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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민비] 마로알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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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15:3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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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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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민비] 마로알기 |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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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철 [가입일자 : ]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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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민비] 마로알기
민비를 어떻게 살해했는가... 퍼온 글
명성황후 [여우사냥]
일본에서 " 에조 보고서 " 라는, 편지 형식으로 된 정식 보고서가 있습니다..
여기서 에조라는 사람이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했네요..
넘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먼저 낭인들이 20명 정도 궁에 쳐들어와서 고종을 무릎 꿇게 만들고 이를 말리는 세자의 상투를 잡아 올려서 벽에다 던져 버리고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명성황후를 발견하자 옆구리 두 쪽과 배에 칼을 꽂은 후 시녀들의 가슴을 다 도려내고 명성황후의 아랫도리를 벗겼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20명이 강 ㄱ간을 했다. 살아있을 때도 하고 한 6명 째에 죽어있엇는데도 계속 했다.
시체에 하는게 시간이고 살아있는 거에 하는게 윤간인데 명성황후는 시간과 윤간을 다 당했다.
그리고 그것을 뜯어 말리는 충신의 사지를 다 잘라버렸다. (에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후 너덜너덜해진 명성황후의 시체에 얼굴부터 발 끝까지 차례대로 한 명씩 칼로 쑤셨다. 죽은 후에도..(이건 에조도 했다.)
그리고 여자로써 가슴도 도려내는 큰 수치를 당했다.
그것을 길거리 서민들이 다 보고있는데서 시행했다.
그 다음에 명성황후 시체에 기름 붓고 불로 활활태웠다.
비참합니다.. 어떻게 한 나라의 국모에게 이런 짓을 할수있을지...정말.......
그리고 이들 낭인들 중에는...조선 군인들도 있었는데
조선 군인들도 일본놈들과 역모에 가담했으며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이 그 중의 한명이며...(우범선은 구한말 조선 군인)
민비 시해 이후...일본으로 도망가서
일본여자와 낳은 아들이 우장춘이며..우장춘을 낳고 얼마 안가서 한국인 자객에게 피살
대표적인 매국노 구연수도 그 중의 한명이며
민비 시해 이후...역시 일본으로 도망갔다가
장인 송병준의 도움으로 한일 합방 이후...조선으로 금의환향하여
조선 총독부 최고의 간부직을 역임했으며...조선인으로서 최고 지위에 오른 자가
바로 구연수 이다
구연수의 장인은 매국노 1순위 송병준이며
구연수의 친아들은 한국은행 초대 총재 구용서 이다
구용서도 역시 일제시대 친일파이나...이승만이 해방후 친일파를 널리 등용할 때
구용서를 초대 한국은행 총재, 초대 산업은행 총재, 상공부 장관을 역임시켰다
바로...여기에서 우리나라 금융계에 친일파가 뿌리 깊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렇기 때문에...김구 10만원권이 타부시되고 있으며
광개토왕을 10만원권 후보에 넣는 것을 한국은행은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광개토왕도 10만원권 후보에 올릴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으나
한국은행 관계자는...중국과 외교 마찰이 우려되므로 광개토왕은 곤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위안부에서 돌아오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월27일, 칼을 찬 군인이 "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하고 물었다. 그 때 손들지 않은 15명의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다. 발가벗긴 여성을 군인이 머리와 발을 잡아 못박은 판자위에 굴렸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판에 너덜거렸다. 그때의 기분을 "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진 것 같았다"고 정씨는 표현했다. 그 다음 군인들은 못판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정씨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 위안부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 운다"고 했다.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다. 정씨는 그때 피살된 여성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한사람씩 짚어나갔다. 중도에서 헛갈리면 다시 처음부터 세어나갔는데 아무리 해도 한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몹시 서운해 했다. 그 수비대의 대대장은 " 니시하라 ".중대장은 "야마모토", 소대장은 " 가네야마" 였으며 위안소 감독은 조선인 '박'이었다고 했다. 매독감염을 숨겼다고 달군 철봉을 자궁에........
1933년 12월 1일에는 한 여성이 장교가 철봉을 자궁에 꽂아 죽어버렸다. 다음해 2월4일에는 매독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피살되었다.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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