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일반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8. 얼어붙은 바다 바이칼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4-23 08:52:50
추천수 1
조회수   933

제목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8. 얼어붙은 바다 바이칼

글쓴이

정하엽 [가입일자 : 2002-11-28]
내용
잊을만 하면 한번씩 올라옵니다
시간나는 주말에만 한편씩 기억을 더듬어 씁니다.



=============================================================================



2009년 2월2일 여행 6일째

눈을 뜨니 8시다.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레닌로는 벌써 분주한 아침이다.
금방씻고 짐을 챙겨나서니 8시30분 , 출근시간이라 꽉차서 도착하는 64번 미니버스를 두대정도 놓치고 나서야
겨우 한자리가 빈 버스에 구겨들어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8시 50분. Kacca에 가서 표를 끊으니 출발시간이 9시30분 이란다. 다행히 아침먹을 시간이 생겼다.
매점에가서 무교동 이북만두만큼이나 큰 만두와 오렌지 쥬스하나 샀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쥬스를 들고 터미널 나무의자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남은 잔돈을 털어 자판기에 커피까지 뽑아 마시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금방시내를 벗어나 침엽수림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론리 플래닛의 설명에 의하면 65 km에 이르는 이길은 1960년 아이젠하워의 방문을 앞두고 불과 2개월만에 닦아버렸다고 한다.
결국 소련영공을 침범한 U2기 격추사건때문에 방문은 취소되었지만 급하게 닦느라 그랬는지 길은 이리저리 돌지않고 그냥 직선으로 쭉 뻗어있다.



길은 좋았지만 대부분 얼어붙어 있어 속도를 빨리 낼 수는 없다.
시골의 마을버스 처럼 길가에서 손흔드는 사람을 태웠다 내렸다 하면서 1시간이 지나자 오른쪽 창밖으로 바다처럼 광활한 바이칼이 나타난다.
얼어붙은 바이칼은 전혀 현실의 풍경처럼 보이지 않는다.
버스는 10여분 더 달려 종점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서너명의 사람들까지 모두 사람들이 내린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금방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나혼자 남았다.
관광지 답게 호텔도 보이고 러시아에서는 처음일듯 한 영어관광 안내판까지 있었지만 쓸쓸하기 그지없다.

버스에서 내린 바로 앞 건물에 매표소로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이르쿠츠크로 돌아가는 차시간을 물으니 오후 4시 30분 싫으나 좋으나 5시간 넘게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우선 바이칼과 인사해야 한다.
제방아래로 난길을 따라 바이칼 얼음호수위에 발을 디딘다.




마치 쇠를 딛는듯 하다.
광활한 호수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나말고는 두사람 밖에 없다.
기념사진이라도 남기려고 얼른 다가가 사진한장 찍어주기를 부탁했다.

호수중앙쪽으로 걸어가는데 아무리 꽝꽝얼어도 이곳이 호수위라는 것을 생각하니 살짝 겁이난다.
가끔 거대한 얼음끼리 부딛히는 소리인지 쿵 하는 소리가 조용한 하늘위로 울려퍼진다.
고도를 높이지 못하는 겨울해는 얇은 눈에 쌓인 호수에 비쳐 마치 다른 별에라도 온듯한 신비로운 느낌이다.
호수 가장자리는 얼음끼리 부딪혀 다시 얼어붙은 듯 뾰족한 결정체들이 마치 보석같다.


조금지나자 그나마 사진찍기 놀이를 하던 남녀마저도 떠나고 적어도 내 시야의 범위내에서 호수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추운 겨울에 온 덕분에 이넓은 바이칼 호수를 혼자서 즐기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추운날씨에 혼자놀기도 슬슬 지켜워진다.
얼음조각을 하나 주워서 바이칼 호수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지인들에게 줄 기념사진으로 간판정도의 크기로 'Baikal with OOO ' 2009. 2.2 이런식으로 쓰고 원경을 배경으로 몇장찍다가 나중에는 신발을 질질끌면서 눈을 치워가며 글자하나가 가로 세로 10미터정도 되는 큰 글씨를 쓰고 다시 호수위 제방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곤했다.
불행히도 그 사진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적어도 며칠은 바이칼 얼음위에 남아있었으리라.

낙서놀이도 시들해지자 다시 제방위로 올라가 북쪽마을쪽으로 걸어가본다.
조금전에는 몰랐는데 북쪽으로 걷다보니 조금전에는 몰랐던 바람이 몰아친다. 버프를 눈까지 올리고 목도리도 한번더 여민다.
작은 마을길 양쪽으로 시베리아양식의 목조주택들이 눈에 덮어쓴채 나란히 서있다.
학교를 마친 어린학생들만 빨간볼만 내놓고 완전무장한채 아장아장 걸어다닐뿐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을 끝에 이르자 길이 끊어지고 산길로 이어진다.
높은 언덕에 올라서 바이칼을 한참이나 내려보다가 되돌아 걸어 내려간다.

이제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제방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본다.
날씨 탓인지 호수위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비행기의 비행운이 오래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10여분 정도 걸어가니 문을 연 까페하나가 보여 몸도 녹일겸 안으로 들어갔다.

빵과 커피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다시 나와 리스트비앙카 마을안으로 들어가본다.
바이칼로 흘러드는 작은 개울을 따라 올라가며 낮은 산들로 들러쌓인 작은 마을은 크고 작은 숙박업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긴 바다까지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베리아 사람들에게 이곳은 바다나 마찬가지일테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용한 마을길을 따라가니 반기는 것은 컹컹짓은 개들 뿐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마을 안쪽에는 작은교회가 눈쌓인 숲속에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론리플래닛에서는 건물이 전형적인 정교회 양식과는 다르다고 설명되어있는데, 사실 시베리아 건물 양식을 많이 닮아있었다.
다시 바이칼 쪽으로 나오는데 오른쪽 작은 언덕위에 아주작은 교회건물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그곳은 마을 공동묘지였다.
묘역안으로 들어서니 크고작은 비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어떤 묘비에는 부부가 다정히 웃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있고, 어떤이는 생전에 바이칼의 뱃사람 이었던지 작은 닻을 장식해두었다.
다양한 글과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지만 묘비 꼭대기의 장식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붉은 별이고 하나는 정교회 십자가 였다.
다른점이 있다면 오래된 묘에는 별이, 최근의 묘에는 정교회 십자가가 많았다.
지상에서의 갈등과는 달리 그곳에서는 사회주의와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다.

멀리 호수에서는 트럭한대가 호수를 가로질러 달려간다.
거칠게 없으니 그차가 낼 수 있는 최고속도로 달리는 듯하다.

오직 정해진 선으로만 다니게 만들어져있는 자동차 중에서 저렇듯 선의 운명에서 벗어나 면을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차는 얼마나 될까? 주인을 잘만난 저 차는 수백만대중 한대의 행운을 맛보고 있다.




사람은 자동차와는 달리 가는길이 원래부터 만들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을 정하고 그길 안으로만 자신들을 내몰면서 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주인을 잘만난 자동차 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만난 인간은 제외하고 말이다.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우춥다.
길가 작은 항구에는 두어척의 배가 얼어붙은 호수에 갖혀있다.
예전에 봤던 '북극항로' 라는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르는 최단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과감하게 북해얼음바다로 나선 모험가들의 이야기인데 그들의 배는 결국 얼음에 갖히고 신항로개척은 실패하고 만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니 배가 살짝 고프다.
이곳에 오기전에 많이 봤던 바이칼의 풍경중 하나가 길가에 오물고기를 구워서 파는 것이었는데, 불행히고 비수기여서 그런지 그런 모습은 구경하질 못했다.
여행중에 음식에 대한 욕심은 거의 없는 나지만, 바이칼 호수에서 잡아올린 오물고기만큼은 꼭 먹어보고 싶었다.
다행히 버스정류장 같은 건물의 식당에 들어가니 오물요리를 팔고 있었다.
도톰하게 살이오른 생선살은 역시 먹을만 했다.

4시45분 아침에 나를 내려놓고 돌아갔던 버스가 다시 돌아왔다.
그차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니 그곳은 벌써 밤이되었다.

* 여행중 메모리 분실사태로 인하여 게시물에 있는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구한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다행히 제가 찍었던 사진과 거의 비슷하네요.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