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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7. 수도원에서 듣는 천상의 소리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4-06 19:58:59
추천수 0
조회수   605

제목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7. 수도원에서 듣는 천상의 소리

글쓴이

정하엽 [가입일자 : 2002-11-28]
내용

올해 1월에 다녀온 시베리아 횡단기입니다.
시간이 나는 틈틈히 쓰다가 말다가 하다보니 언제 다음회가 나올지는 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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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서북쪽 멀리 즈나멘스키 수도원의 황금빛 첨탑이 보인다.
걸어서 가면 20-30분정도면 도착할 듯 하다.
다리가 조금 아프지만 구경도 할겸 천천히 걸어간다.
낡은 등산화틈으로 녹은눈이 스며 들어와 발의 반쯤은 젖어버렸지만 힘들정도는 아니다.
앙가라강의 지류인 우자모프카 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니 수도원이 지척이다.
횡단보도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아서 두어번 무단횡단을 한후 수도원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속에 묻힌 수도원의 원경은 마치 동화속의 작은 궁전같았다.
수도원입구 정원에 별로 오래되 보이지 않는 동상이 하나 서있다.
알렉산드르 콜차크 ... 러시아혁명시기 백군장군으로서 적군과 맞서 싸웠던..그러니까 반혁명분자인 셈이다.

수도원안에는 크고작은 묘비들이 눈에 덮여있다.
책에서 읽은 바로는 데카브리스트 장교들과 그들의 여인들이 유배생활이 끝나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도시에서 삶을마치고 이곳 수도원에 묻혔있다고 한다.
조금 가벼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낭만적인 혁명가들가 낭만적인 여인들 그리고 낭만적인 삶들이다.









자작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정원을 돌아 예배당안으로 들어가본다.
지금까지 본 다른 교회, 성당과는 달리 예배당안에는 길다란 의자가 없다.
몇몇사람이 성화이콘에 입을 맞추고 몇몇사람은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다.
10여분 정도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수런거리더니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사제들은 예배당안의 성화앞에서 성호를 긋고 성화에 입맞춤을 하고 제단앞으로 올라간다.
여신도들은 머리를 숙여 그들의 손에 입을 맞추며 존경을 표한다.
신도들은 하나둘 들어와서 예배당 중앙에 자리잡고 서서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잠시후 예배당 전면에 조명이 켜지더니 화려한 문이 열리고 황금빛 사제복을 입은 긴수염의 사제 한분이 나타나 아름다운 저음으로 선창을 하고 다시 문안으로 사라지자 그의 노래를 받아 오른쪽 성가대에서 성가가 울려퍼진다.
아까 사제복을 입고 제단위로 올라가던 사람들은 바로 성가대였던 것이다.
8명 정도의 성가대는 한사람이 손으로 지휘에 의해서 노래를 하는데 태어나서 이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잠시후 전면의 황금문이 다시열리고 두사람의 사제가 다시 나타나 연기가 나는 정교회성구를 흔들며 예배당안의 모든 성화앞에서성호를 그으며 지나간다.
신도들은 자신의 앞으로 사제가 지나갈때마다 성호를 그으며 머리를 숙인다.
사제일행이 내앞으로 지나갈때 나는 이상한 힘에 이끌려 구경군에서 예배자가 되어 나도 모르게 성호를 긋고 절을 했다.
이들이 예배당을 한바퀴돌고 사라지자 다시 다른 사제가 나와 성가대와 서로 노래를 주고 받는다.
이번에는 갑자기 왼쪽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 남자 성가대만 있는줄 알았는데 여성의 목소리가 같이 어우러지니 인간의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성스러움 극단인듯 느껴진다.

1시간이 넘어가는 예배시간동안 성가는 끊이지 않고 신도들은 수도없이 성호를 긋고 고개를 숙여 절을 한다.
기도도 없고 설교도 없도 오직 주고받는 성가만이 예배당 공간을 채우면서 진행되고 예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예배시작전 신도들이 사제도 아닌 성가대의 손에 입맞추며 존경을 표하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그들은 단순한 성가대가 아니라 예배를 주관하는 사제인 것이었다.

좀더 있고 싶었으나 짧은 겨울해가 넘어갈것 같아서 조용히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가벼운 한숨이 나온다.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나가건 나가지 않건 기독교 언저리에서 얼쩡거렸지만 오늘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운 예배는 처음이었다.

수도원을 나와 다리를 건너 시내로 나오는데 메뉴가 그림으로 표시된 식당이 보인다.
이럴때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마침 많이 걸어서 배도고픈데 잘되었다.
국수를 얹은 볶음밥 비슷한 것을 시켰는데 그런데로 먹을만 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동양사람이 들어오자 식당 아줌마들 두어명이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면서 웃는다.

늦은 오후햇살에 비친 우중충한 건물과 거리는 돌아오는 길은 레닌거리나 마르크스 거리와는 달리 남루했다.








호스텔로 돌아오니 다들 외출했는지 주인장 친구쯤 되보이는 사람이 집을 지키고 있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차한잔을 마시는데 룸메이트가 어디나갔다 들어오면서 조금있다가 보드카 파티를 할건데 같이 하자고 한다.





잠시후 한국남자 한명, 스위스 남자 한명, 프랑스 커플 한쌍 네명의 유쾌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폴란드계 스위스 친구 다브로스키는 28살 소프트웨어 개발자인데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엄청난 환경주의자라서 자기집에서 모스크바까지오는데 비행편이 요금도 더싸고 시간도 절약되지만 비행기여행이 환경오염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만으로 기차만 타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배낭속에 재활용 쓰레기봉지를 들고다니며 내가 잠시라도 방을 비우면 따라다니면서 불을 끈다.
프랑스 친구는 빈센트는 한국영화팬인데 특히 김기덕의 영화를 좋아한단다.
젊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보드카를 마치 맥주비우듯 벌컥벌컥 들이킨다.
나는 두잔에 벌써 취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다브로스키는 테이블위에는 빈잔을 두어서도 안되고, 가득찬 잔을 두어서도 안된다면서 유쾌하게 자기나라 술자리 원칙을 설파한다.
그러니까 쉼없이 계속 마시라는 뜻이다.

12시 정도가 되어서야 넷은 나란히 1층으로 내려가서 사이좋게 담배를 나눠 피우는 것으로 파티를 끝냈다.
오랜만에 기분좋은 취기에 편안한 잠을 청했다.


* 여행중 메모리 분실사태로 인하여 게시물에 있는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구한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다행히 제가 찍었던 사진과 거의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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