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유족 6283명 중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를 넘고, 봉급생활자가 10% 남짓, 중졸이하 학력이 55%이상, 대부분 비참하게 살고, 일부는 친일파 후손에 밀려 외국으로 피신
1. 안중근 : 안중근 집안의 독립운동가만 40명이 넘음
- 부인 김아려 : 중국 상하이에서 별세
- 장남 안우생 : 여섯살 때 일제 밀정에게 독살
- 사촌동생 안경근 : 5.16 군사정권 하에 7년간 투옥
- 조카 안민생 : 5.16 군사정권 하에 10년간 징역
- 조카 안진생 : 전두환 정권 때 강제해직 당한 후 8년간 투병뒤 별세
2. 신채호 : 1912년 망명 후 지금까지 국적 회복되지 못함,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땅과 집 소유권도 인정받지 못함
- 아들 신수범 : 은행근무 하다가 광복 후 실직, 신채호가 이승만 정책에 반대하자 자유당 정권에게 신변위협, 넝마주이, 부두노동자로 생활하다 이승만 하야 후 은행 복직
3. 차리석 : 임시정부 국무위원 비서장
- 아들 차영조 : 백범 암살 후 임시정부 관계자 가족 모두 숨어지냄, 19세까지 성을 신씨로 바꿔 생활, 아버지가 귀국하지 못하고 별세하자 광볼 후 동냥살이, 초등학교 졸업 앞두고 어머니 중풍으로 쓰러지자 학업 중단
4. 장병준 : 호남 갑부 출신 독립운동가
- 장남 장경식 : 제대로 교육받지 못함
- 손자 장하정 : 용인 시골마을에서 스리랑카 노동자 오산다의 보살핌을 받으며 말년을 보내는 중
5. 김성숙 : 조선의열단 선전부장,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내무차장, 국무위원 역임
- 이승만 독재 반대로 궁핍한 생활
- 아들 김정봉 : 일제 때 징용, 귀국 후 정신이상으로 경제활동 중단
- 손자 김덕천 : 아내 위암, 본인 구강암 진단을 받았으나 독립유공자 혜택없어 치료 못 받음
6. 이원근 : 1919년 4대문 사건 주동자, 옥고
- 손자 이승봉 : 경비원
7. 방한민 : 조선총독 암살계획 주동
- 손자 방병건 : 경비원
8. 홍병기 :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 독립선언서 서명
- 손자 홍재웅 : 노무 치매와 중풍으로 사망, 본인 사업실패 후 당뇨와 치매 환자, 아내는 동사무소 공공근로, 보상금 혜택대상에서 제외
9. 이승훈 :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 기독교 측 수장
- 5대손 이기대 : 지하셋방 살펴 포장마차 운영, 보상금 혜택 전무
10. 유여대 :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
- 후손 유창근 : 부친 사망후 의료지원 혜택 중단, 노모 병원비 부담 위해 시간제 아르바이트
11. 신흥식 :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
-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르던 중 1937년 사망
- 손자 신덕수 : 교육 못받고 자라 막노동판을 전전, 허리와 부인 뇌수두증을 치료하기에 턱없는 보상금으로 생활
12. 박준승 :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 천도교측 수장
- 손자 박기수 : 10년 전 뇌경색으로 와병, 부인 고혈압에도 불구하고 남편 대신해 남의 논농사를 도와 생활
- 증손 박정민 : 목축업,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파로 키우던 소 40여마리 헐값에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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