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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잔혹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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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2 09: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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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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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잔혹사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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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가입일자 : 2000-12-16]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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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만큼 희귀 보석은 아니며 사파이어나 에메랄드 등 다른 전통적인 보석보다 생산량이 오히려 많다는 사실,
드비어스 그룹(De Beers Group)이 다이아몬드 원석 공급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제적 독점기업으로 다이아몬드 가격을 조작하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Diamonds are forever.)」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워 다이아몬드가 마치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것인 양 꾸며서 결혼 예물 시장을 새로 창출했다는 사실,
다이아몬드는 경도가 가장 높지만 큰 결정체이므로 결에 따라 쪼개지며 다이아몬드 원석을 보석으로 세공할 때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고 레이저 가공 등 현대식 기술을 도입하기 전까지는 큼직한 원석을 다루다가 결정 방향을 잘못 건드려서 두 동강 나기도 했다는 것,
인도와 브라질 외에 남아프리카가 주요 생산지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어느 다이아몬드 광산에서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아낸 광부한테 단순히 원석이 몇 개인지만 세어서 보상하다가 귀한 큰 원석을 일부러 쪼개서 올리는 사례도 있다는 것도 알고 나서 원석 등급에 따라 셈을 달리 해주는 방법으로 바꾼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다이아몬드 광산은 노천 광산이며 사금 채취처럼 삽과 체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찾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고 마치 문화재 발굴하듯 건조한 흙먼지 날리는 곳에서 빗자루로 쓸면서 원석을 찾기도 한다는 것,
금은처럼 다이아몬드는 산업용으로도 수요가 많은데 인공적으로 만드는 합성 다이아몬드 제조 기술로 공업용 다이아몬드 수요를 상당 부분 충족시키고 있으며 합성 다이아몬드는 공기 중 질소가 불순물로 섞여 들어가 누런빛을 띠기 쉽다는 것,
기타 등등 제가 아는 다이아몬드 상식 몇 가지입니다.
하지만 시에라리온(Sierra Leone) 등 서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다이아몬드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단편적인 것 말고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는데, 「다이아몬드 잔혹사」라는 책 한 권이 뒤늦게나마 가슴 서늘하게 해주었습니다.
「다이아몬드 잔혹사 (Blood Diamonds)」는 저널리스트 그레그 캠벨이 사진기자 크리스 혼드로스와 함께 UN 허가를 받고 직접 시에라리온 내전 현장에서 수년간 취재한 1991년 내전 발발부터 2002년 종전까지 다이아몬드 전쟁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책은 시에라리온 반군단체, RUF(혁명연합전선 ; Revolutionary United Front)가 얼마나 잔인한지 RUF가 무자비하게 휘두른 도끼로 두 손을 잃은 이스마엘 달라미의 증언으로 시작합니다. RUF는 방해가 된다면 누구든지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었으며 집단강간, 고문, 처형, 약탈 등으로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다이아몬드 매장지 마을 주민을 내쫓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누구는 다이아몬드를 손, 목, 귀에 걸리는 보석으로 치장하지만, 지구 반대쪽 다른 누구는 다이아몬드 광산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거나 손발이 도끼로 잘라져 나가는 불구가 되기도 한다는 기가 막힌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RUF가 피로 차지한 다이아몬드는 이웃나라 라이베리아 등을 거쳐 원산지를 위장하고 밀수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그 더러운 돈으로 무기를 사들이는 등 다이아몬드 커넥션을 밝히는 것은 물론, 영국 식민지였던 시에라리온 역사를 미국 독립 전쟁 등과 연관시켜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사를 함께 다룹니다.
다이아몬드 잔혹사 뿌리가 되는 세실 로즈라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설립한 드비어스 정체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나온 무자비한 살인자 손을 거친 다이아몬드가 섞여 들어가도 사실상 가려낼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면서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애써 축소하려는 모습 등을 써 나갑니다.
정글에서 수년간 싸우던 RUF 병사와 카마조 전사가 무장해제 후 어떻게 별 탈 없이 평화의 마을에서 같이 살 수 있는지 인간적 의문이 인상 깊었는데, "사람은 배가 고파지면 전쟁이 그리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마련이죠."라는 결론을 꺼내면서 오랜 내전으로 지칠 대로 지친 병사가 명분 없는 전쟁인데도 정글에서 고생하며 지휘관 이익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는 것과 정상적인 생활을 해볼 기회를 잡는 것 중 어느 쪽이 나은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 만큼 피로감이 무거운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RUF한테 팔다리를 잘린 사람들이 아프리카 뜨거운 날씨에도 몇 시간이나 줄을 서면서 투표를 하는 모습도 가벼운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RUF 반대 세력에게 투표하려고 양팔이 잘린 불구인데도 결국 발가락으로 어렵게 투표했습니다. 유권자 중 80%가 투표했고, 그중 상당수는 그렇게 불구였습니다. 사람 정신력이 얼마나 강인한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미국 기자가 다룬 내용인 만큼 제국주의 관점일 거라는 선입견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피해자 증언에 주로 의존한 취재가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무색하게 만들며, 미국 기자라는 신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참혹한 현실 앞에서 고민하고 번뇌하는 모습이 책 곳곳에 나타납니다. 한편으로는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제국주의 정당성을 넌지시 비추기도 하고, 미국이 곧 정의라는 할리우드식 논리를 펴면서 9.11 테러와 아프리카 분쟁 지역 다이아몬드 연관성을 강조하는 등 한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다이아몬드 잔혹사 (Blood Diamonds)」는 인간이 더러운 탐욕 때문에 얼마나 추잡스럽고 잔인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며, 특정 지역 분쟁이 지구 한 곳에서만 끝나지 않고 세계 평화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도 함께 내놓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국제 관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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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다이아몬드 (The Blood Diamond)」라는 제목으로 나온 영화도 있는데, 허구를 그린 영화보다는 현실을 묘사한 책이 아무래도 훨씬 깊이 있게 다루기 마련입니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참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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