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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에 대하여.. (긴글입니다. 3줄요약도 없습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6-09 14:57:53
추천수 0
조회수   3,195

제목

유시민에 대하여.. (긴글입니다. 3줄요약도 없습니다.)

글쓴이

강전형 [가입일자 : 2004-08-09]
내용
Related Link: http://blog.dreamwiz.com/aoide/10534096

요즘 유시민이 대안으로 많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아직 유시민이 누구이고, 어떤 생각,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계 시는듯 하여 제가 아는 것들을 정리하여 몇자 적어 봅니다.



 노무현 하면 떠오르는 첫번째 이미지가 3당합당에 반대하며 울분에 찬 주먹을 들어올린 사진에서 보여지는 강직함과 울분에 찬 의기로움 이라면 유시민은 언제나 논리적이고 명쾌하지만 유쾌함을 갖춘 젊은 지식인의 이미지 입니다.
 
100분토론, 거꾸로 읽는 세계사, 경제학 카페 등등 정치인이기 이전의 유시민은 일단 제외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을 대표하는 몇몇 컨텐츠를 나열해 보겠습니다.



1. 항소이유서

    나름 유명했던 "서울대프락치 사건"으로 수감된 유시민이 직접 작성한 문서입니다.
    워낙 길어서 부담스럽지만 시간내셔서 한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시절.. 아무 문제의식 없이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젊은 유시민의 열정과 의기가 절절히 느껴지는 명문이었습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전문확인은 : http://www.leeeunsuk.com/603



 민주화 운동 출신의 정치인들이 보통은 "긴급조치 위반" , "집시법 위반" 등의 전과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특이하게도 폭력 전과를 가지게 된 배경입니다.




2. 노무현 지지선언

   2002년 민주적이고 정당한 방법으로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었음에도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사실 비주류라는 이유가 더 클수도..) 계속 흔들어 대는 민주당내 분위기에 맞서 중립이 요구되는 정치칼럼리스트 때려 치우고 정치판 무대위로 뛰어 오르게 됩니다.
   그때 했던 노무현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인터뷰 영상이 지금까지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며 유시민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사람을 위해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또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그런데 왜 이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가. 그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 노무현이 가는데 마다 왕따 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 받고, 그렇게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위에 나무위에 혼자 매달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정쟁, 혹은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지식인들.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



  동영상 보기 : http://andu.hanafos.com/pub/enjoy.asp?conkey=580543



 이때부터 노무현에 대한 유시민의 태도가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주게 됩니다.


3. 개혁당(개혁국민정당)의 창당

   2002년 그당시의 민주당이 노무현을 버리자 유시민, 김원웅 등이 모여 노무현을 지지하는 정당을 만들어 냅니다.
   개혁당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요...
   첫번째는 민주당에게 버림받은 노무현을 위한 정당 이라는 겁니다. 개혁당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노무현을 지지하는 정당으로 시작하였고, 노사모, 유시민, 문성근 등등 친노들로만 이루어진 정당이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진성당원만으로 이루어진 정당에 대한 시도 였다는 점입니다.
   한달에 몇만원이라도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으로 이루어진 정당... 정말 꿈같은 이야기 이죠.  정치에 대한 소신이 있는 사람들이 수천, 수만명이 모여 매월 몇만원이라도 당비를 내고, 그 당의 대표와 임직원은 월급쟁이가 되는거죠.
   대장이 어디선가 돈을 끌어 오면 그 돈으로 조직이 움직이는 기존 방식의 정당은 대장에 종속된 조직이 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으며, 소속된 정치인들은 당선이 되지 않거나 대장의 눈밖에 나면 백수가 되는 위험에 직면합니다. 즉 소신을 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죠.
   비록 민주당과 통합되어 열린우리당으로 들어가며 안타깝게 마무리 되었지만 당원이 주인이 되는 백년정당을 목표로 개혁당의 꿈이 시작되게 됩니다.
 
   이때 문성근이 한 개혁당 창당 및 노무현후보 추대 연설은 상당히 유명하죠. 지지자들에게는 엄청난 감동의 눈물나는 연설이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지나치게 선동적인 빨갱이 스러운 연설로 보일 수도 있는 연설입니다.
   그당시 노무현 후보가 이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후에 대선후보 홍보영상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문성근 연설 동영상 보기 :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125675



  위에서 이야기한 유시민님의 인터뷰에서도, 문성근님의 연설에서나 모두 노무현에 대한 이미지는 황야에 고독하내 내팽겨쳐져서도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그런이미지 입니다.


4. 보궐선거 출마

   개혁당 창당시에 노무현을 흔들던 민주당과 대립하던 것과는 달리 당선 이후에는 개혁당과 민주당과의 관계가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이때까지는 민주당이 대통령이 된 노무현에게 심하게 이빨을 들이대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덕에 2003년 4월 고양시 덕양 갑 선거구에서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음으로써 여권 단독후보로 출마하게 됩니다.
   수 많은 개혁당 지지자들의 열정에 찬 지원 덕에 당당히 당선을 하게 됩니다. 제 기억에는 보궐선거에서 여권 유일한 당선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유시민은 당당히 국회에 입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첫 국회입성부터 문제를 일으킵니다... 면바지에 라운드티를 입고 의원선서를 하려하다가 거부당하고 다음날 정장을 입고 다시 선서를 합니다..ㅋㅋ
   그리고 이때 유시민을 대표하는 분홍색이 등장합니다. 그때 딸아이와 함께 분홍색 T셔츠를 사며 쑥스러워서 평소에는 못입겠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끔 입게 되더군요^^
   당선 후에는 민주당과 함께 열린우리당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일부 지지자들의 이탈이 있기도 했습니다.




5. 보건복지부 장관

   노무현 전대통령님은 차기 대선후보감으로 생각되는 분들을 이런저런 주요 요직에 앉혀서 테스트를 하신 듯 합니다. 총리로서 또는 장관으로서 일을 하게 하는 방식으로요. 노무현정권 진로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두 부서인 보건복지부와 통일부에 각각 유시민과 정동영을 앉힙니다.
   사실 정동영은 관심이 없으니 장관시절 무슨일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유장관님이 하신일들은 몇몇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노령연금을 만들었습니다. 국민연금은 더내고 덜받게 만들었죠.. 사실 이걸로 참 욕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구조로 파경이 명백히 보이는 국민연금을 자신의 임기중에 파경은 안난다는 이유로, 내가 그렇게 만든거 아니니 내가 욕먹을 이유 없다는 이유로..계속 미루기만 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건복지부 장관시절 하였던 일들은 유시민의 책 대한민국개조론에 보면 보다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상당부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읽은 내용 중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사회투자국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대운하 등의 구시대적인 사회간접자본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하는 국가. 경쟁의 탈락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을 넘어 다시 치료받고 교육받아 경쟁안으로 들어오고,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 만들어 나가는 국가를 꿈꾸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이야기 하면 뜬구름 잡는 빨갱이들의 이야기로 보일 수 있는데요. 구체적인 예로는 근로장려세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근로장려세제는 근로소득이 있는 저소득층에게 근로소득에 비례한 혜택을 줌으로써 근로의욕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손놓고 지원을 바라는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소득을 높여나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사실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기가 쉬운데요. 진보의 입장에서는 소득이 낮은 더욱 취약한 계층을 오히려 홀대하는 비윤리적인 정책으로 비춰질 수 있고요.. 보수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국민의 혈세를 복지정책에 많이 할당한다는것 자체가 불만 일 테고요..

 시간이 되신다면 대한민국 개조론, 또는 후불제 민주주의 등 유시민의 정치적 철학이 긷든 책들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시간이 안되신다면 아래의 요약이라도 읽어 보세요~



 대한민국개조록에 대한 어느 블로거의 소개 : http://blog.daum.net/metanoiaa/12033586




6. 대권도전

   2007년 노무현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17대 대선후보들의 경쟁이 시작됩니다. 유시민은 열린우리당 내의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합니다.
   TV 토론 등을 통해 이미 많은 팬을 확보한 유시민 이지만 박스떼기로 일컬어지는 조직력의 힘에 무너집니다. 경선에 끝까지 참여하지도 못하고 정동영을 이겨야만 한다는 절대명제 앞에 이해찬에게 공을 넘기고 중도하차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먼저 기부금 사태가 있었지요.. 대선후보 등록하려면 3억원의 정치자금이 필요한데 유시민이 해당 금액을 마련하지 못해 출마가 어렵다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그 당시 유시민의 공식 홈페이지에 표시되는 기부금 합계 금액이 2억이 안되는 금액이었습니다. 나중에 유시민이 필요한 돈은 이미 대출받아 납부 완료 해 놓았다는 해명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안타까운 마음에 마구~ 기부금을 납부하는 사태가 이어졌습니다. 단연 압권 이었던 것은 선영아 사랑해로 유명한 마이클럽의 누님들이 나서기 시작하니 기부금 합계가 푹푹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 역시 누님들은 손이 큼을 알수 있었습니다. 결국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하루사이 1억에 가까운 기부금이 모금되는 유시민의 저력이 드러난 일화였습니다. (언제나 정치인 기부금 순위 1등은 유시민 입니다. 지금은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신분이 아니라서 안타깝네요..)



 두번째는 캠프가 망했어요^^ UCC 입니다. 결국 경선을 중도 포기하고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이해찬의 지지를 호소하는 UCC를 만들어 배포했는데요.. 유시민의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귀여운 UCC로 또한번 마이클럽 누님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습니다.
 이 UCC로 네티즌과 보다 더 친숙하고, 신세대 적인 정치인의 이미지를 지지자들에게 심어줍니다.

  캠프가 망했어요 :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wdfPvKaJRZ4$
 
  이 동영상에 귀엽다고 난리 났었습니다..


7. 18대 총선 무소속 대구 출마

   유시민이 처음 국회의원 뱃지를 단 것은 개혁당의 이름으로 고양시에서 입니다. 하지만 유시민은 당의 이름보다 유시민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에 다시한번 고양시에서 나온다면 당선이 확실하다라는게 중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유시민은 정치적 아버지의 뜻을 이어서 지역감정에 대항해 대구 수성을로 출마합니다. 지난해 4월 9일에 있었던 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자신의 고향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무현을 미워하는 지역구라고 할 수 있는 대구 수성을에서 출마한 유시민은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30%가 넘는 표를 얻어내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이때 한나라당 후보인 주호영 후보는 유시민 돌풍이 무서워 TV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지요..(인터뷰를 하면 형평에 따라 유시민도 인터뷰를 하게 됩니다. 반대로 주호영이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형평에 따라 유시민의 인터뷰도 방영할 수 없습니다.)




8. 야인시대 그리고 조문정국

   지난해 총선 이후로 유시민은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대구대 강의, 대한민국개조론, 후불제 민주주의 등의 책을 쓰며 시간을 보내며 점점 잊혀지고 있던 유시민이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다시 국민의 대변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몇일전 내년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의 지지도 조사에 한명숙 전 총리와 나란히 현 시장인 오세훈 시장을 누를 수 있다는 조사발표가 있었는데요.
  이제 유시민이 다시 야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퇴로는 완전히 막혀버린 듯 합니다. 이제 유시민의 선택은 서울시장으로 출마하여 시장직에 있다 대선으로 이어가느냐..  아니면 다시 대구시장 출마하여 쓴잔을 삼킨 후 그 에너지 까지 이어 대선으로 행하느냐의 결정 만 남았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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