같습니다. ST-70이라는 앰프가 워낙에 힘이 좋은 앰프라 그런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ST-70에 비해서는 저역이 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총평은, 이 집의 시스템은 오디오에 입문하신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 또는 이제 막 오디오에 입문하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하나의 레퍼런스 모델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녀본 오디오파일들의 집들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집들이 한 두 집이 아닙니다. 바로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예를 들어 누가 'ATC SCM 20을 들으면서 오르가즘을 느꼈습니다' 라고 쓴 글을 보신 분들이 '그게 그렇게 좋은 스피커야?' 라며 지금도 와싸다나 소리장터를 헤매고 계십니다. 그게 그렇게 좋은 소리일까요? 음색의 취향을 떠나서 좋은 스피커 임에는 분명합니다. 단, 30평 쯤 되는 공간에서 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힘좋은 앰프를 물려놓으면 뭐할까요? 볼륨을 7시 까지도 올리지 못하고 개미소리 만한 소리로 음악을 듣는다면 무슨 오르가즘이고 음악의 감동이고가 있을까요? 차라리 20만원 쯤 하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훨씬 큰 감동을 줄 겁니다. 소리를 조금만 크게 해도 '아랫집에서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음악을 듣는데 그게 귀로 들리는지 코로 들리는지 누가 압니까?
사진속의 집은 60평대의 아파트입니다. 더구나 음악 감상을 위해 로비층 바로 위층, 일반적인 아파트로 생각하자면 1층인 집입니다. 그 정도 공간은 되어야 JBL 4344도 음악 듣는 것 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사실 신기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지만) 적어도 제 귀에는 JBL 4344보다 Harbeth Compact의 소리가 훨씬 좋게 들렸습니다. 크기가 채 1/4도 안되는 스피커가 말이죠. 가격 역시 마찬가지죠. Dynaco ST-70과 PAS-2, Harbeth Compact에 그럭저럭 왠만한 CDP를 물려도 JBL 4344의 가격도 안 됩니다.
여하튼 500만원 이하로 시스템을 꾸미고 싶으신 분들은 이 집이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CDP를 분리형으로 간다면 CD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고, PC-Fi도 할 수 있으니 그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가정 환경에서 가장 좋은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래봤자 500만원 이하입니다.
제가 주변 분들에게 늘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아파트에서는 아무리 돈지랄을 해도 1,000만원 안쪽이면 원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요. 그 돈 보다 더 큰 돈을 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돈지랄이 되고요. 물론 25평짜리 아파트 문칸방에 수 천 만원어치 오디오를 쟁여놓고, 자신이 좋다고 쓴 프리 앰프는 두 대씩 쟁여놓으면서 '아 좋다' 하며 계속 책을 써대는 사람도 있지만 제 생각에 그건 사업이지 취미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