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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5-28 14:37:28
추천수 0
조회수   620

제목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글쓴이

강성배 [가입일자 : 2002-04-11]
내용
Related Link: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

양순필 前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의 글입니다.

한번 읽어 보실만 합니다.



사무실에서 읽어 보다 눈물이 나와 휴지로 닦다가 결재 받으러 온 직원에게

들켜 버렸네요. 쑥스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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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봉하마을로 향하는 기차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시신이 안치된 마을회관 앞 빈소에서 수많은 조문객들이 오열할 때도 끝내 울지 않았습니다.



하염없이 흐느껴 우는 유시민 전 장관의 어깨를 감싸며 "힘 내세요"라고 위로할 만큼 전 이성적이었습니다. 애써 참은 게 아니라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봉하마을을 뒤로 하고 광명시에 있는 저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광명에도 임시분향소를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상주(喪主)' 자원봉사라도 하려고 그곳을 향했습니다. 주제넘게 상주로 나서겠다고 생각한 것은 광명시가 제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제가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조문객을 맞는 게 제 할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천막 아래에 놓인 손바닥만한 영정 앞에는 종이컵에 담긴 막걸리 한 잔과 수북이 쌓인 하얀 국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상주 자리에 섰습니다. 광명시는 대통령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 덕수궁 대한문 앞처럼 어떤 상징성이 있는 분향소도 아닙니다. 때문에 조문객이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일 낮인데도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수 십 미터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분향을 할 수 있습니다.



상주 자리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앞을 지나던 한 할머니가 "차림이 이런데 분향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눈에 뭐가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눈시울이 따끔했습니다. 할머니의 손과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옷차림은 초라했습니다. 향에 불을 붙이던 할머니는 어느새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참은 것은 아니지만 '저 분은 왜 우실까?'를 생각하느라 눈물이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후에도 조문객 중에 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누구는 애써 참으려는 듯 조용히 흐느꼈고, 또 누구는 서럽게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이때까지도 저는 '왜 울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통령님 살아 계실 때 가까이에서 한 번 뵌 적도 없는 분들일 텐데…, 모두가 노무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것도 아닐 텐데….'



봉하마을에서도 우는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모습을 보고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비통한 소식을 듣자마자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이라면 대통령님을 아주 좋아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일 것이고, 이들이 사랑하는 분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서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또 대통령님의 시신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불과 몇 미터 앞에 안치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봉하와 광명이 다른 만큼 그곳에서 분향하는 조문객들의 마음도 다를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이 깨졌기 때문일까요. 시민들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가 제 머리 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고 결국 마음 깊은 곳을 아프게 찔렀습니다.



하얗게 거품이 뜬 막걸리 잔을 비우고 새로 술잔을 올린 할아버지는 영정 앞에 엎드려 한 참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조용히 헌화와 묵념을 마친 젊은 여자 분은 자기 가방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았습니다. 짧았지만 꽤 길게 느껴진 시간이 지나 그녀가 꺼낸 것은 뜯지 않은 담배 한 갑이었습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조문을 하려고 했는지 검은 넥타이까지 챙겨 맨 젊은 남성은 향에 불을 붙이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오전에 이 앞을 지났는데 옷차림 때문에 분향을 못하고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왔다"는 아주머니도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이미 먼발치에서부터 계속 울며 걸어와 영정 앞에 선 한 젊은 여자 분은 헌화하고 분향소를 나설 때도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등에 풍선을 매달고 있는 지적 장애우도 분향을 했습니다. 절을 두 번 하는 것이라고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분향을 마치자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 왜 절 하는지 아세요."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부엉이가 있는 바위에서 떨어져 죽었ㅐ요. 슬퍼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저는 어금니를 꼭 깨물며 울음을 참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두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마음속으로 물었습니다.

'여러분, 왜 그리 서럽게 우세요?'



그리고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제야 알았어요. 노무현 대통령님 영정 앞에서 울고 있는 제가 바로 '노무현'이예요.' 이곳에서 흐느끼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 닮았습니다.

아무리 손해를 봐도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바보 같은 모습이,

돈과 권력 앞에서 눈치 보지 않고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모습이,

끝까지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진실한 모습이,

작고 사소한 것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는 소박한 모습이.

노무현 대통령님과 그의 영정 앞에 목 놓아 우는 우리들의 모습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저는 분향소에서 울고 있는 수많은 '노무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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