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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5. 치타... 울란우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15 17:28:38
추천수 2
조회수   764

제목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5. 치타... 울란우데

글쓴이

정하엽 [가입일자 : 2002-11-28]
내용
어둠이 내린 창밖풍경을 뒤로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누워서 아까 보던 닥터지바고를 다시 본다.

바리키노의 집에서 짧기만 했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장면, 라라가 그 행복이 얼마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 이렇게 말한다.

' Wouldn't it have lovely if we'd met before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늑대우는 소리가 들리는 바리키노의 밤처럼 이곳에서 밤이 내렸다.


침대아래에서 러시아 청년이 뭐라고 말을 건다.
전혀 통하지 않는 엇갈린 대화를 한참이나 하다가 말이 안통해서 그냥 포기하려는데 그는 계속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을 계속한다.
그래서 배낭안에 포켓용 러시아회화책을 꺼내서 보여줬더니 10분이상 여기저기 뒤적이고나서 나에게 그가 찾은 단어를 보여준다.
그단어는 우리말로 '물건' '걱정한다' '도둑' 세단어이다.
그러면서 나의 아이팟을 가리키고 나서 복도쪽을 가르킨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팟을 복도 콘센트에 충천하고 방에 들어왔더니 혹시 누가 훔쳐갈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의 안타까운 눈빛은 바로 나에대한 걱정이었던 것이었다.

고마운 일이다. 스빠시바 ... 고맙다는 말을 전했더니.
나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거수경례를 한다. 그친구는 19살짜리 군인이었다.
Thankyou 와 Sorry를 입에 달고 사는 서방사람들과 비교하면 이들의 무표정은 적의로 까지 느낄 수 있지만 한참이나 회화책을 찾아가며 나를 도와주려는 이들의 마음씨를 보면 그것은 그저 겉모습의 차이일 뿐이었다.

배가 고파오는데 달리 먹을게 없어서 어제 샀던 쵸코파이 두개를 밀어넣고 잠에 든다.


1월31일 여행 4일째

블라디보스톡 시간으로 10시에 일어났다.
몸이 알아서 해뜨는 시간에 맞추려는지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몇번의 꿈을 꾸고 이리저리 뒤척이긴 했지만 비교적 잘 잔 편이다.
기차는 2705 km를 달려서 체르니쉐브스크 자베이칼스크 라는 곳에 도착했다.

오늘은 머리를 감아야겠다.
안감아도 버틸 수는 있지만 감을 수 있는데 굳이 안감을 필요도 없다.
화장실에가서 서울에서 준비한 비장의 무기 두가지를 꺼냈다.
우선 노란 선글라스 두껑으로 배수구를 막고 선물용 포장끈으로 푸쉬형 밸브를 묶었다.
아주 깨끗한 물은 아니지만 세면대에 물이 가득차고 수도꼭지와 세면대 빈공간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겨우 수박반통만한 세면대에 머리를 담근다음 샴푸칠을 하고 노란마개를 빼고 흐르는 물에 머리를 행군다음 스텐레스컵으로 남은 거품을 씻어낸다.
다시 마개를 닫고 세수까지 하고 이빨을 닦으면 세면행사 끝.

따스한 물을 받아와서 도시락면에 붓고 라면이 익는 시간동안 잠깐의 기도를 한다.
음식물이 넘치는 한국에서 이런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누구를 향한 기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날이 바뀌니 바깥경치도 바뀌었다.
자작나무 숲과 벌판이 사라진대신 흰눈이 덮이 구릉지가 넓게 뻗어있다.

파카를 꺼내입고 맥심커피 한잔을 타서 들고 담배를 피러 나간다.
차장근무실쪽 승강구로는 사람들이 오르내리지만 반대편 승강구는 공식적인 흡연실이다.
친절하게 작은 양철 재털이도 창틀에 매달아두었다.
난방이 안되는 곳이라 유리창에는 두꺼운 성에가 끼여있어서 어린때 하는 식으로 입김을 호오 하고 불어보지만 어림없다.
경치를 보려고 손톱으로 긁다가 기념 낙서를 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9288 km 를 달리다
2009년 1월 정ㅇㅇ '
몇시간후 다시가봤더니 그사이에 엷은성에가 또 끼어있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영화 'Reds'를 시작한다.
아마 1991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당시 '말'지에 정성일의 영화평이 연재가 되었었는데 심의기관의 부주의로 수입된것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때 그가 소개한 '1900' ' Norma Rae' '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등을 보려고 TV없이 살겠다는 다짐를 허물고 TV와 VCR을 사들여 주말이면 영화로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짧았던 그러나 행복했던 나의 영화시대였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1부는 배경이 미국이어서 그런지 여전히 좀 지루하다.

블라디보스톡 시간 15:31분 카림스카야역 도착

18분동안 정차하는 역이라 파카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간다.
귀가 좀 시렵긴 하지만 견디기 힘들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니다.
쌓였던 눈이 찬바람에 날려 얼굴에 가볍게 부숴진다.
기차가 멈춰있는동안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바쁘다.
오토바이 뒤에 짐칸을 만들어 객차에서 내어놓은 쓰레기 봉투를 수거해가는 사람들,
호스를 연결해서 버스에 물을 공급하는 사람들, 기차바퀴 여기저기 두들겨 가면서 점검하는 사람들 순식간에 18분의 시간은 지나고 기차는 다시 출발한다.

경치도 시들하고 음악듣는일도 지겨우면 침대에 엎드려 갖고간 노트에 글을 쓴다.
베게를 책상삼아 쓰면 기차의 흔들림도 어느정도 완충되어 쓰기가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여유있게 쓰다가 남은 날짜를 생각해보니 이렇게 쓰다가는 여행중간쯤에 더이상 쓸곳이 없을 것 같아서 최대한 빽빽하게 쓰기로 한다.




어차피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기까지 73시간 13분, 출옥날짜가 정해진 수인처럼 그냥 죽일뿐이다.
시간을 아낄 필요가 없다보니 글의 주제가 이리왔다 저리갔다 한다.
맨첫장에는 여행기 표지도 만들었는데 그림의 수준이 내나이의 10분의 1 어린이다.




깜빡 졸다가 일어나니 기차가 멈추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니 제법 큰역인가 보다.
시간표를 찾아서 확인해보니 '치타' 블라디보스톡으로 부터 3094Km를 달려왔다.
제정러시아 시절 수많은 유형자들이 노역을 하던 곳중 하나가 바로 이도시다.
제정에 반대하던 데카브리스트 청년장교들도 이곳에서 유형생활을 했었다.

33분이나 머무는 역이라 옷을 챙겨입고 밖으로 나간다.
역사도 제법크고 건물 정면에 인상적인 붉은색 상징물이 있으나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역사 한쪽벽에는 사회주의 시대에 만들었음직한 프로파간다 모자이크가 장식되어있다.





기차는 다시 출발하고 창밖의 경치도 조금씩 바뀌어간다.
넓은 벌판이 보이던 어제와는 달리 높고 낮은 구릉이 펼쳐지고 수종은 자작나무대신 침엽수림으로 바뀌어 간다.
옆방의 아저씨와 나란히 복도쪽 창에서 해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복도에 서서 해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이제 기차를 탄 이후 매일 의식처럼 행하는 행사가 되었다.
볼쇼이 합창단의 '고향의 노래' 가 오늘의 일몰식과 함께 한다.

'국화꽃 저버린 가을 뜨락에 창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노래와 함께 어둠이 내린다.

방으로 돌아오니 러시아 친구들이 뭐라고 이야기 한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이제 만국공통어가 많이 늘었다. 해석하면 오늘밤 내가 잘때 자신들은 내린다는 것이다.
두손을 모아 한쪽볼에 대고 자는 모습을 이야기할때는 마치 어린아이 처럼 귀엽다.

몇마디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이틀밤을 한방에서 같이 보내면서 정이 들었다.
오늘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녁을 같이 먹고 기념으로 사진도 같이 찍었다.
내 공책에 이름을 써달라고 하자 백인친구는 Dima, 몽고인친구는 Lednid 라고 적어준다.
영어한마디 안통하던 친구들이 이름을 적으라니 그래도 영어로 적는다.

조금전에 보여준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니 이들은 몽골국경을 지키는 국경수비대이며 며칠 휴가를 받아 하바로프스크에 놀러갔다가 오늘 귀대하는 길이었다.

새벽 1시47분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이들이 떠날 채비를 한다. 기차는 이미 플랫폼에 들어선다.
얼른 일어나 악수를 하고 어젯밤에 익혀둔 러시아어로 인사를 한다 ' 다 스비 다 니야'
이 친구들도 처음으로 영어로 인사한다 '굿 바이'

역시 군인이라 그런지 이들이 떠난자리는 완벽하게 깔끔하다.
이불은 모두 제자리에 깔끔하게 정리되어있고, 어젯밤 어지러웠던 테이블도 빵과 소세지 등 먹고남은 것을 깔끔하게 정리해두었고 수십개의 동전도 가지런히 정리해서 나를 위해 남겨두었다.

이들의 모습을 보려고 어두운 창밖을 내다 보니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모습뒤로 역이름이 보인다.
울란우데 ... 바로 중국에서 몽고를 거쳐달려오는 Trans Mongolian Railway가 Trans Siberian Railway와 만나는 곳이었다.




이제 내일아침이면 바이칼 호수를 돌아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 여행중 메모리 분실사태로 인하여 게시물에 있는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구한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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