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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소설] 시내 11장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13 19:09:14
추천수 0
조회수   529

제목

[자전소설] 시내 11장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p.s 계속 쓸 문장이 없어 소설을 쓰는 도구로 칼럼을 합치하게 되네요.





- 11장



존망이 아로새겨져 복잡미묘하게 휘몰아치는 검은 하늘을 보며, 동시에 그 검은 하늘에

서 어떤 마성적 기운의 손이 뻗쳐나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섬뜩한 느낌을 받을 때부터

k는 이 도서실의 외관이 왠지 진부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사유해야할지 자신만의 뚜렷한 전위의식이 서지 않았다. 하여 그는 도서실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가져온 작은 가방을 어깨에 짊어매고 오랫만에 주지육림의 화찬 속으

로 입문할 생각을 하니 마음까지 황홀해짐을, 그는 감지했다.



그래, 어차피 예술가들은 제 명에 살지 못한다. 제 명에 살다 죽는다면 그것은 속인에

불과한데 범인들이 왜 그러한 자연의 이치에 따라야 하는가? 항우는 전쟁에 패배하여 용맹하게

자신의 목을 베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이 자신을 버렸음을 직시한 그는 그렇게 범

속히 생을 마쳤다. 마찬가지로 현대에는 커트 코베인의 권총 자살이 유명하다. 그가 앓고 있는

정신의 고통이 무엇이었기에, 24시간 마약에 취해 있으면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는 그의 강건한

의지에 깊이 탄복할 따름이다. 그는 불꽃처럼 화려하고 휘황하게 타들어가다가 꺼져버렸다.



k는 다시 시내의 어두컴컴한 길가를 걸었다. 사람들이 있었고, k의 눈에 그들의 삶은 남루하게

만 보였다. k는 이 소도시가 자신에게 어떤 의무를 부여하고, 또 거기에 합당한 자율적인 의지를

투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k는 철학도였다. 철학은, 최소한 인간의 철학은 언어로부터 상징된다고 정정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k는 항상 환청과



도 같은 미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은 언어가 철학의 단순한 도구인가 아니면 철학 그 자체인가라는 명제였다. k는 생각했



다.



'중국의 고승들은 불립문자라 하여 언어의 전달성에 주목했지, 서양 철학자들과 다르게 언어의 귀추에 주목하지 않았다.



손은 달을 가리키는데 달이 중요한가, 아니면 달을 가리킨 손이 중요한가? 비트겐슈타인 같은 오스트리아의 언어철학자들과



인도와 중국의 철학자들 간에 명확한 차이가 이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로 세계를 구축하려 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동방



의 박사들은 언어를 도구로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려 하였다. 언어는 단지 연장에 불과했다. 오스트리아 학파들 그리고 현대



철학자들이 선호하는 언어의 철학이 옳은가 아니면 스님들의 불립문자가 옳은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건 내가 부족하기 때



문이리라.



언어를 사용하여 일종의 도를 닦는 정진행위를 기사하고 싶었다. 많이 읽는 사람과 많이 생각하는 사람, 이 두가지가 병립



할 수 없다는 견해에 대해선 필자도 찬성한다. 나는 후자에 속하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필자는 생각은 많았으나 다독가



는 아니었다. 나는 언어를 사랑했으나, 언어의 내막에 있는 다의성까지 에두른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언어의 대대적인



구사란 천재성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장대한 작업으로 깊은 수련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훌륭한 문장과 사상을 완성시킬 수



있다.



단어의 갯수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고 있다. 갈수록 인간문명은 복잡해지고 거기에 각개의 의의를 부여할려면 가없는



언어가 필요하리라. 언어는 진보하는데 비해 어쩌면 인간의 문화는 저속해져가는 듯하기도 하다. 단어의 갯수가 늘어나면 작



가나 저널리스트로서는 더욱 복잡한 게임에 참여하는 게 된다. 그러나 일반인으로서는 큰 부담에 다름 아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단어의 갯수가 평상시 남한을 기준으로 5천개라면, 전문 작가나 학자가 사용하는 단어의 갯수는 무려 25만개나 된



다. 엄청난 차이다. 그것이 혹여 정신력의 차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명확한 결론이 떠오르진 않았다. 행여 그러한 결론이 있다고 해도 k는 수줍은 처녀처럼 다소곳이 수긍할 수 없었으리라.



길가는 휭하니 종적이 끊어질 참이었다. k도 정신줄을 놓고 편안한 안정상태에 들고 싶었다. 열반, 심지어 죽음이 진정으



로 해탈하는 길이라면 그렇게라도 그것을 얻으리라고 다짐했다. k는 안식을 취하고 싶었다. 너무 오래 산 것 같았다. 이제



정녕 22세이지 않은가? 선사시대였으면 평균수명의 끝자락에 있는 나이인 것이었다. 계속하여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상념의



벽을 넘어 구원의 길에 경도되고 싶었다. 초탈이 영원이라면 그 영원에 녹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측백나무들은 소리없이 그의 귀에 알 수 없는 소리를 속삭여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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