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오랫만일세
여기 앉아 우리 와인 한잔할까
불이 너무 밝지않아
너무 밝으면 좀 부끄럽네
약간만 더 어둡게....
뭐가 부끄럽냐고?
그냥 살아온 세월이...
음악을 한곡 들을까?
쳇 베이커의 "마이 파니 발렌타인이 좋겠지?"
안개 속에서 들리는 트럼펫처럼 내 마음을 이리 저리 정처없이
끌고 가는 구만
젊은 날의 회한을 뒤로한채 말년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어깨 힘을 쫙
빼게한다네
핸드폰은 왜 자꾸 들여다 보지?
어디 연락 올 때가 있나?
없다구? 그렇다면 자네 외로운 거야
사랑은 구걸하는 게 아니래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돼
자 ,한잔 더 할까?
이번엔 찌고이네르 바이젠을 들어봄세
바이올린의 애절함이 이 가을밤에 잘 어울릴 것같애
풀벌레 소리도 같이 들리니 참 가슴에 스며 드는군
원래 아름다운 건 이리도 여리고 약한 것이 아닐까?
아침 이슬도 한순간찬란히 빛나다 사라지잖아?
삶의 무게에 허덕인다고들 하지만
내가 볼 때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랄까
몇십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옆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 일찍 죽음을 알아 버려
삶의 허무함에 이제껏 가슴 한 구석 구멍이 뚫린 채로
헛헛하게 살아온 인생이 벌써 반 백..
젊었을 땐 희망에 속아 어느덧 세월이 흘러 버렸네
이제 나이 드니 희망에 속지않는 현명함을 얻었지..
너무 삭막해지지않느냐고?
아니야 이제야 삶이 무언지 조금 알 것같아
이 눈가에 맺힌 물기는 ...
눈물은 아니야 그냥 외인 한잔에 오른 취기겠지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지
친구 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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