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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학 이외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27 11: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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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61

제목

[칼럼] 문학 이외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문학 이외에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제가 여러분께 할 말입니다. 문학에서 무엇을 구하지 않고 오직 서사와 시성에만 집중하는 사람, 거기에서 자기생활상의 연관성과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색적인 세계에 대한 착종의식을 갖는 것, 문장과 문장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림 전체의 상징적 의미를 구하는 것, 그럼으로 인해 문학은 도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구도행위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문학 이외에는 왜 아무 것도 아닐까 곰곰 생각해보면 많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문학은 모든 번뇌적인 생각들의 최종점을 구사하고 있는 실질물임과 동시에 우리시대에 뭍혀져 가는 표상인 이상 대체적으로 현실사회에서는 아이러니하고 저물어가는 석양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실사구시, 헤밍웨이 같은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문학에 표기하려고 안간힘을 썼고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작가들도 자기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글을 씁니다. 물론 자기경험 밖의 미지의 것들, 요컨데 H.G Wells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처럼 문헌적 사료를 선취하고, 상상력과 고도의 피안적인 것의 포착성을 바탕으로 하여 판타지적이거나 자기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라는 매체는 다른 매체와는 달리 작가의 기량만 있다면 적은 제작비를 지반으로 하여 독자적으로 빠르게 진행해나갈 수 있는 종휭무진한 것입니다. 작가는 이를테면 농도 높은 문장실력과 서사적 상상력의 정태적 구축, 대부분의 부분들이 시적이면서도 기승전결의 형식을 엄격히 주지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전통적인 틀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참미로운 글쓰기, 그런 게 작가의 '소명의식의 저변'적 행위이라고 할까요.



문학 이외에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은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글쎄 그것들이 허구가 아닐지언정 너무나 뛰어난 문예예술작품들이 우리의 주변에 있기 때문에 저는 그것들을 허구로 지정합니다. 문학의 잊을 수 없는 황홀한 향기에 빠지게 되면, 그 향기를 뇌리 안에서 지우고 지우려 해도 거칠 것 없이 그 고상한 향기는 자기 자리에 안주하며 점유할 뿐입니다. 예술에 있어 고하를 일도양단할 수는 없지만 문학과 음악, 그림, 그 외의 다기한 예술들 중 가장 복잡미묘하고 사상적 전도성이 강하여 어떤 방면에서도 그 광휘를 발하는 인간정신의 최상점에 있는 것은 아무래도 문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문학은 독자의 선험적 지식이 선행되야 읽히는 지극히 객관적인 고도의 유기체입니다. 사르트르가 철학가의 길에서 일회일비하고 문학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문학가로서의 명성과 가치가 철학적 체계를 가르치려하는 것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의 철학적 글쓰기가 투영되어있는 대작 [구토]는 결국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기가 되었고 사르트르는 이를 거절합니다. 구토가 대작인지 소작인지는 가외로 하더라도 19세기와 20세기가 문학성으로 점철된 세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는?



출판업계는 날이 갈수록 비대해져가고 있습니다. 남한의 경우 2005년을 분기점으로 요 몇년간 번역서들이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로 무분별하게 출판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2010년 안에 대부분의 세계 유명 저서들을 우리는 우리의 서가에서 빠짐없이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건 언어의 소통성의 중요성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동시대의 문학가와 학자들이 지적인 교류를 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언어를 번역하여 출판하기에 오랜 시일이 걸렸고 법은 도덕률을 표어로 들고나와 출판을 통제했고 정치는 정치적인 저작들을 분서처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시대는 출판사들이 글로벌화되고 대형화되면서 거의 한 저작이 세계 동시출판할 혁명적인 기술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는 비길 데 없는 의사소통성의 글로벌화의 성취이지요. 이제는 더욱 자본이 지식을 담보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과 여러 미국대학들의 처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부호들의 기부만 없었으면 대학들은 발전없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남한은 아직 포퓰리즘의 물결이 가시지 않아서 기부입학을 반대하지만, 전체적인 의미에서 보면 기부입학은 모두의 이익으로 환원된다는 걸 담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에서 문학은 형편없이 무너저가는 사양학문입니다. 시쳇말로 문예창작과와 철학과를 선택한 학생에게 미래는 없다는 미국말이 유행하듯 현재 21세기는 과학과 기술이 인문학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문학서적은 팔리지 않고, 성공관련 서적과 금융관련 서적, 미래학 서적들이 오히려 대두되는 시기입니다. 바야흐로 인문학의 종언이냐? 더 이상 칸트는 칸트가 아니고 세익스피어는 세익스피어가 아닌가?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유행이 아니라 21세기의 서막에 닥친 메타적이고 점층적인 사건입니다. 그것은 자연스런 인류역사의 흐름이요, 우리의 정신이 채택한 비극입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물건은 다 팔아도 책은 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건 문학작품 '솔로몬 탈무드'였습니다. 그들의 종교의식도 물론 존귀한 것이겠지만 그들 정신세계의 기본 중의 기본은 탈무드에 의거한 것이었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소비지향 사회에서 어디를 향해 주야하는 것입니까?



'문학 이외에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끝내면서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순수문학의 중요성이 경시된 세상에서 제가 바라는 한가지는 여러분의 지知에 대한 자의적인 견각심입니다. 타율보다는 자율이 낫다. 비로소 우리가 해쳐나가야 할 길은 우리의 삶 밖의 소중한 현상적 침윤물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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