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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식적 한계의 초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5-25 00: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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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27

제목

[칼럼] 지식적 한계의 초월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1



인간은 왜 실재를, 왜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세목에 집착하며 자신을 사는 걸까. 나는 이 이유를 그 대상자의 부모와 연관지어 생각하기로 했다. 인간의 인지기능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그것은 한 개인의 부모에 생물학적으로나 교육학적인 데서 유래된다. 사업에 성공하면 축배를 들고 사랑에 성공하면 행복한 게 인간이다. 어떤 책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성적이고 감정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가장 중심축이라 할 수있는, 혹은 가장 밑바탕이라 볼 수 있는 성욕이란 카메라 속에 사회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구축된다. 지교한 인간 정신의 근본의 핵은 언제나 리비도의 측면에서 근거한다.



나는 철학책이나 인문학서적들을 읽으면서 계속하여 한 생각에만 빠졌다. 아니면 단지 내 현재 생활이 주목하는 주요 프레임이 <실재는 어디서 유래하는가?>에 방향의식을 두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단지 움직이는 원자세계의 작은 원리이며 이것을 유물론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인지기능이 축약하는 세계는 인간이 소멸함에 따라 소거되는 하나의 꿈인가. 말하자면 실재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분명히 우리 사는 시대에 우리를 가두는 흩뿌려진 외연적 객관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다만 생물로서 느끼는 착각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각각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인과성의 의미의 큰 논리를 외면한 채 자기 내면에서 주도되는 갖잖은 편견의식에 벗어나지 못한다. 거기서 벗어남으로 인해서 오는 논리와 깨달음의 세계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2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요소들을 하나의 등가적인 파노라마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그러나 인위적인 축약이요, 전제주의적 침략이다. 어떤 요소든 우리는 그것을 변별적이고 차등적인 관점에서 판단할 권리가 있다. 인간세를 규정짓는 적은 요소들 사이에서 우리는 수많은 요소들을 포착해야 한다. 그것이 곧 아이러니의 발견이다.

우리의 사변이성은 그러나 시詩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감수성의 반대편에 있다. 이것을 도식화해보자면 이런 식이 된다.







사변이성 vs 감수성



서구적, 무감정, 인위적, 논리적, 체계적 // 동구적, 감정적, 자연적, 도덕적, 통찰적



서양철학은 항상 논리학과 언어의 벽에 기대어 발전해왔다. 동양철학은 논리를 배격하고 깨달음이라는 비언어방식에 그 핵심을 두었다. 이것은 어쩌면 동양사람과 서양사람 간의 차이를 표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로 서양철학이 국내에 들어온 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서양의 밀도 높은 정신은 동양에 깊이 융화되었다.





3







생과 사는 순일한 흐름에 다름 아니다. 어느 이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애도의 물결로 몰아넣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이다.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사람의 죽음을 잊고, 나아가 그 사람 존재 자체를 잊고 만다. 우리는 본래 영원이라는 개념 속에서 사死라는 개념을 창출해냈다. 그것이 바로 이시대의 비극이다. 우리는 본래 존재하지 않았고, 여기서 유추해볼 수 있는 사실은 '영원'이라는 개념 또한 인위적인 하나의 관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대로 전해진 이러한 개념들을 뒤집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간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으며 공간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인간으로서 지각하는 인지작용의 침출물일 뿐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이다. 대대로 전해내려온 지식의 기반을 뒤집는다는 것...



쇼펜하우어는 붓다를 빌려서 자신의 사상에 첨가시켰다. 그는 예컨데 약간 간악한 자라 할 수 있다. 자기만의 사상체계는 별 볼일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철학계에서 그가 점하는 위치는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현대철학자 들뢰즈는 많은 과거 철학자들의 관념을 뒤집은 철학자로써 우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그는 일컨데 대천재요, 최고의 지혜의 전승자로서 철학사를 규준지었다.



우리는 뒤집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식의 한계를 초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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