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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김대중이 마피아가 아니었다고?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5-01 08:59:46
추천수 0
조회수   6,711

제목

이래도 김대중이 마피아가 아니었다고?

글쓴이

황보석 [가입일자 : ]
내용


김대중 교주에게 미안할 일이 없어져서 잠시 들렀습니다.

김대중이 마피아인지 아닌지는 각자 읽고 판단하시기를.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도 게거품물고 인신공격하는 김대중교 신도들은 너무 힘들 빼지 말 것을 권합니다. 그래봤자 말짱 헛수고이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다음번 기쁜 소식 전할 때까지 또 굿! 빠이~







“金大中 정권이 조만간 신동아그룹 손 볼 것”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





―구속 당시 일부 시민단체가 최 회장의 부도덕성을 거론하며 신동아그룹을 집요하게 공격했는데, 진실은 뭡니까.





“IMF 외환위기 당시 재벌기업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던 상황에 편승해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음해성 투서와 모함을 바탕으로 저를 헐뜯었어요. 해외에 호화별장이 있다느니, 자가용 비행기가 있다는 등 허무맹랑한 내용을 언론에 흘려 저를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만들었죠. IMF 사태에 따른 국민적 분노를 풀게 만드는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검찰조사에서 허위사실로 판명났어요. 아직까지 일부에서는 제가 부도덕한 기업인으로 기억되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아요.”





―1999년 IMF라는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계열사들이 선방을 하고 있었다면 그룹 해체까지 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까.





“정치적 이유였죠. 그룹 총수를 구속시킨 상태에서 주력기업인 대한생명을 국영화하고 그룹 전체를 공중분해시킨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돼요. 1997년 대선 때 金大中(김대중) 후보 측에 선거자금을 안 낸 기업으로 지목되면서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겁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權魯甲(권노갑)씨 등 당시 동교동계 실세들로 구성된 9인의 비선조직 모임에서 ‘손 좀 보기로’ 한 첫 번째 그룹으로 지목된 게 신동아였어요. 비선조직의 실체는 아시아태평양재단 출신인 황○○ 장로의 傳言(전언)으로 알게 됐지요. 이 비선조직은 정기적인 모임은 아니지만 정권 초기에 필요할 때마다 모여 중요사안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룹 해체는 DJ 정권의 시나리오에 의해 실행된 거였어요.”





―어떤 근거로 사전 각본이 있었다고 판단하는 겁니까.





“1999년 세상에 알려진 옷로비 사건을 먼저 말씀드려야겠군요. 이 사건의 본질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인사의 부인이 저의 처를 돕는다는 명분하에 자기의 이익도 챙길 겸 당시 검찰총장 부인인 연정희씨에게 접근해 라스포사 의상실에 가서 외상으로 옷을 사게 하고, 그 옷값을 저의 처에게 대신 내도록 한 것입니다. 저의 처는 도를 넘는 일이라 거절했어요. 그게 다입니다. 실체적 진실은 옷로비 사건이 아니라 ‘옷값 대납요구 거절 사건’이지요. 옷값 대납요구는 제가 구속되기 6개월 전인 1998년 가을 무렵 있었어요. 검찰총장 부인이 연결돼 있으니 검찰총장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신경을 썼죠. 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아울러 저에 대한 이상한 얘기도 돌았어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가깝다고 알려진 조풍언씨에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조풍언씨는 저와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근데 조풍언이가 얼마 후 ‘이 문제는 내가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는 답변을 전해왔어요. 그러던 와중에 저와 교회활동을 하며 알게 된 김○○ 전 고려대 총장이 ‘김대중 정권이 조만간 신동아그룹을 손볼 것’이라며 실세 중 한 사람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를 전해주더군요.





그 얘기를 한 사람은 비선조직에서 종교분야를 담당했던 황○○ 장로였습니다. 그당시 황 장로의 이름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분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어요. 비선조직에는 軍(군), 교육, 종교 등 분야별로 담당자가 따로 있었고, 국회의원이나 30년 가까이 김대중씨와 정치를 같이했던 동교동계 실세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권노갑씨였지요. 그들 중에서 신동아그룹 문제에 직접 개입해 좌지우지한 사람은 이수동씨였어요. 아태재단 상임이사를 지낸 분이지요. 그는 김대중씨의 오랜 지인으로 30년간 DJ 집사 역할을 했습니다(이수동씨는 현재 미국 체류 중-편집자 注).”



“비선조직이 신동아그룹 문제 논의”





―이수동씨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겁니까.





“나중에 황○○ 장로로부터 직접 들었는데 ‘권노갑씨보다 이수동씨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해요. 이수동씨가 비선조직 모임에서 ‘(대선 때) 정치자금도 안 내고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손 좀 보자’는 것이었답니다. 그가 주도했다고 해요. 비선 모임은 이수동씨 집에서 모이기도 했고, 효자동 한정식집에서 모이기도 했답니다. 신동아그룹 문제로 말이죠. 이들은 다른 문제도 서로 논의하곤 했답니다. ‘○○은행장은 누구를 시키자’, ‘한전 사장은 누구를 시키자’는 등의 인사문제를 논의했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이 모임을 유지하면서 자기들 몫을 챙겼다고 해요.”





―황○○ 장로라는 분은 신동아그룹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그분이 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비선 모임에서 저를 옹호했나 봐요. 당시 황 장로는 대통령 부인의 집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분은 종교계의 여론을 수집해 대통령께 보고하는 일을 하고 있었죠. 종교계 인사들로부터 ‘(최순영 회장은) 기업인으로서 문제를 일으킬 사람이 아니다’는 얘기를 듣고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해요. 황 장로는 저에 대해 좋은 인상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쁜 인상은 갖지 않았나 봅니다. 황 장로는 李姬鎬(이희호) 여사에게 ‘(신동아 문제를) 신중히 해야 된다. 지금처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고 해요.





황 장로가 너무 그러니까, 그가 오히려 위기에 빠졌다고 합니다. ‘황 장로가 최순영한테서 20억원을 받아 챙겼다’는 투서가 영부인에게 전달됐어요. 이희호 여사가 황 장로를 불러 ‘최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느냐. 20억원 얘기가 왜 나오느냐’고 물었다고 해요. 황 장로는 펄쩍 뛰면서 ‘그 사람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돈을 받느냐’며 부인했다고 해요. 저는 그 사람에게 돈을 준 적도, 줄 이유도 없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황 장로와 일면식도 없었죠. 그런 음해성 투서가 영부인에게 전달될 정도였으니 그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만합디다.”





최순영 회장은 “황 장로는 비선조직과 행동을 같이해 그쪽 움직임에 정통했다”고 했다.





“비선조직은 수시로 모여 자기네 이해관계에 얽힌 일들을 협의하곤 했습니다. 거기에 나중에 끼어든 사람이 金泰政(김태정)씨였어요. 검찰총장이니까 비선조직에 들어갈 리가 없었는데 부인의 ‘고급 옷’ 얘기가 자꾸 흘러나오고 하니까 두어 번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김태정씨는 나를 적극 구속하는 쪽으로 일을 진행했죠.





비선모임에서는 정치자금 문제도 거론됐다고 해요. 당연히 정치자금을 안 낸 제가 좋게 보일 리 없었겠지요. 저는 1992년 대선 때 DJ에게 돈을 주지 않았어요. 1997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죠.(웃음) 비선모임에서 ‘김영삼이한테는 거액을 주고 우리한테는 단 한 푼도 안 준 회사를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왔다고 해요. 완전히 괘씸죄에 걸린 거죠. 나중에 황 장로에게 들은 얘기지만 신동아그룹을 공중분해시키는 데 대해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해요. 아무튼 그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은 후진국의 典型(전형)이었어요. 기업하는 사람은 정치자금을 당연히 내야 했습니다. 대선자금도 줘야 했고.”



“너희 회장 왜 연락없어” 하면 정치자금 달라는 얘기





―1992년 대선 때 金泳三(김영삼) 후보 측에 얼마를 건넸습니까.





“그때는 좀 특수한 상황이었는데 김영삼씨에게 100억원을 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도보다 훨씬 많이 전달했습니다. 그게 소문나면서 문제가 됐어요.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의 핵심인사가 내게 와서 ‘최소 1992년 김영삼 후보에게 준 돈 이상을 주셔야겠다’며 선거자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10원도 안 줬어요.”





최순영 회장은 역대 정권 때 제공했던 정치자금을 솔직히 털어놨다. 정·관계 인사들에게 선거자금 또는 인사치레로 돈을 전달한 사실을 담담히 얘기했다. 그는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政·官界(정·관계)에 돈을 주는 게 관례였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어떤 형식으로 돈을 요구합니까.





“직접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간접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로 당에서 했지요. 비서실장을 통해 ‘야, 너희 회장 왜 아직 연락 없어’ 이런 식으로 압력을 넣습니다. 부드럽게 얘기할 때는 ‘아직 소식이 없군요’라고 하지요. 액수는 얘기 안 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과거 누구한테 얼마를 줬는지 다 알아요. 그래서 그보다 더 많은 액수를 은근히 기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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