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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5-08 1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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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720

제목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글쓴이

김원전 [가입일자 : 2004-12-22]
내용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이왕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글을 길게 쓰면 저의 밑천이 드러나겠지만 지근이 용렬하다보니 단칼에 자르지 못하고 뭉기적 거리더래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저의 글쓰기의 습성대로 편한체로 하겠사오니 깊은 양해의 당부를 드립니다.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선불교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테제이다. 저거 없으면 선불교는 말짱 꽝이다. 선불교의 알파요 오메가가 바로 저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나의 방편적인 생각이다. 그러므로 맞다 틀리다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방편적인 생각이다라고 보시면 된다.







불립문자



나는 이 말을 " 나는 엄청 무식해서 말로는 표현을 못해요. " 라고 받아드린다. 불립문자라는 뜻은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불법의 최종적인 그 무엇은 말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이바구인데..... 과연 그럴까?



이 글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설명을 해야 할 것이 있다. 불교란 것은 간단하다. 석가세존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이 불교다. 이 세상의 제법은 석가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여호와처럼 그분이 맹기신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석가의 책임은 없다. 단지 석가는 세상의 실상을 깨우치고 설명했을 뿐이다.



즉 석가의 말씀을 못믿겠다면 다른 종교를 맹길면 된다. 그건 그사람의 자유다.



그럼 석가의 여러 말씀 중 무슨 말씀을 기준으로 해야 되느냐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딱 두 가지만 믿으면 된다. 그냥 믿는 것이다. 물론 왜 믿어야 되느냐는 약간의 분석적인 작용도 있겠지만 결과론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니 불교를 종교라 하는 것이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며, 그분의 말씀에 귀의하고 실천하여 그분의 뒤를 따라 부처가 되고자 하는 종교이다. 뭐 다른 것은 없다. 석가의 가르침에 귀의하지 않고 지 맘대로 할려면 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다른 종교를 맹길면 된다. 불교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상에는 석가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처님을 놓으라는 것은 대각하여 부처되기 전에 석가의 흔적을 지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지, 석가의 가르침을 벗어나라거나 소홀하게 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윤회의 업장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평온을 얻는 길과 방법에 대한 설명과, 이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실상을 보여준 것이다. 전자를 사성제라 하고 후자를 삼법인이라 한다.



우리는 사성제를 통해서 해탈과 열반에 다다를 수가 있고 삼법인을 가지고 내가 사는 세계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다. 불교 교리의 두 기둥은 연기와 중도인데, 이 연기와 중도는 사성제와 삼법인을 모두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며 원리이다. 따라서 불교는 사성제와 삼법인이라는 절대진리를 연기와 중도라는 이론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성제와 삼법인을 벗어난 어떠한 이론도 불교이론이라고 할 수가 없다.



자 다시 불립문자로 돌아가서..........



우리가 아는 최초의 부처는 누구인가? 바로 고타마 싯달타 아닌가? 그럼 그분이 정각을 얻으시어 하신 행동을 보면 부처가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경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저런 사정을 감안하여 35세에 정각을 얻으신 것으로 정설을 삼고 있다. 그러면 열반하신 80세 까지 45년 동안 무엇을 하셨는지를 디다보면 깨우친 자는 어떻게 사는지..... 깨우칠려고 하는 자는 ( 특히 일반 대중이 아닌 깨우치겠다고 마음 먹은 특수한 사람들 즉 승려나 법사 등등 )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벤치마킹할 수가 있다.



뭐라 ! 불립문자라................ 참 웃기고 있다.



세존은 45년 동안 밥 묵고 자는 거 빼놓고는 중생들을 위한 설법, 설법, 설법............ 외에는 아무것도 안했다. 그냥 말씀 하시고, 말씀 하시고 말씀 하셨다.



듣는 사람 수준에 맞추어서 한 번도 귀찮아하지 않으시면서 눈높이 강의를 하신 것이다. 설마 말씀하고 문자하고는 다르다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겠지? 세존은 한 번도 진리는 말로는 안돼 하시며 꽁무니를 뺀 적이 없다. 꾸준히 설명하셨다. 참 부지런하신 분이다. 그냥 불립문자다 하시면서 토끼시면 되는데 왜 그러지 않으셨는지 궁금하다.









교외별전



교외별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불교의 엑기스는 비밀리에 전해졌다는 이바구인데, 과연 이 말이 맞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



불경중에서 " 대범천왕문불결의경 " 이란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이 연꽃 한송이를 들어보이셨을 때 제자중의 마하가섭이 홀로 그 뜻을 알고 빙그레 쪼갰다는 염화미소의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마하가섭이 대견하여 가라사대, [ 나에게는 진리와 하나가 되는 깨달음에 이르는 비법이 있다. 이 비법은 형상이 없어 나타낼 수 없으나 진리의 문을 여는 쇠떼이다. 이것은 문자나 말로는 표현할 수도 전해줄 수도 없다. 나는 이 쇠떼를 마하가섭에게 전하다 ]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정각을 이루어 부처가 되셨다는 분이 뭔가 내밀한 것을 슬쩍 전하였다는 것이 말이다. 과연 이것이 부처다운 행동인가? 과연 저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숭배하여야 하는가?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대장경에 포함되지도 못하는 짜투리 경전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정경이 아닌 외경 쯤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는 이 경이 사용한 언어와 고증의 확인등을 하여본 결과 백프로 조작된 위경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나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위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언컨데 불교에 교외별전은 없다. 부처님은 그렇게 사바사바하면서 한 명에게 법을 전하신 적도 없고, 설명하지 않고 은근슬쩍 숨겨놓으신 비법이라는 것도 없다. 부처님의 45년 간의 모든 말씀은 문자로 남아서 오늘에도 전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불경이다. 무려 8만 대장경이다. 그외의 짜투리 경전을 빼버리더래도 말이다.



그러면 교외별전이라는 이바구는 왜 나오느냐? 그것은 불교 종단에서 권력을 성립, 유지, 계승하기 위한 수단에 의한 것이라고 밖에 해석 할 수 밖에 없다.



부처님에게서 마하가섭에게로 갔다가 흘러 흘러 달마가 받아서 몇 손 거쳐서 혜능에게로 갔는데.......... 어쩌구 저쩌구...............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에게 엥겨들면 안되다.......... 풋....... 무슨 불교의 진수가 무림비급인가? 장문에게서 장문에게로 비밀리에 전수하여 그것만 터득하면 모든 문중의 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는 비장의 무술인 모양이다.



다시한번 언급하지만 부처님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다. 만약 부처님이 모든 제자들을 제치고 어여뻐하는 한 사람에게 슬쩍 돈지갑을 엥겼다면 그런 사람의 이바구는 믿을 것이 못된다. 겨우 부처가 되었다는 사람의 하는 모양새가 뒤로 사바사바하는 것이라면 한나라당과 다를바가 무엇이 있나? 왜 믿고 따라야 하는데..............







직지인심 견성성불



위의 둘은 어차피 한 상황을 연결하여 놓은 것이니 같이 설명하겠다.



결론적으로 표현하면 이것은 종파를 운영하기 위한 밑밥이다. 기간당원들을 ( 승려 등 ) 결속 시키며 신도들을 끌어 모으는 방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기능은 없다.



불경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고 개나 소나 지 손가락 들어서 지 마음만 척 가르켜서 지 참된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된다는 소리인데, 참 부처되기도 쉽다. 왜 고타마 싣달타는 이 쉬운 방법을 두고 보리수 밑에서 쌩고생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럼 달마조사 이후 지 마음을 봐서 성불했다는 자가 누구인지 그 얼굴이나 한 번 보자.



아니 말로만 성불한다고 해놓고 과정이 전혀 없잖아........ 좀 상세하게 설명하여야 알아 묵지.



지 마음을 보는 지 하고 보이는 마음하고 같은지 다른지........ 어떻게 하면 마음을 볼 수 있는지.......... 꼭 가부좌를 틀고 화두를 들어서 혓바닥을 입천장에 붙이고 복식호흡을 해야만 보이는건지.........가부좌를 틀고 본 것이 과연 나의 마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과연 참된 본성이란 무엇인지............ 본성을 보면 나에게 무엇이 달라지는지............ 본성을 보는 것과 부처되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전혀 각론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있다. 말 하는 분마다 다 뜬구름잡는 소리만 하고 있다. 부처님에게서 좀 배워라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게 눈높이 교육을 하시는 것을......... 보고 배울 것은 안배우고 뭘 배웠는지............





지금도 많은 분들이 이노무 마음을 보겠다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용맹정진하시고 계시는데, 초치기는 조금 거시기 하지만 한 말씀 드리자면 일단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눈앞에 보이는 것이 참마음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다. 뭔가 퍼떡 보였는데 그것이 마음인지 아닌지를 우째 알겠노? 본성을 알아야 본성을 보지.



말이야 쉽지. 지 마음 지가 본다는데 그걸 못 볼 사람이 어디있노? 그로부터 천 년동안이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마음을 디다본다고 굶고 않았는지 셀 수가 없다. 그 중에 누구 하나라도 " 야 내가 내 마음을 봤다. 색깔을 뻘겋더라...... " 하면서 방문을 박차고 나온 사람 있다면 그 이름이나 한 번 알아보자.



이쯤에서 삼법인 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 제법무아 ] ........ 자 똑똑히 보이는 저 말은 마음이라는 것은 애시당초 없다는 소리이다.



부처님보다 몇 수 아래인 데카르트가 한 말이 있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그런데 데카르트에게는 미안하지만 전제가 틀렸다. 나는 생각한다가 맞다면 나는 존재한다가 참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가 틀렸다면 나는 존재한다고 하는 썰은 날구라이다.



부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이것이 제법무아이다. 뭐 별거 아니다. 내 마음을 디다보는 내가 있다면 삼법인은 맹탕 꽝이다. 불교도 끝이다. 내가 없는데 무신 나의 마음이 있을 것이며 없는 마음을 어떻게 디다볼 것이라는 건지 진짜 궁금하다.



그나저나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하여 부처된 사람 있으면 한 번 얼굴이나 보자.









위의 글은 저만의 방편적인 해석입니다. 정설과는 너무나 차이가 많습니다. 그냥 눈요기로 삼으십시요. 성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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