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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여섯 망명객 “일왕 초청 안될 말” 카랑카랑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10-05 18:17:00
추천수 5
조회수   906

제목

여든여섯 망명객 “일왕 초청 안될 말” 카랑카랑

글쓴이

심수근 [가입일자 : 2002-10-27]
내용
Related Link: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0086.html

작가 황석영이 만난 정경모 선생..

동영상도 있으니 한번 보시길...





<한겨레>가 지난해 창간 20돌 기념 기획으로 시작한 원로들의 회고록 ‘길을 찾아서’ 다섯번째 주인공인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86) 선생의 이야기가 109회로 1부를 끝냈다. 2부 연재는 필자의 건강 사정으로 11월부터 재개할 예정이다.

지난 5월4일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란 제목으로 연재되기 시작한 그의 인생담은 그 어느때보다도 뜨거운 독자들의 호응과 민감한 반향을 일으켜왔다.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와 함께 평양을 다녀온 ‘의문의 재일동포’로만 국내에 알려졌던 그는 40년 가까이 일본땅에서 홀로 펜 하나로 싸워온 민주·통일운동 지사로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의 사슬에 걸려 ‘자의반 타의반’ 귀국을 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 국내 독자들과 직접 만날 수 없는 형편이다. ‘109회’ 집필을 끝낸 지난달 중순, <하니티브이> 동영상팀과 함께 일본 요코하마 히요시의 자택을 방문해 그의 근황과 감회, 앞으로 구상 등을 육성으로 들어봤다. 특히 북한 방문·<장길산> 일어판 번역 등으로 25년 가까이 각별한 친분을 쌓아온 작가 황석영씨가 1박2일 동반취재에 나서 정 선생에 대한 <한겨레>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황석영 안녕하셨어요, 선생님. ‘길을 찾아서’에서 유년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선생님과 저의 기이한 인연을 새삼 느꼈습니다. 저도 영등포역이며 여의도샛강 주변에서 놀며 자랐잖아요. 선친 정인환 장로께서 만드셨다는 영등포교회의 흥화유치원을 저도 다녔습니다. 또 당산동에 있는 이백채 마을의 영단주택에 살았는데 그곳도 선친께서 지으셨더군요.



정경모 그 양말산(羊馬山·지금의 국회의사당 터) 꼭대기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고 거길 올라가면, 강 건너로 밤섬이 보였잖아? 멀리 삼각산 연봉, 북악산, 뒤로는 관악산도 보였었지. 양말산, 죽기 전에 가 볼 수 있을까 했었는데…, 다 없어졌을 거야. 내 노래 한 가락 해볼까?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려~’



황- (짝짝짝) 참, 형제로는 지난해 작고한 남동생과 미국에 사시는 여동생, 그러니까 장남이시죠? 장남이 조국을 등지고 떠돌아다니셨으니….



일왕 남쪽만 가는건 ‘정치적’

한반도 분단 해소 도움 안돼





황 -그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정 -판문점에서 미군과 북한군이 종종 설전을 벌이는데, 양쪽 주장을 들어보면 말이야,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미국 사람들 주장이 어거지야. 그렇지만 내가 그걸 드러내놓고 표현한 건 아니야. 다만 냄새를 풍겼겠지. 그러다 어느날 호출이 왔어. 추방 통보를 받았지.



황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정- 기억이 안 나 확실하게, 내가 그냥 사람들하고 하는 이야기가 흘러들어간 건지…. 해방 직전 귀국해서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간 게 47년, 에머리대 대학원을 떠난 건 50년, 56년 미군사령부에서 추방을 당한 뒤 미국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어. 미국에 갈 시도는 여러번 했는데, 그때마다 거부당했지. 아무튼 유학생치고는 제일 먼저 갔던 미국에서 추방을 당하고, 나중엔 내 나라 땅에서도 추방을 당해서 40년 동안 못 가고 있어 이렇게.



황- 이른바 민주화정부 때에는 귀국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아직 그 정도로 민주화가 된 건 아닌 거죠?



정- 지금까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라는 건 ‘케넌 체제’ 반대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





미군 통역관으로 판문점 파견

미 ‘억지주장’ 비꼬다 추방당해





황- 이번에 저도 처음 들었는데, ‘케넌 체제’ ‘케넌 설계도’라는 것이 뭔가요?



정 -일제 때 우리가 식민지가 된 건 미국이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조선에 손을 안 댈 테니까 일본 니네 맘대로 하라 해서잖아. 그런데도 조선 사람들은 적이 일본만인 줄 알았지 뒤에 있는 미국은 몰랐어. 조지 케넌이란 미국 외교관이 47년에 기획한 ‘설계도’(87년 발견)를 보면 조선반도와 만주를 다시 일본에 맡기자는 발상이야. 내가 그런 거를 알지 못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알아버려서 오늘날 이렇게 된 거야.



황- 망명한 이후 내내 한국의 민주화 연대운동을 하시고, 글도 쓰시고 서숙을 열어서 <씨알의 힘> 잡지도 내시고 사실상 혼자서 줄기차게 언론활동을 하셨는데, 기본적으로 몽양(여운형) 노선을 따르시게 된 계기나 사상의 진전 같은 배경이 있으셨겠죠?









» 정경모(오른쪽) 선생은 방문 이튿날 작가 황석영(왼쪽)씨와 취재진을 집 근처 히요시언덕공원으로 이끌어 도시락을 함께 들며 소풍 온 듯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정- 그래 그 얘기를 하자면 말이야,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현재 한통련의 전신)이나 김대중 선생과 인연을 빼놓을 수가 없지. 72년에 내 첫번째 책 <어느 한국인의 감회>를 아사히신문사에서 출간한 것을 계기로 배동호씨를 만나서 막 출범하려던 한민통을 알게 됐잖아. 또 마침 그때 김대중 선생이 유신독재를 피해 건너와서 두 망명객이 만났는데, 처음엔 함께 일을 하려고 했지만 ‘반박정희 투쟁방법’을 둘러싸고 언쟁을 했어. 그 뒤로 김 선생이 나를 ‘무정부주의자’라고 했다는 얘기가 돌았고. 그러다가 김 선생 납치사건이 터진 거야.



황- 6·15 선언을 통해서 남북관계가 큰 진전을 보였는데,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만약 그가 없었다면 근대화가 제대로 됐겠는가, 그런 (박정희 개발독재에 대한) 견제가 없었다면 한국이 지금과 같은 민주화를 이뤘겠느냐’ 하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 내가 여러번 말했듯이, 그 ‘6·15 선언’의 모태가 바로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이 만나서 합의한 ‘4·2 남북공동선언’이라구.



(첫날 만나자마자 거실에 앉아 2시간 넘게 이뤄진 두 사람의 대화는 이튿날 집 근처 공원과 식탁에서 계속 이어졌다.)



황 -(민주당의 하토야마 총리 취임 소식을 전한 9월16일치 <아사히신문>을 보며) 사실 한-일 관계를 비롯해 한반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청산이 아직 이뤄지지 못했잖습니까. 북한하고는 더더욱 그렇죠. 54년 만에 일본 정권이 바뀌었으니…정신대문제를 비롯해서 전후청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 내년이 한일합방 100주년이라고 벌써 이명박 정권이 일본 왕을 초청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안 될 말이야. 일왕이 남쪽에만 가는 건 짙은 정치적 색깔이 있거든. 그 ‘통석지념’(痛惜之念)이란 말에는 죄과를 뉘우친다는 뜻이 없다구. 노태우의 일본 방문 때 아키히토가 한 말은, ‘조선은 자기네가 먹어야 하는 땅이니까…노한테 북쪽을 먹어라’ 명령하는 뜻이야.





한국을 다시 일본에 맡기려는

케넌체제 간파한뒤 인생 급변





황 -지난해인가? 몇몇 일본 지식인들 만났을 때 ‘일왕이 명성황후 묘에 가서 참배하면 어떻겠느냐’ 물은 적이 있어요. 상징적이긴 하지만…실질적으로 한반도 분단 해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답했죠.



정 -하토야마 이후 북쪽과 관계? 자민당 체제에서는 강경 일변도였지만 민주당 정권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을 거야.



황 -야박하게 말해서, 일본은 지금까지 미국에 대해 자주적 발언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북-미 관계가 변하면 즉시 따라갈 거라고 봅니다.



정- 북쪽도 일본과의 관계는 염두에도 없을 거야. 남쪽에서도 3김 시대 청산과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맞았으니 이 기회를 살리려면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바꿔야 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죽었으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하면 안 되지, 그 씨가 있는데, 역사의 바퀴를 그렇게 쉽사리 거꾸로 돌릴 수는 절대로 없을 거야.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의 피눈물이 땅속에 스며 있는데 그 힘을 어떻게 무시하나? 크게 보면 케넌 설계도가 청산이 되느냐의 문제인데, 과거 청산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청산해야 해. 평화협정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클린턴 부인이 지금 국무장관이고 클린턴 자신이 평양에 갔다 왔으니 우연만은 아니라고 봐. 오바마 정부가 클린턴 말기 때로 돌아간다면, 정전협정이 아니라 평화협정으로 간다면, 냉전이 정말로 끝나는 상징적인 사건이 이뤄지는 것이지.



황 -선생님, 모쪼록 강건하셔서 집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정 -내년에 이 글 모아서 책 나오면 잔치 할 테니 꼭들 건너오라구.



요코하마/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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