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괜시리 잿밥에 눈이 먼 땡중취급을 받을까 싶어서 그냥 패스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입이
아니, 손가락이 근질거려서 한줄 남기고 갑니다. 삼계탕 선물같은건 안주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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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저희집은 마당이 무척 너른 집이었습니다. 부산 영도에서 자리를 잡으신 아버지가
집을 보러다니다 '한 군데만 더, 한 군데만 더...' 하시다가 청학동 산등성이 거의 꼭대기 집까지
올라오셨고, 도로 내려가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낙찰을 본 집이었답니다.
암튼 너른 마당에 이런저런 채마밭도 가꾸고, 오리사육을 제법 크게 하시던 외갓집 영향 때문인지
축사도 그럴 듯하게 하나 지어서 돼지도 키우고 어쩌고 하시던 게 나중엔 결국 닭 열댓 마리로
쪼그라들었지요.
아마 초가을 정도 됐던가 봅니다.
어디서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다가, 꼬리에 실을 묶어 놀던 것도 시시해져버린 차에 문득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들을 둘러보러 갔지요. 아직도 날개를 파르르거리는 잠자리로 약을 좀 올려봐야
겠다는 생각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웬걸, 닭장 문을 열고 잠자리를 들여보낸 순간, 암탉 한 놈이 번개처럼 잠자리를
낚아채더니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꼴딱'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잠자리를 묶었던
기다란 실이 절반이나 딸려들어간거죠. 부리 밖으로 길게 드리워진 실을 삼키지도 못하고 내뱉지도
못한 채로 고통스럽게 버둥거리던 그 닭은 잠시후 그냥 폭 꼬꾸라져 버리더군요. 당황한
제가 어찌 손써볼 새도 없이 말입니다.
멀쩡하던 닭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황담함 속에서 저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고, 아마도
완전범죄를 위해 목에 걸려있던 실도 뽑아버렸나 봅니다.
암튼, 덕분에 우리 식구는 그날 저녁 오랜만에 닭백숙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저녁내도록
'멀쩡하던 게 왜 죽었지?' '왜 죽었지?'를 되내이며 고개를 갸웃거리시던 엄마의 걱정스런
표정이 아득한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고백이라도 할껄... 엄마,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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