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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속에 시한폭탄이 들어 있다면?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09 07:44:19
추천수 2
조회수   1,079

제목

내 머리속에 시한폭탄이 들어 있다면?

글쓴이

황보석 [가입일자 : ]
내용
바로 아래 글에서 덧글로 혈관조영술을 받아보라는 조언을 보고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습니다. 여러분도 저 같은 경우 당하지 않으려면, 아니 저는 운이 좋아 멀쩡히 살아났습니다만, 불시에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혈관조영술을 꼭 받아두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아무 탈없이 살아왔더라도 혈관조영술은 꼭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몇백 명 중에 하나 꼴로 뇌 중앙에 있는 꽈리 모양의 동맥(지주막하)중 일부가 한 겹으로만 싸인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20세 이후로 지주막하 파열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말하자면 뇌에 시간을 특정하지 않은 시한폭탄이 들어 있는 셈이고, 지주막하 파열이 일어났을 때는 바로 손을 쓰지 않으면 5분 내에 절명한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정신을 잃고 돌연사(복상사 포함^^)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마도 이 지주막하 파열로 인한 사망일 것입니다.



진단 결과 뇌동맥에 이상이 있으면 술, 담배, 커피, 짠 음식 등 자극성이 있는 것은 무조건 피하고 흥분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지주막하 파열을 일으켰던 날만 하더라도 저는 서울에서 찾아내려온 모 출판사 사장과 편집장, 그리고 말로만 애인(자주 가던 카페 주인)과 함께 어울려 새벽까지 신나게 놀면서 부어라 마셔라 통음을 했었습니다.





2000년 7월 29일 아침, 저는 지주막하 파열로 정신을 잃고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정신을 잃는 순간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 한 가지는 완벽한 무, 빛도 소리도 느낌도 아무것도 없는 공허였다는 것인데, 그렇게 찰나적으로나마 저세상 구경을 해본 저는 그래서 이제는 천당도 지옥도 저승도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전조증상을 식중독으로 여긴 아내가 119를 불러두고 있었다는 거였지요.



산소호흡기 씌워진 채 병원으로 실려가서 심장 전기충격으로 의식이 돌아오기는 했는데... 공교롭게도 의약분쟁으로 한창 시끌벅적하던 때라서 병원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지요. 그때 생업 제쳐두고 뛰어다니면서 있는 줄 없는 줄 다 끌어다댄 친구놈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완전 회복은 안되었을 것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했을 겁니다.



어머님의 칠순 잔치에도 참석 못한 채 수술을 집도한 충북대의대 박무석 교수에게서 장장 아홉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은 뒤 15일 정도는 혼수상태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를 오락가락했고, 그 다음에는 뇌압이 심하게 올라서 하마터면 또 저세상 갈뻔했다가 참으로 다행히도(?) 양쪽 눈의 망막 출혈로 시력을 잃는 대신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요.



눈 수술은 출혈 정도가 더 심한 왼쪽눈을 먼저 수술했는데, 의약분쟁 중이다 보니 모자란 인원에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첫수술은 수정체가 찌그러져서 실패로 돌아갔고 두번째 수술에서는 탄산가스가 제때 준비되지 않은 탓으로 마취가 깨어가는 상태에서 눈알을 꿰매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수술중인 의사가 비명 소리에 정신 헛갈릴까 봐 비명도 지를 수 없었던 그 때의 그 고통... 수술 끝나고 나니 온 몸이 땀으로 목욕을 했더군요. 환자복은 완전히 물걸레였고요.



그런 고통 거치며 병원에서 세 달 입원해 있는 동안 차츰차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합디다. 만일 내가 죽었거나 정신이 혼미해졌다면 내 처자식들은 길거리로 나앉아야 했을 텐데, 눈은 제대로 안 보일망정 정신 망가지지 않고 이렇게 살아난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정신 멀쩡해서 하던 일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도, 처자식 굶기지 않게 된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퇴원한 뒤 오른쪽 눈은 망막에 맺힌 피가 흡수되고 있다는 "이미지 기법"으로 자가치료를 했고, 예전의 욕심, 불만 다 버리고 세상을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니 회복도 아주 빨리 되어 통원치료를 9개월만에 끝냈는데, 담당의사 말로는 그렇게 빨리 완전회복된 경우는 처음이라더군요.



그 뒤로 한동안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늘 세상을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철딱서니없이 살다보니 하는 일도 점점 더 잘 풀려서 세상을 원망할 일도 없어졌고요. 아마도 껍데가 다 벗고 늘 즐겁게, 철딱서니없이 살자는 생각 덕을 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뇌수술을 받은 덕분에 돌연사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그렇더라도 가장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복상사의 기회(?)가 원천봉쇄되었다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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