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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설법 제 7장 - 스님도 벗어날 수 없는 세속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23 20:36:36
추천수 0
조회수   671

제목

[칼럼] 설법 제 7장 - 스님도 벗어날 수 없는 세속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글을 쓴다는 행위는 무의미한 것이다. 글을 씀으로 해서 작가는 모종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러나 글을 쓰는 게 단지 기교행위의 반복에 불과하다면 그런 글쓰기가 세상을 구세할 의의가 있을 수 있을래야 없다. 세상사가 전부 무상하다. 일반인으로서 불교에 귀의하기는 정말 힘이 드는 일이다. 몇 년전, 그러니까 내가 어린 시절 TV에 스님들끼리 싸우는 게 화두가 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스님이라는 계급적 단체의식에 대해 많은 실망을 한 일이 있다. 지금의 경우에는 실의가 찾아온다. 나는 스님이 될 생각을 여분은 가지고 있는데 스님이 자신이 지내는 절에 소속되여 그역시 세속에 불과할진대 어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텐가.





인간으로서 응당 사회에 참여할 이유도 없고 살아야 할 본질적 자가참여의식도 결여되었다. '자가참여의식'이라? 즉슨 자의식을 갖고 생을 누리면서 죽음 밖에 머무는 지속적인 행동의 경우를 일컫는다.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생에서 일시적인 행복 혹은 쾌락조차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살아야 하고 성욕을 품어야 하는가. 나 불제자는 지금 성욕도 결여되어 있다. 내 서가의 책들은 쌓여만 가는데 내 지식욕은 한치의 허망함, 일시적인 허욕과 허황적 번뇌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서 나를 탐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더럽고 그것을 통찰하는 자신의 삶도 더럽다. 은사로서 초야에 파뭍혀, 곧 깊은 산골에 파뭍혀 사는 게 제일이다. 그렇다면 법정스님은 속세적 스님이자 작가인가? 그는 어려운 말도 쉽게 풀어쓰는 현세적인 문장가이다. 마치 윌스미스 같은 랩퍼가 자신의 랩에서 욕을 빼내어 대중적으로 성공하려는 것과도 같다. 법정스님이 진정으로 성찰하였으면 그가 중생을 구하려는 시도가 그저 허위에 찬 자가욕구라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그저 불교의 겉멋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게 과연 의미있는 일일까? 물론 독자는 법정스님의 책으로 하여금 선禪 의 말할 수 없는 논리를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서 개탄할 만한 감격을 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적지근한 불교의식은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걸 그들은 모르는가?





정말 학문은 덧없고 배움도 덧없다. 차려진 진수성찬과 여색을 즐김이 높은 경지라면, 그것을 구하고자 자기 삶을 탕진하는 일반 속인들의 삶의 행태야말로 낭비 중의 낭비다.

그러므로 이 글이 정확히 밝히고자 하는 바는 짧은 삶을 낭비하지 말고 자기의 운명에 순종하며 청렴하게 살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자기 본질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하지 말며 인의를 지켜 인간들 틈에서 얼굴을 붉히지 않는 것,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을지. 그럼으로 인하여 무의미의 색채, 선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의미의 논구를 흠모한다면 그야말로 본시 괜찮은 삶이 아닐 터인가. 무의미를 응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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