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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아침에.... D-11680 (?)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5-19 17:38:59
추천수 0
조회수   775

제목

생일 아침에.... D-11680 (?)

글쓴이

이문준 [가입일자 : 2002-08-07]
내용
달랑...

미역국 한 그릇이 놓인 외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조촐한 아침상을 받았습니다.

모태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세상의 공기를 스스로의 힘으로

호흡하기 시작한 지 딱 48년이 된 생일 아침입니다.



원래 생일 같은 것에 집착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이제껏 살아온 48년이 딱히 대단한 축하를 받을만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식구들 역시 아비와 남편의 생일을 두고

대체로 무덤덤해 하기는 비슷합니다.

게다가 큰 녀석은 학교에서 하는 기숙영어 때문에 며칠째 집을 나가있고

고3인 둘째는 얼굴 보기마저 쉽지 않은 형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밍밍한 미역국 사발로 숟가락을 옮기다보니,

오늘로 48년을 꽉 채워살았구나 하는 사실에

가슴 깊숙한 곳에서 한 줄기 회한의 물결이 치밀어옵니다.

지난 48년의 세월이 얼마나 오랜 세월이었는지 가늠조차 되지도 않지만,

그 오랜 시간을 뭉뚱거려 되돌아보노라면,

즐겁고 기쁘고 가슴 벅찬 기억보다는

그저 무수히 되풀이해온 잘못과 후회로 얼룩진

초라한 중년의 인생이 어깨너머로 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10년 전을 돌아봐도

어리석은 인생을 얼룩지게 한, 잘못과 후회가 비춰질 뿐이며

20년 전도, 30년 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과 환희는 찰라의 기억으로 잊혀질 뿐이고,

덧없는 욕망과 집착이 빚어낸 잘못된 결과와 그에 대한 후회는

어두운 그림자처럼 언제나 내 삶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아아....

삼라만상을 관장하는 절대자가 있다면,

먼지 한 톨 만큼이나 미천한 이 존재를 위해

억겁을 되풀이해온 불변의 절대원칙을 무시하고

오직 단 한 번 살짝 미친 척

역주행을 해달라고 강짜를 부릴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10년, 아니, 20년, 아아니 30년 전으로 내 삶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내가 되풀이해온 그 수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과 실수의 덫을

피해갈 수 있을까....



그러나, 그동안 갈짓자처럼 걸어온 어리석은 인생을 되돌아보건대,

그런 기적이 생긴다한들 수십년 되풀이해온 온갖 시행착오의 나날이

하루아침에 교정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내 앞에는

내가 살아온 지난 1만7천520일의 삶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 주어져 있을 뿐입니다.

넉넉잡아 인생지사 80년을 기준으로 삼는다 한들

고작 1만1천680일이 남았을 뿐이며,

그것이 10년이 될 지, 1년이 될 지, 아니면 하루가 될 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미천한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어떤 절대적인 힘이

나를 이 세상에 내보낸 것처럼

나를 이 세상으로부터 거둬가는 것도

우주질서의 절대원칙 그 거대한 기계장치 속의

아주 사소한 한 귀퉁이에서 쉼없이 돌아가는

심술궂은 운명의 수레바퀴가 취할 몫이니 말입니다.



지난 48년의 시간, 1만7천520일의 나날을 살아오면서

내가 남긴 희미한 존재의 흔적에는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기원하는 바,

나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들만큼은

잘못과 후회로 흘려보낸 지난 세월보다는

조금 덜 잘못하고, 조금 덜 후회하며

마감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P.S. 오늘 아침 생일을 맞으신 모든 분들께 마음으로부터의 축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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