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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어쇼에 찾아온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단상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4-13 15: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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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60

제목

아이어쇼에 찾아온 아이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단상

글쓴이

이동옥 [가입일자 : ]
내용
어제 오후에 아이어쇼에 다녀왔습니다. 저에게는 아이와 아버지를 떠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2층 행사장을 다 돌아보고 3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긴 통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 한명이 가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천천히 걷고 있더군요. 부모가 안보이기에 의아하긴 했지만 길 잃을 나이는 지난 것으로 보여 지나쳐 갔습니다.



20여 미터쯤 앞을 지나가다 아이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기둥 뒤에 숨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도 걸음을 멈추고 미소를 짓고 아이를 돌아보았습니다. 아직 아버지가 안보인 다는 것을 모르고 아까와 같은 자세로 걷고 있습니다. 십여 걸음을 더 걸은 후 아버지를 찾기 시작합니다.



엉거주춤 서서 뒤를 돌아보고 저 앞을 보고.. 그러더니 야간 불안한 표정으로 앞으로 뛰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아버지를 발견합니다. 터져 나오는 부자의 웃음..





아이어쇼를 가서 아이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와서 느긋하게 음악을 듣는 아이들도 있고, 나가자고 성화를 부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과자 하나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 물을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



저는 집에 아이를 두고 혼자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다섯살 아이에게 즐거운 장소는 아닐것이라는 생각, 남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저도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간만큼 머물 수 없을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상실 안으로 들어가면 조용해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름 상황을 파악하고 적응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스레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제가 음악을 듣기 시작한 계기는 아버지입니다. 유난히 한국환상곡을 좋아하셨고, 세빌리아의 이발사, 콰이강 행진곡, 삼상사 행진곡, 그리고 차에 테이프를 두고 들으시던 베토벤..



집에 월남전 다녀오시면서 사오신 전축이 한대 있었습니다. 턴테이블까지 함꺼번에 달린 물건입니다. 주말이면 한국환상곡을 걸고 저를 무릎에 앉혀놓고 설명을 해주십니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음이 흐르면.. 지금 이건 조용하고 평안하게 사는 나라의 모습이야. 시골 마을에 낮은 초가 지붕이 이어져 있고 저녁이 되어가면서 아이들이 집으로 하나 둘씩 들어가는 모습이지. 그러다 음이 불안해지고 커집니다. 일본 사람들이 쳐들어 온거야. 사람들이 맞서 싸우고 다치고 죽는 모습이야.



식민지가 되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슬퍼하는 거야. 군데군데 격한 부분이 나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하는거야.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잡혀가고 실패하지. 하지만 독립운동은 점점 커져가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었어.



이제 애국가가 나옵니다. 해방이 되었단다. 사람들이 모두 길가로 뛰어나와서 즐거워하는 모습이야..



그렇게 곡이 끝나면 긴장이 풀립니다. 어린아이였을 때지만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 머리속에 여러가지 그림을 떠올리면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은 음악이 많습니다. 1812년 서곡을 들으면서 적이 쳐들어오고, 마을에서 군인을 모집하고, 넓은 평원에 말들이 늘어서 있는 긴장감 넘치는 전쟁터를 상상하고, 돌격앞으로 하는 멸령과 함성, 그리고 전쟁.. 뒤이은 클라이 막스의 대포소리.. 전후의 슬픔..





넉넉한 형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 공부를 시키거나 좋은 옷들을 골라 입혀줄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 아이를 무릎에 안혀 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차분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로버트 쇼의 영가곡집을 틀고.. 이것봐 이게 흑인영가야. 다른 합창단과는 노래가 다르지.. 이게 붉은 군대 합창단이야. 아빠가 생각할 때는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들 같아. 러시아 사람들의 노래는 흑인들의 노래랑은 박자랑 분위기가 모두 다르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동질감이 있지. 그게 우리나라 음악이랑도 비슷한 곳이 있지..



하지만 지금은 밖에 나가서 놀기 원하는 아이와 피곤해서 잠좀 자자고 짜증부리는 아버지 간의 관계일 뿐입니다. 한 주 동안 반성하고 술을 줄이면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조용히 앉아서 한국환상곡을 들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평생 이어나갈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년 아이어 쇼에는 저도 아이의 손을 잡고 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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