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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원한 평안을 위해.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4-09 20: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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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27

제목

[칼럼] 영원한 평안을 위해.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인생은 짧기 때문에 인간은 미래에 집착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와 과거, 미래를 분연히 나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게 분화하여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네 삶은 너무나도 짧고 언제나 미래를 생각해야 눈 깜짝 할 새에 오는 미래 심지어 죽음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집단사고는 인간을 현재즐김과 미래 지향적인 이 두가지 이원적인 인간군상을 마련해놓았다. 그와 명백히 분립되는 예술작품에서의 과거탐닉은 전자의 현실성을 제거하고 낭만을 꿈꾸게 한다. 과거의 탐닉은 인간의 행동에의 근거짓기이론의 피안에 있는 영원불멸의 예술세계다. 그러나 인간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 지 회고해보면 그 안에서 어떤 종류의 정미로움을 찾을 수도 있다.



스님들이 불교에 귀의하는 것은 결코 속세의 단맛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 쓴맛, 곧 찌꺼기까지 맛보기에는 단맛이 과히 가치가 없어 오히려 청진하게 불심에 입문하려는 은사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현실에 좋은 점이 뭐에 있는가. 그저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게 우리가 세상에 생존하는 비합리적인 존재의식이 아닌가. 나는 그것이 싫다. 모 아니면 도라고, 참된 삶을 세속에서 누릴 수 없다면 오히려 알려지지 않았지만 맑은 물로 들어가고 싶다. 도대체 출세에 집착하여 생을 날려보내는 인간이 얼마나 허다한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 놓아도 이렇게 편하고 참다운 것을.





으레 무명의 계위에 머물며 그것의 유실한 행태를 멸각하지 못한 비아라한의 경지를 가르켜 유학이라 일컫는다. 무학으로 들어가는 길, 세존의 지견에 입문하려거든 모든 인과와 인지관계의 꼬여진 줄을 끊어버리는 것 즉 그 그늘에서 벗어나 무심, 무아, 무념, 무지[이것은 필자의 소견이자 사변, 요컨데 지식에도 윤회법칙이 작동하는 터라 지식에서의 정반합의 최종점인 합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의론함.]의 반연의지에 그 뜻을 두어야 한다. 무릇 삼라만상을 수승隨乘함은 자신의 칠전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나 세존께서는 그에 반하시기를 중요한 것은, 진실하고 항상한 참마음에 있다고 했다. 거기에 이르는 발심에는 필자가 의구를 품기를, 자신을 통해 객관을 상정하라는 참의미가 깃들어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유물론과 관념론은 서로 상반되어 양자가 타협의 간취하는 점, 중도점에 이를 수 없지 않은가. 무학의 경지란 아마도 이 분립된 이분성이 일체를 이루어 마침내 초탈의 심성에 이르는 것이리라.



인도에서 석가여래는 아난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흘렸는가. 중생들의 의지가 전부 계합하여 일가를 이루며 1250명의 대비구들을 이끌고 설파한 여래의 일도의 율법적 기조는 무엇이였는가? 가없는 초심자들이 빚어낸 위의에 대한 참구한 열정을, 성인이신 부처께선 무슨 수로 그들의 사심을 일축하고자 번뇌의 초점을 합일하되, 그것을 미증유의 진성으로 교체하거늘 이미 시작도 없는 옛날의 현리를 함양한다 감히 일컫느냐!



미상불 도道와 법法을 완전히 깨달은 세존께서는 극락정토를 여시어 현세에선 욕망을 뿌리뽑은 청신한 생활을 지향하게 하였고, 내세에선 자신의 세계에서 낮은 자나 높은 자나 그 일원 즉 근본은 같으므로 똑같이 대하려고 극구 자신의 무상묘도한 진심을 표명하셨다. 세상에 자존하는 모든 중생들이 구원 곧 평안을 얻고 지상적 극락을 맛보며, 윤회를 끝내고 불사하였으면 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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