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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불안 3부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6-20 20: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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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501

제목

[연재소설] 불안 3부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작가들은 글을 어렵게 쓰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작가들은 두루 리얼리즘과 정치성에만 주목하여, 유럽의 작품들에서 견지할 수



있는 심미학적 글쓰기를 놓치고 말했다. 나는 그래서 한국소설은 읽지 않는다. 한국소설에는 예술작품 특유의 아우라가 없다. 또한 그들은 복잡미묘한 철학체계를



작품 속에 투영하지 않으려 함과 동시에, 필경 좁은 범위에서의 서사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작품의 <논리성과 미학적인 담지성>을 우회하여 보잘 것 없



는 속물스런 작품세계를 그려나간다. 거기에 비견해보면 한국소설평론은 너무 어렵고 강압적으로 수사적인 언어들이 사용된다. 이것이 한국문단계의 모순이다. 내가



그것을 비웃을 순 없지만 학인으로서 그것을 경멸할 자격은 있다. 한국소설가는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여 거기에 마땅한 한계에 봉착하는 것이다.









여명이 끝나감과 동시에 해가 떠오르려고 한다. 오늘도 밤을 새웠다. 잠을 안 자면 좋은 점은 불안감이 사그러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적 활동도 불가능하다.



그저 짐승적인 생활에 귀착해야 한다. 원론적인 생활이 바로 이것이다. 먹고 잠자고 생의 무상함에 전부를 구획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다.









나의 아버지는 실패자였다. 그는 주식에 중독되어 투기세력의 희생물이 되었다. 주식은 돈이 많은 자, 즉 질료가 풍부한 자가 필연적으로 이기는 법, 이것이 바로 도박과의 공통분모이다. 더 나아가 나는 더 커다란 실패자, 지고의 패배자, 환멸감이 평생을 가는 자가 되었다. 고인 물은 썩는 법, 이와 마찬가지로 썩은 한국에서 나는 이 짙은 갈색 썩은 물을 마시기를 거부해 외출을 거부했다. 다시 말해 나는 은자가 되길 원했고 오직 언어만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성모대학병원에서 약을 타먹으로 갈 때 빼고는 밖에 나갈 일이 없었다. 어쩌다 극장이나 백화점에 들리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예외에 불과했다.











내 삶을 재정하는 두 가지 감성은 불안과 권태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회피하는 버릇이 쾌감을 불러온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하메 이 쾌감의 정점을 카타르시스라고 명명할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집필할 때, 최선의 책을 읽을 때, 고정관념을 타진하는 영화를 시청할 때 이러한 것들이 내 안에 잠재하여 외재성과 결합하여 하나의 엑스터시로 명멸한다는 걸 깨달았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삶을 양화하는 논법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나는 정확히 내 자아에게 명시해야 했다. 시대의 아들이 되지 않기 위하여, 현재의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철학담론사에 참여하여 신을 거부하기 위하여, 현실을 잊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일자가 되기 위하여 나는 각고의 내공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병자의 삶이요, 무릇 착란적 환자의 삶으로 변양되어 가는 것이었다. 딜레마에 귀결한다는 현실을 당신은 어찌 받아들이는가? 젊은이들도 가없는 딜레마의 덫에 몰입하곤 한다. 그건 비자연적인 것이었고 종래에 자살로 이어지는 법이었다. 자살에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 완전한 절망, 완전한 절망 하나면 용기와 겁많음 문제는 탈피의 문제가 된다. 나는 내 목에 식칼을 쑤셔넣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순수이성에 따라 그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지만 미래에 내 죽음에 관한 문제는 요원하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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