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매우 어렸을 때 저희 집에 머물렀던 사촌형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공부하려고 그랬던 거죠.
아버지 쪽의 친척이었지만 어머니를 그렇게 잘 따랐고
형은 나중에 사회인이 돼서도 저희 집에 자주 왔습니다.
특히 저를 예뻐했죠.
초등학교 시절 저의 관심사는 야구와 우표 수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형이 제 꿈을 이루게해줬습니다.
제가 가진 글러브, 배트 그리고 포수 마스크 등은 모두 형이 사줬죠.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의 스포츠는 오로지 '야구'입니다.
그리고 당시 항공 승무원이었던 형이 전 세계의 우표를 저에게 가져다 줬습니다.
형 덕에 모은 우표로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스타였습니다.
희귀한 것은 다 모았으니까요.
중학교 올라가서 처음 받은 선물도 형이 준 '워크맨'이었습니다.
기억나네요. 형이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줬는데...
'유리스믹스'였죠.
성격도 그렇고 마음씨가 워낙 좋은 사람이라 부모님도 형을 항상 환대했으며
무뚝뚝하신 아버지조차 당신을 잘 따르는 형을 좋아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직 아버지께 그렇게 살갑게 대하던 친척을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 같네요. 형처럼요...
형이 올 때면 함께 동네 공터에 나가 야구를 했습니다.
캐치볼도 하고 형을 배팅볼을 제가 받아내며 연습을 했죠.
모르는 야구 규칙은 형이 다 알려주고요.
그때 동네 아이들 다 모였습니다.
야구 배우려고요.
형은 태권도장을 운영했습니다.
잘 생기고 체격도 좋은데다가 선수생활까지 했었죠.
그리고 항공기 보안승무원도 함께 겸했죠.
대한항공에서요.
그러던 형이 1997년 괌에서 대한항공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도 원래 다른 사람이 그 비행기에 탈 차례였는데
그 사람 부탁으로 형이 바꿔주어 거기에 타셨던 거죠...
허망했습니다.
너무 놀라서 처음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장에선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봤습니다.
어머니와 저도 부둥켜 잡고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직도 형이 생각납니다.
어린 시절 제 우상이었던 형...
너무나도 갑자기 세상을 떠난 형...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형을 만나고 싶네요.
저에게 배트 잡는 법과 공 잘 잡는 법을 알려주던 형이 그립습니다.
이제 초등학생 아들을 가진 아빠지만
아직도 형만 생각하면 저는 꼬맹이네요.
아들 녀석에게 야구를 가르쳐 줄 때마다 형이 떠오릅니다.
형...
언젠가 거기서 다시 만나면
야구 해요...
형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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